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로봇기자 시대 왔지만… 왜ㆍ어떻게는 인간만 쓸 수 있다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지금은 미디어 빅뱅 시대] 인공지능, 미디어의 미래인가

한국일보

오토메이티드 인사이츠(AI)가 개발한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워드스미스’는 세 단계 과정을 거쳐 글을 작성한다. 먼저 숫자로 된 정보를 수동 또는 자동으로 입력하면 이용자가 사전에 지정해 둔 형식에 수치가 대입되고 최종적으로 글이 생성된다. AI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워드스미스를 통해 컴퓨터가 제작할 수 있는 글의 종류는 그래프를 포함한 사업 보고서(사진), 기사, 선거 결과 중계, 교통 안내 등 다양하다. AI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 오토메이티드 인사이트社 탐방

인공지능 저널리즘 기술 선두주자

기사 작성 SW ‘워드스미스’ 개발

일정 양식에 수치 넣으면 글로 풀어

계산 오류 없고 속도 자랑

AP, 기업실적 기사 14배나 급증

기자들 일자리 빼앗길 위험 크지만

의미ㆍ배경 전하는 데 집중 가능해져

저널리즘 본질 실현에 도움될 수도

‘펩시코는 4분기 북미 지역 과자와 음료 매출이 가격 정책에 힘입어 상승했다고 밝혔다. 프리토레이칩스와 트로피카나 주스 제조업체(펩시코)는 그 동안 소비자들에게 더 많은 수익을 가져오기 위해 제품 구성을 개편하고 가격을 조정해 왔다. 여기에는 소비자들이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가치가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유리병에 담은 ‘게토레이’와 ‘마운틴 듀 듀사인’ 신제품 출시 계획 등이 포함됐다.’

세계적 통신사 AP가 지난 11일(현지시간) 내놓은 음료 제조업체 ‘펩시코’의 지난해 4분기 실적 기사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 기사에는 마지막에 따라 붙는 기자 이름과 이메일 주소가 없다. 대신 의미심장한 문구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이 기사는 오토메이티드 인사이트의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제작됐습니다.’

AP는 2014년 7월부터 분기별로 발표되는 기업 실적 기사에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 오토메이티드 인사이트(AI)가 만든 기사 작성 소프트웨어 ‘워드스미스’를 사용하고 있다. 사람이 아닌 컴퓨터가 기사를 써주는 이른바 ‘인공지능 저널리즘’(로봇 저널리즘) 실험을 시작한 것이다.

AP가 워드스미스를 도입한 이후 이전까지 분기 평균 300개에 그쳤던 기업 실적 기사는 최근 4,300개까지 늘었다. 로봇이 사람보다 14배 많은 기사를 쓴 것이다. 기사 한 건 작성에 걸리는 시간은 불과 1~2초이고 생성 가능한 기사 량에 제한도 없다.

AP는 전 세계 언론사에 기사 원본을 제공하는 통신사여서 이렇게 작성된 기사가 다른 언론사에 그대로 전달된다.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다는 뜻이다. 루 페라라 AP 부사장은 “워드스미스 덕에 거의 모든 기업의 실적을 다룰 수 있게 되면서 우리의 뉴스를 제공받는 각 지역 언론사들의 만족도가 높아졌다”며 “현재는 스포츠 기사 작성에도 워드스미스를 일부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 경제매체 포브스도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실적 기사를 만들고 있다. 이들은 내러티브 사이언스의 소프트웨어를 이용한다.

떠오르는 인공지능 스타트업 ‘AI’

AP의 워드스미스 활용은 이를 개발한 AI를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미국의 떠오르는 인공지능 신생 창업기업(스타트업) AI는 2007년 설립된 스포츠 중계 소프트웨어 제작 업체 ‘스탯쉿’이 전신이다.

이 업체는 금융 부동산 등 비 스포츠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2011년 이름을 AI로 바꿨고 지난해 2월 투자전문회사 ‘비스타 에퀴티 파트너스’에 인수됐다. 인수되기 전에 삼성과 AP, 스티브 케이스 AOL 공동 창업자에게 550만달러(약 66억원)를 투자 받았다.

직원 수 50여명에 불과한 AI의 본사를 최근 방문했다. AI는 듀크대,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등 유명 대학을 비롯해 IBM, 시스코, 레노버, SAS 등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업체들의 거점이 위치해 ‘미 동부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램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스타트업 입주가 활발한 이 곳에서 특이하게 AI의 사무실은 미 마이너리그(트리플에이) 야구팀 ‘더램불스’의 야구장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마치 야구장 외야석에 사무실을 통째로 갖다 놓은 느낌이다. AI 홍보 담당자 제임스 코테키는 “로빈 앨런 AI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직원 모두가 야구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며 “이 지역 기업 소식을 전하는 ‘트라이앵글 비즈니스 저널’로부터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일하기 좋은 회사로 선정됐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 '오토메이티드 인사이츠'의 미국 더램 본사 입구. 더램=이서희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미국 더램에 위치한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 '오토메이티드 인사이츠' 본사. 더램=이서희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빠르고 오류 없는 인공지능, 농담도 던진다

