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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국내 최초 '느린 우체통'이 전하는 웃고 우는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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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대교휴게소에 2009년 개통…1년 걸려 10만여통 배달

기다림 만큼 받는 즐거움 커…깨진 연인들 종종 '폐기 민원'

연합뉴스

(인천=연합뉴스) 최은지 기자 = '까똑' '까똑' '까똑'

문자를 전하기까지 채 1초도 못 참고 쉴새없이 '까똑'을 외쳐대는 2016년.

확인을 잠시라도 게을리하면 '왜 씹냐'는 재촉 문자까지 날아오는 시대에 1년을 기다려야 소식을 받을 수 있는 우체국이 있다.

2009년부터 인천시 서구 영종대교 휴게소 2층에 자리 잡은 '느린 우체국'이다.

클릭 한 번에 이메일을 보낼 수 있고 SNS를 통해 시시각각 속보를 쏘아대는 '초고속 기가 인터넷' 세상에 여유를 전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이곳을 찾는 누구나 손 편지를 마음껏 쓸 수 있도록 우체통 옆 탁자에 공짜 엽서와 우표가 놓여있다.

설치된 우체통 4개에 넣은 엽서는 우체국을 관리하는 신공항하이웨이가 모아뒀다가 매주 2차례 발송한다.

지난해까지 10만 통이 넘는 엽서가 1년이 걸려 주인을 찾아갔다.

기다림이 긴 만큼 편지를 받는 즐거움도 크다. 요즘은 하루 50여명이 우체국을 찾을 정도로 인기가 꾸준하다.

수많은 사람의 엽서가 거쳐 간 우체통에는 웃고 우는 사연이 가득하다.

인천 남동구에 사는 정혜민(35·여)씨는 지난해 9월 집 우편함으로 1년 전 남편과 함께 쓴 편지가 도착했다. 잊고 있던 추억이 한 통의 엽서에서 고스란히 재생됐다.

"다음엔 셋이 되어 오자. 우리 가족 다 행복하고 건강하자"

펜으로 꾹꾹 눌러 쓴 소망처럼 뱃속에는 고운 아기가 자라고 있었다.

주인을 찾아가지 못하고 쓰레기통에 버려진 엽서도 종종 있다.

사이좋게 우체통을 찾아 1년 뒤를 기약하며 편지를 부쳤다가 그 전에 헤어진 연인들의 엽서다.

느린 우체국 담당자는 "간혹 '편지를 함께 쓴 사람과 이미 헤어졌는데 편지가 오면 마음이 아플 것 같으니 보내지 말아달라'는 전화가 걸려온다"고 말했다.

이런 부탁이 오면 직원들이 우체통을 일일이 뒤져 편지를 찾아 폐기 처분한다.

국내 최초로 설치된 이 우체국을 본떠 경북 구미, 전북 순창, 전남 장흥 등 전국 각지에 '느린' 우체통이 속속 들어섰다.

신공항하이웨이 관계자는 "찾는 이들이 손 편지가 전하는 감동과 '느림'이 주는 여유를 느낄 수 있도록 앞으로도 엽서와 우표를 계속 무료로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chams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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