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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생명의 다리' 위로가 독이 되다… 마포대교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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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광고로 대중에 알려지며 투신자 되레 폭증

“밥은 먹었어?”,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어때?”

저는 사람들이 다가오면 이런 식으로 정감 나는 문구를 넌지시 내밀어주고는 했어요. 누구든 절대 무심히 대하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었거든요. 캄캄한 밤에 찾아오는 분들에겐 특별히 불빛을 반짝이며 “속상해 하지마”, “많이 힘들었지”라고 속삭였어요. 오지랖도 넓다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혹시나 ‘세상 참 살기 싫다’고 저를 찾아 온 분들이 계시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응원해 주고 싶었습니다.

세계일보

11일 한 시민이 다리 양 난간에 ‘속상해 하지마’ 등 투신 자살을 막기 위한 문구가 적힌 서울 마포대교 위를 걸어가고 있다. 이제원 기자


아참,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서울 여의도와 마포를 잇는 ‘마포대교’인데 2012년 9월부터 양쪽 난간 위에 ‘따스한 글귀’들을 올려놨어요.

서울시와 삼성생명이 함께 기획한 것으로, 저는 시민들이 낸 아이디어 중에서 선정된 문구를 보여드리기만 하면 됐어요. 이런 식의 자살예방 캠페인은 세계 최초라네요. 그래선지 2013년 해외 유수 광고제에서 상을 37개나 받았어요. 시도 자체가 새로운 데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진정성이 느껴졌다는 호평과 함께요.

그런데 말이죠, 세상 일이라는 게 내 마음 같지 않더군요. 제가 그냥 가만히 서 있던 2011년에는 한강으로 뛰어든 분이 11명(사망 5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듬해 15명(〃 6명)으로 늘더니 2013년 93명(〃 5명), 2014년 184명(〃 5명)으로 폭증했어요.

사람이 오갈 수 있는 서울의 전체 한강 다리(27개)에서 2014년 한 해 투신 (시도)한 사람이 396명(사망 11명)인데 절반(46.5%) 가까이가 투신장소로 저를 택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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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삶 자체에 회의를 느끼는 사람들이 유독 저를 찾아 오니 제가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따뜻한 말과 글로 위로하려 애쓴 저의 노력도 공허한 짓처럼 느껴졌으니까요. 오죽하면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광화문 글판의 ‘사람이 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다’는 시구가 제게는 두렵더라고요. 이틀에 한 명꼴로 제 앞에서 한강으로 몸을 던지는데 왜 안 그랬겠어요. 경찰에 물어보니 ‘N포세대’로 불리는 20대 투신율이 제일 높다고 해서 더욱 안타까웠습니다. 원인을 놓고 ‘생명의 다리’라는 과도한 홍보가 역효과를 불렀다는 진단도 있었어요.

연세대 이수정 교수(심리학)는 “심리학에 특정 단어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되레 더 많이 떠올리는 백곰효과(White Bear Effect)라는 것이 있다”며 “자살을 하지 말라면서 다리를 꾸며 놓으니 사고를 부추긴 꼴이 됐다”고 꼬집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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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제가 ‘자살대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자 서울시와 삼성생명도 손을 들어버리더라고요. 연간 1억5000만원 수준인 마포대교 자살 예방 운영비 지원을 중단한 거죠. 결국 지난해 12월부터는 응원 문구 조명도 꺼졌어요. 서울시는 자살 방지대책을 수정해 이르면 5월 이후 제 난간을 높이기로 했습니다. 사후약방문이란 지적을 받는 대목입니다.

“애초 난간을 높이는 등의 물리적 조치를 병행했어야 하는데 감성적으로 접근해 문제를 키운 감이 있다”(국립중앙의료원 김현정 전문의)는 겁니다. 물론 난간을 높인다고 끝난 게 아닐 테죠. 시간이 걸리더라도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 “누구든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을 상담 창구가 대대적으로 확충돼야 한다”는 정택수 한국자살예방센터장의 조언도 새겨들어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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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서울 마포대교에 설치된 자살방지 문구와 SOS생명의 전화 앞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이제원기자


홍진표 중앙자살예방센터장은 “마포대교의 구조물을 긍정적인 전시물로 바꿨으면 좋겠다”며 제가 오명을 벗을 수 있도록 괜찮은 아이디어를 귀띔해줬습니다. 가령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모이는 다리’ 등으로 콘셉트를 다시 잡아 남녀, 애완동물, 민족, 종교 등 다양한 사랑의 형태를 다리와 결합해보라는 겁니다.

캬∼ ‘사랑대교’라. 마포대교에 가는 그 누구든 사랑이 싹트고 꽃을 피운다니, 듣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네요. 그런 다리로 거듭나는 게 새해 소망입니다.

김선영·김라윤 기자 00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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