코테키는 AI의 대표 소프트웨어인 워드스미스를 한 마디로 “구조화된 수치를 글로 변환해주는 소프트웨어”라고 소개하며 “미디어 업계에서는 ‘로봇 기자’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일정 양식에 수치 자료를 대입하면 이를 글로 풀어준다는 뜻이다. 그래서 명확한 숫자가 나오는 전자상거래ㆍ마케팅ㆍ부동산 등 금융과 스포츠 분야에 가장 적합하다. AP가 워드스미스를 기업 실적 기사 작성에 활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워드스미스를 쓰는 주요 업체는 AP 외에 포털 야후, 보험회사 올스테이트, 온라인 중고자동차 판매 업체 에드먼즈닷컴 등이 있다. 올스테이트의 경우 매달 내부적으로 직원들에게 영업 성과 등 고과를 수치화해서 통보하는 대신 워드스미스를 이용해 편지로 조언하듯 알려준다. 에드먼즈닷컴은 중고차의 시세, 성능, 연식, 연비 등을 소개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소프트웨어가 글 작성에 투입될 경우 가장 큰 장점은 계산에 오류가 없고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2014년 LA타임스의 지진 보도다. 지난 2014년 3월 오전 6시25분 미 캘리포니아주 웨스트우트로부터 5마일(약 8km) 떨어진 곳에서 진도 4.7의 지진이 감지됐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이 소식을 바로 홈페이지에 게재했고, 이 지역 매체 LA타임스는 지진이 감지된 지 불과 20분 만에 인터넷에 기사를 띄웠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로봇 기자 ‘퀘이크봇’이었다. LA타임스의 기자이자 프로그래머인 켄 쉬웬키가 2012년 개발한 퀘이크봇은 USGS에서 지진 관련 정보가 뜨면 이를 추출해 미리 정해둔 양식대로 기사를 작성한다. 코테키는 “퀘이크봇 같은 소프트웨어는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여러 건의 기사를 동시에 작성할 수 있다”며 “그 덕에 콘텐츠는 많아지고 오류 발생 가능성이 적다”고 설명했다.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는 동시 처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개인화에도 능하다. 코테키는 야후를 예로 들었다. 야후는 이용자가 원하는 선수들로 팀을 구성해 풋볼 경기를 펼치는 온라인 게임 ‘야후 판타지 풋볼’에 2013년부터 워드스미스를 활용한 중계 기능을 추가했다.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워드스미스는 시시각각 나오는 결과를 글로 풀어 실시간 중계해 준다. 코테키는 “각각의 게임을 바탕으로 글이 작성되는 방식이어서 이용자가 수백만명이어도 모두 다른 중계를 보게 된다”며 “그냥 게임을 할 때보다 몰입감이 훨씬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진짜 사람이 쓴 것 같은 느낌을 살리기 위해 AI는 활용 주체의 성격에 따라 서체도 바꾼다. AP처럼 일정한 기사 양식이 있는 업체라면 항상 그 느낌을 유지하고, 야후 판타지 풋볼과 같은 게임에서는 친구가 말하는 것처럼 비속어와 유행어를 섞거나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컴퓨터가 사람의 일자리 빼앗을까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가 발전하면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선도적으로 로봇 기자를 채용한 AP도 이 같은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코테키는 “AP는 컴퓨터가 더 잘 해 낼 수 있는 일을 컴퓨터가 처리하도록 맡기면서 소속 기자들은 의미와 배경을 전하는 데 집중한다”며 “인공지능이 오히려 기자들에게 저널리즘의 본질에 더 가까운 일을 하도록 도운 셈”이라고 강조했다.

AI는 앞으로 인공지능이 더 발전해도 사람만 가능한 영역이 분명 존재한다고 본다. 코테키는 “컴퓨터는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 지 전할 수 있지만 왜, 어떻게 했는지를 분석하지 못한다”며 “왜와 어떻게 했는 지를 설명하는 것은 앞으로도 자동화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컴퓨터의 역할은 ‘기본’을 다하는 것이고 여기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라는 의미다.

단 코테키는 “지금 직업을 찾고 있다면 20~30년 뒤에 자동화될 가능성이 있는지부터 따져보라”고 조언했다. 자율주행자동차가 등장하면 기사라는 직업이 사라질 수 있듯이 기술의 발전으로 없어질 가능성이 높은 직업이라면 선택하지 말라는 뜻이다. 코테키는 “분명한 사실은 시간이 흐를수록 기계가 사람을 대체할 분야가 더 늘어날 것”이라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람이 컴퓨터보다 잘 할 수 있는 일을 명확히 구분해 단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램=이서희기자 shlee@hankookilbo.com

한국일보

제임스 코테키 오토메이티드 인사이츠 홍보담당은 “컴퓨터는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은 전할 수 있지만 '왜, 어떻게'는 분석하지 못한다”며 “왜와 어떻게를 설명하는 것은 앞으로도 자동화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램=이서희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