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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저(低)물가 위기'라는데 식탁 물가는 왜 줄줄이 오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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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신모(40)씨는 최근 식비 부담이 부쩍 늘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양파, 파, 두부 등 식재료 가격이 올해 들어 큰 폭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딸아이 학원비와 다달이 내는 아파트 월세도 상승했다. 생활비 부담은 커졌는데 뉴스를 보면 ‘물가상승률이 0%대 저(低)물가 기조로 접어들면서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위험이 커졌다’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신씨는 “저물가라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월급 빼고 다 오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바구니 물가는 오르는 가운데 우리나라에도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디플레이션이란 경기 침체로 인해 물가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소비, 기업 활동, 자산 가격 등 경제 전체가 위축된다. 디플레이션에 한번 빠져들면 쉽게 빠져나오기 힘들기 때문에 ‘디플레이션의 늪’이라는 표현까지 쓴다. 일본의 경우 디플레이션 때문에 장기간 경기가 위축된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했다.

통계만 보면 우리나라도 디플레이션을 눈앞에 두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1월 소비자물가는 0.8% 오르는데 그쳤다. 지난해 10월 이후 3개월 만에 다시 0%대로 떨어졌다. 선진국에서는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2% 밑으로 떨어지면 디플레이션 위험이 있다고 본다.

김성훈 현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난 2012년 6월 이후 한국은행이 선정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목표치를 넘긴 적이 없다”며 “지금 같은 저물가 현상이 장기화되면 디플레이션에 빠져들 우려가 있기 때문에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소비자 생활과 직결되는 식탁 물가는 일제히 오르는 중이다. 1월 말 기준 양파 가격은 117% 상승했다. 파(49.9%), 마늘(41%), 배추(28.6%) 국산 소고기(14%) 등도 가격이 올랐다. 농수산물유통공사(AT)에 따르면 한달새 감귤(22.4%)과 사과(7.9%)를 포함한 일부 과일값도 상승했다.

지난해 하이트진로가 소주 가격을 5.62% 올린 이후 식료품 업체들도 가격 인상에 가세했다. 풀무원은 두부 제품 가격을 5.6% 인상했다. 맥도날드도 11일부터 일부 제품 가격을 1.33% 인상한다고 밝혔다. 맥주와 라면 가격도 인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상하수도 요금 등 공공요금과 각종 보험료, 그리고 주택담보대출 등 각종 금융비용 부담도 연초부터 잇따라 오르고 있다.

그런데도 일상 생활에서 느끼는 체감 물가와 공식 통계간 온도차가 큰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통계청이 소비자물가를 집계하는 481개 품목 중 소비자들의 체감도 높은 농축수산물과 서비스요금이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집세 상승률은 2.9%로 3년 만에 가장 높았다. 공공요금 등 서비스 부문의 물가도 4년 만에 가장 높은 2.4%를 기록했다. 농축수산물 물가 역시 2.4% 올랐다.

반면 국제유가 하락이 지속되면서 석유류 제품의 가격은 10.3% 떨어졌다. 지난해 0%대 물가 상승률이 지속된 데도 저유가의 영향이 컸다. 우영제 통계청 물가통계과장은 “농축수산물 가격이 오르고 서비스 부문 가격도 상승하면서 체감 물가는 상승폭이 컸지만, 저유가 때문에 공업제품 중 석유류 가격이 내린 영향으로 지표상 수치는 0%대까지 내려갔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휘발유 같은 소비제품은 원가에서 각종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 가량 돼 국제 원유가격이 크게 하락해도 실제로 소비제품이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통계 지표가 현재 경기 흐름을 잘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국은행은 정부 통계와 체감 물가의 괴리가 큰 이유로 경기 흐름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경기비 (非)민감품목의 영향력이 확대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경기민감품목으로 분류되는 집세, 외식 서비스 등 구성품목과 비중이 2012년 이후 바뀌지 않은 반면, 스마트폰과 학교급식비 등 경기비민감품목이 근원 인플레이션(가격 등락이 큰 농산물과 석유류를 제외한 물가)에 기여하는 정도는 지난 2011년 30% 수준에서 2015년 60%까지 높아졌다.

이밖에 가계소득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밑돌면서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 물가가 실제 물가상승률보다 훨씬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지난해 3분기 실질 가계소득 증가율은 6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41만6000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0.7% 올랐다. 물가 상승률까지 고려한 실질 소득 증가율은 0%에 그쳤다.

[이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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