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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2시간 감금, 협박문자 100통… 사랑싸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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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폭력 경찰 집중단속 결과

울산에 사는 직장인 A(23ㆍ여)씨는 지난달 끔찍한 경험을 했다. 한 달 정도 만나오던 동갑내기 남자친구 김모씨에게 결별을 선언하자 갑자기 돌변한 김씨가 “너는 맞아야 된다”고 압박하거나 성관계 사실을 알리겠다는 협박 문자를 보름간 100여차례나 보냈기 때문이다. A씨 어머니까지 나서 설득했지만 김씨는 요지부동이었고, 결국 김씨를 경찰에 신고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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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연인 사이의 사랑 싸움으로 치부됐던 ‘데이트폭력’ 범죄가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 경찰청이 3~10일 데이트폭력 집중단속에 나선 결과, 일주일 만에 376건의 신고가 접수돼 17명이 구속됐다고 12일 밝혔다. 불구속된 인원도 195명에 달하는데 전년 동기(143명) 대비 48.2%나 증가한 수치다. 또 85명에 대해서는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이다. 데이트폭력에 대한 사전 예방 대책 마련, 엄정한 처벌과 함께 사회적 인식 전환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3~10일 데이트폭력으로 형사 입건된 사건을 유형별로 보면 폭행 및 상해(151명)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경찰은 사소한 폭행도 반복될 경우 살인 등 중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실제 지난해 5월 서울에서 이별을 요구한 연인을 살해하고 암매장한 이모(26)씨는 평소 여자친구를 자주 폭행해 손가락을 부러뜨리기까지 한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경찰청 관계자는 “일반 살인과 달리 연인 살인 사건은 작은 다툼에서 갈등이 싹트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잦은 접촉을 하는 연인관계의 특성상 감정이 통제되지 않을수록 폭력의 강도를 끌어 올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감금ㆍ협박(34명) 발생 비율이 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2일 충북 청주에서는 1년간 교제한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통보한 데 격분, 집으로 불러 2시간 넘게 감금하고 강제로 성관계를 시도하려다 실패한 윤모(24)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전문가들은 감금이나 협박은 물리적 폭력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전초 징후여서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사무국장은 “보통 연인 사이의 불협화음은 위협과 감금 등 지속적 괴롭힘이 이어지다가 폭행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다”며 “데이트 폭력 빈도와 수위를 낮추려면 낮은 수위의 보복 행위부터 선제적으로 문제 삼고 예방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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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2016-02-12(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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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도 데이트폭력의 심각성을 인식해 최근 전국 251개 경찰서에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피해자의 위치를 실시간 파악할 수 있는 스마트워치를 지급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달 초 전남 목포에서는 두 달 동안 사귀던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를 만난다는 이유로 폭행한 40대 피의자를 데이트폭력 TF팀이 즉각 출동해 검거하는 등 가시적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수면 위로 떠오른 데이트폭력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수사기관의 엄정한 처벌과 예방 못지 않게 사회 전반의 인식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현혜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는 “데이트폭력은 새롭게 등장한 범죄 유형이 아니라 그간 꾸준히 반복돼 왔으나 애써 외면해 온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라며 “피해자의 잘못을 탓하거나 연인끼리 사적 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범죄라는 인식 하에 주변에서도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환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신혜정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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