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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차라리 심리학자가 더 필요"…중앙은행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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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가격 등락엔 온전히 사람들의 심리 반영돼

심리 읽고 안정 운용하는 게 중앙은행의 역할

"위기 때 경제학자보다 심리학자가 나을지도"

이데일리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서울 시내에 사는 30대 후반 직장인 김모씨는 2년마다 불안감에 떨고 있다. 다름 아닌 전셋값 폭등 탓이다. 그는 4년 전 2억원 초중반에 20평형대 아파트를 전세 계약했고, 지금도 살고 있다.

전세 만기가 곧 다시 다가온다고 한다. 현재 시세는 4억원에 육박한다. 2년 전 계약 때 1억원가량 올랐는데 또 수천만원 상승한 것이다. 4년새 두 배 가까이 올랐다. 김씨는 “수요와 공급 문제 때문에 이 정도 오르지 않았겠느냐”라며 막연하게 생각할 뿐이다.

그런데 김씨가 이상하게 여기는 게 있다. 전셋값은 해가 갈수록 급등하는데 자동차값은 급락한다는 점이다. 지난해 중순쯤 자동차보험 재계약 때 확인한 현재 가치는 500만원도 안 된다. 중고이긴 하지만 감가상각이 유독 심하다는 게 그의 느낌이다.

◇심리 읽고 안정 운용하는 게 중앙은행의 역할

김씨처럼 각 개별 상품의 가치가 들쭉날쭉 하는 건 왜일까. 왜 어떤 자산은 가만히 있어도 가격이 오르고 또 어떤 자산은 가격이 떨어지는 걸까. 그건 상품을 대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김씨의 전셋집은 ‘보증금을 4억원 가까이 주는 게 찝찝하긴 하지만 그래도 빌리겠다’는 분위기가 알게 모르게 형성돼버린 까닭이다. 매매가가 올랐다면 그 역시 같은 이유다. 대출을 받아서라도 기꺼이 사겠다고 소비자들의 심리가 바뀐 것이다.

중고 자동차값이 떨어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잦은 고장 가능성 등 이런저런 이유로 새 차보다 훨씬 적은 금액만 지불하겠다는 심리가 시장에 퍼져있어서다. 경제현상 자체가 사람들의 ‘선택’의 결과이고, 그로 인해 나타나는 가격은 모두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얘기다.

경제학을 전공한 한 국립대 교수는 “경기가 순환하는 건 경제주체의 심리가 반영되는 것”이라고 했다. 경기는 곧 각 거래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이 중앙은행이다. 물가의 급변을 막고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역할을 맡고 있어서다. 통화정책을 통해 경기가 얼어붙으면(사람들이 소비·투자를 하지 않으면) 데워주고, 과열되면 식혀주는 게 핵심 임무다. 한국은행 로비의 ‘물가안정’ 현판이 지난 1997년 이후 19년째 자리를 지키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이를 위해 요구되는 능력이 경제 심리를 읽어내고 대응하는 것이다.

◇“위기 때 경제학자보다 심리학자가 나을지도”

그런데 최근 각국 중앙은행의 행보는 낙제점을 면하기 어렵다. ‘마이너스 금리’가 대표적이다. 한없이 냉각돼있는 세계경기에 온기를 불어넣으려는 일본 유럽 등 중앙은행의 정책인데, 기대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는 탓이다. 연일 세계 증시는 패닉 상태다.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는데 여지없이 실패하고 불안감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뜻이다. 마이너스 금리가 은행의 수익 기반을 약화시켜 대출 여력을 줄이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닫힌 지갑을 열기 위한 회심의 카드가 오히려 자물쇠까지 채워버렸다는 지적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재닛 옐런 의장의 진화도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 미국 연준 의장은 ‘세계 경제 대통령’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마음은 좀처럼 열리지 않고 있다.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연 1.5%)까지 내린 한은도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김창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통화정책 자체가 작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그 효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중앙은행 무용론도 나온다. 현실에서 힘을 못 쓰는 주류 경제학에 기반한 중앙은행이라면, 존재이유가 있느냐는 냉정한 시선이다. 어느 금융권 인사는 “현재 위기를 타개하려면 경제학자보다 심리학자가 더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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