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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르포> 사고 5년 후쿠시마원전은 지금…"40년 폐로여정, 이제 1부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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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방사능 오염수 저장탱크(후쿠시마 제1원전=공동취재단)


원전 단지내 상황 개선됐지만 녹은 핵연료 손도 못대…오염수도 여전한 난제

"중층적 방어태세·부단한 사고(思考)없으면 원자력 다룰 자격없어"

(후쿠시마 제1원전=공동취재단) 조준형 특파원 = "저기 저 건물 중간 부분에 검은색 때가 보이십니까. 저것이 5년 전 해일의 흔적입니다. 그때로 치면 여러분은 지금 물 밑을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10일 일본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을 찾은 외신 공동취재단 기자들을 태운 버스가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 직전까지 폐기물 처리장으로 쓰였던 건물을 지나갈 때 가이드를 맡은 원전 직원이 한 말이다. 아직 현장에는 '그 날'의 상흔이 남아 있었다.

체르노빌 사고와 함께 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로 평가되는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내달이면 만 5년이 된다.

"도쿄가 궤멸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는 간 나오토(菅直人) 당시 일본 총리의 발언이 상징적으로 말해주듯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는 발생 이후 한동안 전 세계를 방사능 공포에 떨게 한 것은 물론 원전 안전신화를 일거에 깨부순 재앙이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일본 안에서 후쿠시마원전은 더 이상 '핫이슈'라고 보기 어렵다.

작년 8월부터 센다이(川內) 원전(가고시마현)과 다카하마(高浜) 원전(후쿠이현)이 잇달아 재가동되면서 일본은 다시 원전 가동국가로 복귀했고 후쿠시마 원전의 상태와 관련한 언론 보도는 뜸해졌다. 보도가 줄어든 것은 최악의 고비는 넘겼음을 말해주는 동시에 원전의 위험성이 일본인의 기억에서 잊히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날 오노 아키라(小野明) 후쿠시마 제1원전 소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원전은 안정된 상태"라고 말했다.

실제로 '안정된 상태'임을 보여주는, '진전'의 정황들이 있었다.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은 2013년 사고 2주년 무렵 진행된 프레스 투어때 전면 마스크, 작년 투어때 반면(半面) 마스크를 주더니 올해는 미세먼지 대처용 방진 마스크를 지급해 취재의 피로도는 한결 덜했다.

3년전 원전 단지내 옥외에 있던 모든 사람이 쓰고 있었던 전면 마스크는 원자로 주변 등 일부 지점에서 일하는 사람만 착용하고 있다는게 도쿄전력의 설명이었다. 원전에서 뿜어져 나온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원전 단지 내 토양을 시멘트 등으로 포장하고 수소폭발 때 발생한 건물 잔해들을 상당 부분 치운데 따른 변화였다.

이날 도쿄전력은 '방사능 오염수'와의 싸움을 위해 구축한 '진지'를 기자들에게 하나하나 보여줬다.

취재진은 삼중수소를 제외한 62가지 방사성 핵종을 제거할 수 있는 장비인 '다핵종(多核種)제거설비'(ALPS), 오염수 유출 사고를 일으킨 '플랜지형 탱크'(강철판을 볼트로 조립해 만든 것)를 '용접형 탱크'로 교체하는 작업이 한창 진행중인 현장 등을 둘러봤다.

또 지하수를 퍼내는 원자로 건물 주변의 우물인 '서브 드레인', 땅을 얼림으로써 지하수가 원전 건물 내부로 들어가 오염수로 변하는 것을 막는 동토차수벽, 1∼4호기 원자로 부지의 바다쪽에 설치한 길이 약 780m의 차수벽 등을 직접 확인했다.

이런 설비들을 활용해 작년 한해 오염수 처리 부분에서 진전을 이뤘다고 오노 소장은 자신있게 말했다. .

더불어 원자로 4기(1∼4호기)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지점에 서니 폐로(원자로 해체)의 1단계 조치인 사용후 핵연료 인출 작업이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4호기는 2014년 12월부로 사용후 핵연료 1천 535개를 모두 인출하는데 성공했고 1호기는 인출 작업에 앞서, 방사성 물질이 상공으로 날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했던 커버를 철거하는 작업을 진행중이었다. 사고 당시의 수소폭발로 파괴된 원자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3호기에서는 사용후 핵연료를 꺼내기 앞서 사고 잔해들을 철거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원전 관리와 각종 시설물 건축 등에 투입된 8천여명(하루 평균 근무인원)의 근로자는 사고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이 개선된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었다. 최대 1천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휴게소가 작년 건립돼 그전까지 찬 도시락을 먹던 근로자들에게 따뜻한 밥을 제공할 수 있게 된 것도 폐로까지의 '장기전'에 대비한 진전이었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의 '근본 문제'라 할 용융 핵연료 인출은 아직 실질적 진전이 없었다. 원자로 안에서 녹아내려 무질서하게 방치된 핵연료가 그대로 있는 이상 후쿠시마원전은 여전히 '폭탄'인 셈이었다.

