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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하나라도 더" 車 지붕까지 짐 쌓고 피란가듯 南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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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 개성공단 전원 추방 / 멘붕상태 '개성공단 나들목' 파주 CIQ ◆

매일경제

개성에서 온 제품들
11일 개성공단에서 물품을 가득 싣고 돌아온 화물차량에서 업체 직원들이 짐을 내려 다른 차량으로 옮기고 있다. [김호영 기자]


북한이 개성공단 인원에 대해 추방 조치를 내린 11일 오후 5시께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통일부 남북출입사무소(CIQ)는 일대 혼란에 빠졌다. 공장에서 물품을 챙기던 기업 관계자 상당수가 전날 우리 정부가 밝힌 공단 운영 중단 방침만 알고 있다가 "오후 5시 30분까지 나가라"는 북측 통보를 받고서 챙기던 짐을 제대로 갈무리도 하지 못한 채 CIQ로 몰려들었다. 한 입주 기업 직원은 "갑작스레 퇴거 통보를 받아 정작 중요한 원자재와 부품은 하나도 싣지 못하고 돌아왔다"며 안타까워했다.

남측에서 대기하고 있던 입주 기업 관계자들 역시 북한의 갑작스러운 개성공단 내 자산 동결, 인력 강제 철수 발표를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북한이 하루 동안 개성공단 입·출경과 원·부자재, 완제품 반출을 허용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 정부가 철수 시한만 연장해준다면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던 터였기에 더 큰 허탈감에 빠진 모습이었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한 의류업체 임원은 "북한 시간으로 오후 5시에 통일부 산하 관리위원회에서 남측 근로자들을 소집한다고 공지했는데 다들 현장에서 짐을 꾸리다 보니 제때 통보를 못 받은 것 같다"며 "이제 개성에 있는 자재와 제품을 다 못 쓰게 됐으니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른 의류업체 관계자 역시 "내일까지 머물며 자재를 빼오려고 했는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맨몸으로 나왔다"고 전했다.

남북경협보험에 가입한 기업들은 손실액의 90% 범위에서 70억원까지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124개 입주사 가운데 보험에 가입한 업체가 76개밖에 되지 않는 데다 보상 대상이 현지에 투자된 유형 자산에 한정되기 때문에 기업들의 반발은 거세다. 개성에 두고 온 제품, 원·부자재는 물론 거래처 단절이나 손해배상 대응으로 발생할 미래 영업손실에 대한 보상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한 섬유업종 기업 관계자는 "보험 가입률이 낮은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영세업체들이 보험료를 아끼느라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공단에 있는 자산의 가치를 수출입은행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해 가입하지 못한 사례가 많다"며 "게다가 미리 신고한 시설투자액만 보험 적용 대상이라 재고 자산은 그대로 손해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책자금 저리대출이나 대체토지 제공 등 정부에서 검토 중인 다른 지원 방안에 대해서도 기업들은 대부분 '미봉책'이라는 반응이다.

입주 기업들의 모임인 개성공단기업협회는 이날 오후 5시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임시이사회를 열고 △자산반출 기한 연장 △인력 및 차량 출입제한 완화 등을 정부에 요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사회 개회와 동시에 북한의 자산 동결 소식이 전해지면서 회의장은 크게 술렁였다. 이사회를 주재하던 정기섭 개성공단기업협회장(에스엔지 대표)도 이사회 도중 북측의 발표 내용을 접하고는 할 말을 잇지 못하고 망연자실했다.

정 회장은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면서도 충분히 정부 의도대로 북한을 압박할 수 있었을 텐데 이 모든 일을 일방적으로 진행하며 기업들을 도산 위기로 내몬 것은 정부의 잘못"이라며 "기업들의 피해에 대한 실질적 보상이 없다면 법률적 검토를 통해 정부와 소송전도 불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의 피해 정도를 묻는 질문에 정 회장은 "2013년 통일부에서 피해를 집계할 때는 업체들이 실제 입은 손실만 반영했지 영업권이 없어지면서 발생하는 무형 손실은 반영하지 않았다"며 "개별 기업별로 집계해 며칠 안에 추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사회에 참여한 다른 기업인들도 정부의 일방적인 공단 가동 중단이 자산 동결이라는 파국을 초래하면서 막대한 손실을 떠안게 됐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성현상 만선 대표는 "지금까지 개성공단에 투자한 돈이 130억~140억원 정도 되는데 얼마나 건질 수 있을지 참담한 심정"이라며 "지금 상황대로라면 개성공단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은 사실상 전부 도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기업인은 "오후 3시에 나오는 트럭은 통과가 됐는데 5시에 나오는 트럭은 북한 출입국 사무소에서 제재를 당해 실었던 제품과 원·부자재를 공장에 내려놓고 왔다"며 "개성 내에 있는 자산이 100억원어치 정도 되는데 그중 오늘 회수한 자산은 2000만원 정도"라고 전했다.

[파주 남북출입사무소 = 노승환 기자 / 서울 = 정순우 기자 / 안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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