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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총선돋보기] 안철수, 화려한 부활이냐 역사속 제3당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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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흔히 대통령제는 양당제, 내각제는 다당제라고 말합니다. 대통령제를 채택한 한국정치에서 다당제는 유례를 찾기 힘듭니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1노3김으로 대표되는 4당 체제가 존속하기는 했지만 잠시였습니다. 3당합당과 DJP연대 과정을 거치면서 JP가 이끌었던 자유민주연합은 한국정당사에서 가장 강력한 제3당으로 군림했지만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맙니다.

4.13 총선을 바라보는 가장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는 ‘안철수’라는 키워드입니다. 안철수의 생존여부에 따라 제3당의 출현 또는 새정치의 가능성을 모색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철수 의원이 주도하는 국민의당은 4.13 총선에서 거대 여야 정당의 강고한 틀을 비집고 한국정치의 새로운 핵분열을 이끌어낼까요? 성공한다면 한국정치는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할 게 분명합니다. 그러나 실패하면 야권분열의 책임만 뒤집어쓸 우려 또한 적지 않습니다.

◇‘김종필, 정주영, 이인제, 문국현’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제3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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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보면 대한민국에서 제3당은 존속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한국정치의 기반 자체가 영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강력한 양당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대선이나 총선 국면에서 제3당이 혜성처럼 깜짝 등장하기도 했지만 곧바로 역사속으로 사라지거나 기존 여야 정당에 흡수되고 맙니다. 이는 다수가 공유하는 이념이나 비전보다는 특정인의 영향력에 기대어 제3당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1992년 대선에서 반값아파트 공약을 내걸고 돌풍을 일으켰던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통일국민당이 대표적입니다. 14대 총선에서 지역구 24석을 얻고 같은해 대선에서 16.31% 득표라는 저력을 발휘했지만 이후 문민정부 출범 이후 사라집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김종필 총재가 이끈 자유민주연합은 지역구 41석을 획득했지만 다음해 대선에서 DJP연대를 선택했습니다. 97년 대선에서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는 19.20%의 지지를 얻었지만 이후 제3당의 길을 걷는데 실패합니다. 2002년 대선에서도 유력 대선후보였던 정몽준의 국민통합 21이나 2007년 대선에서 깜짝 등장했던 문국현 후보의 창조한국당 역시 비슷한 길을 걸으며 사라집니다.

◇적대적 여야구조 비효율…‘새정치’ 갈망은 여전

제3당의 존속 가능성이 쉽지 않지만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것은 바로 새정치에 대한 국민적 갈망 때문입니다. 역대 주요 정당들도 국민적 기대에 부응해 당명에 ‘신(新)’이나 ‘새’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 대표 야당이었던 ‘신’민당이나 ‘신’한민주당, 문민정부 시절 ‘신’한국당, DJ가 정계복귀 이후 만든 ‘새’정치국민회의, 97년 대선 승리 이후 만든 ‘새’천년민주당 등 유난히 신이나 새가 들어간 이름이 많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전신 역시 ‘새’정치국민연합이었고 집권여당의 당명도 ‘새’누리당입니다.

안철수의 트레이드마크인 ‘새정치’라는 카드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민주주의라는 게 원래 비효율성과 이음동의어지만 한국정치는 해도 너무 합니다. 4.13 총선을 60일 남겨둔 19대 국회 막판에 보여준 여야의 모습은 실망 그 자체입니다. 18대 국회 막바지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던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의 개정 여부를 놓고 1월 한달 내내 지리한 공방전만 이어갔습니다. 특히 선거구 획정은 고사하고 주요 쟁점법안 처리마저 이견을 보이면서 국민을 걱정하게 만드는 정치만을 해왔습니다. 막강 실력자에 기대어 상대방을 비난하는 패거리 정치는 최소한의 철학과 가치를 공유했던 3김정치보다 나을 게 없습니다. 이 때문에 국민들은 늘 새정치를 고대해왔습니다. 제3의 대안적 정치세력의 탄생은 극단적 비방만을 일삼는 여야의 갈등 구조에 균열을 내고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국민의당의 파워는 이른바 기업활력제고특별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 당시 잘 나타났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일컬어 3김 이후 지역기반을 보유한 유일한 정치인이라고 합니다. 안철수는 2002년 대선 때 노풍(盧風)처럼 안풍(安風)이라는 바람을 만들어낸 마지막 정치인입니다. 2012년 대선정국에서 뜨겁게 불었던 안풍을 기억한다면 ‘새정치’의 가능성은 기대해볼만 합니다. 언론이 전하는 설 연휴 민심은 “여야 모두 꼴보기 싫다. 싸움박질 그만하고 경제부터 살려라”로 집약됩니다. 현 여야의 민심 성적표는 안철수의 새정치가 또다시 부상할 수 있는 든든한 기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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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넘어 산’ 안철수, 총선 성적표가 정치적 운명 결정

돌이켜보연 정치입문 이후 안철수가 보여준 행보에는 크게 3가지 의문이 남습니다. 우선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왜 나가지 않았을까요? 차기 대선으로 가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인 서울시장을 양보한 게 너무 아쉽습니다. 이어 2012년 대선과정에서 왜 후보 사퇴를 통한 야권후보 단일화 방식을 고집했을까요? 이해하기 힘든 대목입니다. 마지막으로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신당 창당이라는 독자노선의 깃발을 올렸다가 민주당과의 합당이라는 180도 정반대의 선택을 한 결정입니다. 본인의 새정치 브랜드를 가장 많이 갈아먹는 패착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하튼 안철수는 먼 길을 돌고 돌아 차가운 시베리아 벌판에 서있습니다. 본인의 정치인생을 건 비장한 각오로 4.13 총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어떤 성적표를 얻어야 새정치라는 브랜드를 꽃피울 수 있을까요. 새누리당의 과반을 저지한 가운데 제1야당으로 올라선다면 최상의 결과입니다. 차기 대선행보도 엄청난 탄력을 받을 것입니다. 만일 새누리당의 과반을 저지하지 못하더라도 최소 20석 이상을 확보하며 야권 전체 의석을 늘린다면 이 또한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180석 이상의 압승을 거두고 국민의당 또한 교섭단체구성에 실패한다면 이는 상상하기조차 싫은 최악의 결과입니다.

안철수가 처한 상황은 산넘어 산입니다. 공언했던 창당 전 교섭단체 구성은 물건너갔습니다. 더구나 15일까지 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하면 거액의 국고보조금 수령도 어렵습니다. 호남 현역의원 공천과 물갈이 여부 등 향후 당 운영에서 내부 파열음이 커질 가능성도 상존합니다. 아울러 국민의당이 ‘호남 자민련’이 되지 않기 위해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 얼마나 유능한 인재를 내놓을 것인가 역시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난제는 창조경제와 마찬가지로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새정치를 어떻게 구체화해서 국민들을 설득시키느냐는 일입니다.

한국정치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반드시 성공해야만 하는 안철수의 실험.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오늘은 4.13 총선 D-60일입니다. 이제 딱 두 달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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