오노 소장이 기자들에게 "폐로가 10부 능선이라면 이제 1부 능선에 올라 섰을 뿐"이라고 말한 것도 결국 용융 핵연료 인출의 어려움을 감안한 발언이었다.

원자로 내부 압력용기를 뚫고 격납용기 바닥으로 떨어진 용융 핵연료를 꺼내는 작업은 30∼40년 공정인 폐로의 핵심 작업이자 최대 난제라고 오노 소장은 설명했다.

첫 과제는 녹아내린 핵연료가 정확히 어디에 어떤 상태로 있는지 파악하는 일. 사고 원자로 내부의 높은 방사선량 때문에 사람이 진입할 수 없는 탓에 로봇을 투입해야 하는데 생각만큼 진전 속도가 나오지 않고 있다. 작년 4월부터 로봇으로 1호기 내부 상황을 부분적으로 파악한 이후 2호기에도 로봇을 투입을 하려 했지만 미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로봇은 개발이 됐는데 높은 방사선량 때문에 로봇을 원자로 내부로 밀어넣는 작업에 나설 근로자의 안전을 담보할 없기 때문이라는게 오노 소장의 설명이었다.

용융 핵연료의 처리는 결국 향후 로봇 및 원격 조작 기술의 발전 속도에 달려 있었다. 30∼40년으로 잡은 예상 폐로기간이 단축될지 더 늘어날지도 결국은 로봇 기술의 발전에 연동돼 있다는게 도쿄전력의 설명이다.

이날 용융 핵연료 탓에 취재진은 원자로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있을 때도 '빨리 보고 버스에 타라'는 도쿄전력 관계자의 재촉을 받아야 했다. 1∼4호기 원자로를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섰을 때 원자로로부터 100m 남짓 떨어져 있었지만 방사선량은 시간당 180마이크로시버트(μ㏜)였다. 그 지점에 6시간 서 있으면 일본 정부가 정한 연간 개인 피폭 한계치(1밀리시버트< mSv>)를 훌쩍 뛰어넘는 선량이었다.

오염수 문제도 여전한 고민거리다. 원전 건물로 흘러 들어오는 지하수로 인한 오염수가 여전히 하루 약 300t씩 생성되고 있다고 도쿄전력 관계자는 전했다. 오염수 생성을 줄이기 위해 345억 엔(약 3천 647억 원)의 국비를 들여 만든 동토차수벽은 지난 9일자로 완공했지만 아직 원자력규제위원회로부터 동결 허가를 받지 못했다. 동토벽으로 지하수 흐름이 차단됐을 때 원자로 건물 지하에 쌓인 고농도 오염수가 토양으로 흘러나오지 않도록 하는 대책이 분명치 않기 때문이었다.

오염수를 획기적으로 줄이지 못하면 원전 부지 안에 설치할 수 있는 오염수 저장 탱크의 용량도 결국 한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의 오염제거 기술로도 오염수에서 삼중수소까지는 제거할 수 없기 때문에 이미 지자체의 동의 속에 작년 소규모로 시작한 오염수의 해양방출이 재차 큰 논란을 야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보였다.

취재에 동행한 오카무라 유이치(岡村祐一) 도쿄전력 대변인의 마지막 말이 인상적이었다. 지난 5년 사이에 원전 사고를 수습하며 얻은 교훈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리스크에 대한 생각이 멈춰버렸던 것(사고정지)을 반성했다"며 한 말이었다.

그는 "해일의 높이를 추측하고 그 범위 이상의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국가(원전 규제기관)도, 사업자(도쿄전력)도 무작정 믿어버린 것이 사고를 막지 못한 원인이었다"며 "중층적인 방어 태세(defense in depth), 생각을 멈추지 않는 배움의 태도에 더해 개인의 기술향상을 계속하지 않으면 우리는 원자력을 다룰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반대 여론이 찬성보다 강한 상황에서 원전을 속속 다시 가동하고 있는 일본 뿐 아니라 '원전 마피아'의 비리 적발과 함께 원자력 안전 문제가 수면위로 올라온 한국에서도 새겨 들어야할 말인 듯 싶었다.

jhcho@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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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잔해 철거가 진행중인 후쿠시마 제1원전 3호기 건물(후쿠시마제1원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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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취재진과 회견하는 후쿠시마 제1원전 오노 소장(후쿠시마 제1원전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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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후쿠시마 제1원전 원자로 건물들이 보이는 곳에서 도쿄전력 관계자들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는 취재진(후쿠시마제1원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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