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고개 돌리는 곳마다 눈 천지… 열차가 멈추면 또 다른 이야기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해안 철도 '리조트 시라카미' 열차

기차가 설원(雪原)을 헤치고 두 줄 철길 위를 달렸다. 차창(車窓) 밖으로 낮은 집들이 정겹다. 끝이 없어 보이는 눈밭을 달리는가 싶더니 이내 탁 트인 바다가 나타난다. "아~!"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일본 혼슈 북부 아오모리~아키타를 달리는 리조트 시라카미 열차다. 기차는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고노센(五能線)을 달린다. 일본에서도 한 번쯤 오고 싶은 해안 철도로 이름났다. 바다는 불과 5~10m 거리에 있다. 아키타 방향으로 달리면 오른쪽은 바다, 왼쪽은 세계자연유산 시라카미(白神) 산지다.

눈길을 어느 곳으로 돌리든 눈 천지였다. "아오모리는 일본에서 30만명 이상 도시 중 눈이 가장 많이 오는 곳이에요. 평균 강설량 426㎝, 많은 해에는 겨울 한철 6m까지 쌓여요."(아오모리현 관광국 사이토 요시마사씨)

조선일보

눈 내리는 마을 시골역에 리조트 시라카미 열차가 정차했다. 일본 아오모리~아키타 구간을 달리는 해안 철도다. 설원과 바다 풍경이 이어진다. / 하성기 디지틀조선일보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시라카미 열차 탑승 시간은 5시간. 짧지 않지만 지루할 틈이 없다. 열차 맨 앞 차량에서 전통 악기 샤미센 연주를 한다. 아오모리역 출발 후 2시간쯤 지난 때였다. 이어 센조지키역에서는 15분간 정차했다. 열차에서 내려 걸어서 1분도 안 걸리는 바닷가로 나가 사진을 찍었다. 다시 출발 후 30분쯤 지났을까, 바다 풍광이 가장 좋은 곳이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면서 열차는 속도를 늦췄다. 멋진 풍경을 마음껏 즐기라는 배려였다.

아오모리 역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핫코다산(八甲田山·1585m)은 천연 스키장으로 유명하다. 로프웨이로 정상까지 올라간다. 단단히 차려입은 스키어들이 보드와 스키를 즐긴다. 소나무 일종인 '아오모리 도도마쓰'에 눈이 쌓이면서 눈사람 모습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수빙(樹氷)이라고 부른다. 정상에 오르는 길 수빙들이 마치 내가 뿌리내린 산을 수호하겠다는 듯 결연히 늘어서 있었다.

조선일보

고쇼가와라 마을에서 만드는 대형 불빛 인형 ‘다치네부타’. 높이 23m, 무게 19t에 이른다


인근 스카유 온천은 남녀 혼욕(混浴)으로 유명하다. 혼탕인 센닌부로(千人風呂)에 들어갔다. 옷갈아 입는 곳은 남녀가 다르지만 탕에서는 서로 만나게 된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상대를 쳐다보지 말라'는 주의사항이 적혀 있다. 조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탕에 들어갔다. 나무로 만든 대형 온천탕에 나무 표지로 남녀 구역을 나눠 놓았을 뿐 같은 탕 안에 남녀가 함께 있다. 남자들은 모두 옷을 벗었지만, 여성 대부분은 온천에서 빌려주거나 살 수 있는 욕탕 전용 겉옷을 입고 있었다.

아오모리현 히로사키(弘前)시는 예부터 이 지역 중심지였다. 번주(藩主)가 살았던 히로사키성(城)은 봄철 손꼽히는 벚꽃 명소다. 겨울에도 볼거리는 있다. 14일까지 '눈 등롱 축제'를 연다. 히로사키성 천수각은 원래 자리에서 70m 이동한 곳에 있다. 돌 쌓은 기단이 붕괴할 우려가 있다는 진단에 따라 지난해 9월 400t에 이르는 건물을 통째로 옮겼다. 2025년쯤 원래 자리로 되돌아간다고 한다.

종착역 아키타는 드라마 '아이리스(IRIS)'를 찍은 곳. 주인공 이병헌과 김태희는 다자와코(田�湖)에 놓인 여인상 '다쓰코 동상' 앞에서 뜨겁게 포옹하며 사랑을 확인한다. 아키타역에서 자동차로 2시간쯤 거리에 있다. 다자와코역은 온통 아이리스 홍보관이었다. 2층 전시 공간에 드라마 장면 사진을 전시하고 촬영된 장소가 어느 곳인지 설명을 달았다. 전시실에는 드라마 장면이 계속 흘러나왔다. 작은 역인데도 신칸센이 하루 16차례 선다고 한다. 안내 직원은 "요즘은 태국 같은 동남아 국가에서 아이리스 촬영지를 보려는 목적으로 많이 찾아온다"고 했다.

리조트 시라카미 열차는 모두 22개 역에 정차한다. 마음에 드는 곳에 내려 즉흥적으로 즐긴다. 아모모리역에 더 가까운 고쇼가와라(五所川原)에서 내렸다. 고쇼가와라는 인구 6만명의 작은 도시. 8월 '다치네부타' 축제가 열리면 110만명이 몰리는 대도시로 변신한다. '다치네부타'는 높이 23m, 무게 19t에 이르는 대형 인형이다. 내부에 불빛을 밝히면 화려한 모습을 자랑한다. 역 인근 전시관에서 최근 3년간 만든 다치네부타를 볼 수 있다. 먼저 크기에 놀라고 화려함에 다시 놀랐다. 매년 새로 만드는데 지금 새것을 만드는 과정이 한창이다. 3년 전 만든 것은 폐기한다. "아깝다"고 했더니 전시관 매니저 이시가와씨는 "가져갈 수 있으면 가져가도 좋다"며 웃었다.

고쇼가와라에 내렸다면 '스토브 열차'를 타야 한다. 객차에 난로를 설치한 두 량짜리 열차가 20.7㎞ 구간을 달린다. 열차 지붕을 뚫고 밖으로 나온 연통에서 하얀 김이 솟아오른다. 마른오징어를 사서 건네주면 직원이 난로 위에 놓고 즉석에서 구워준다. 열차에서만 파는 청주 '스토브 사케'도 함께 즐긴다. 중간 지점인 가나기(金木)는 일본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고향이다. 생가를 전시관으로 꾸몄다.

조선일보

인천공항에서 아오모리까지 직항편 주3회(수·금·일) 오전 10시30분 출발. 비행 시간 2시간20분. 리조트 시라카미 열차는 3월까지 아오모리역에서 오전 8시10분, 오후 1시54분 2회 출발. 오전에 출발하는 열차만 센조지키역에서 15분 정차한다. 오후 출발 차량은 이 역을 그냥 통과한다. 고노센 프리패스권(3810엔)으로 이틀간 사용할 수 있다. 지정석권을 따로 사야 한다. 히로사키~아키타 구간 지정석권은 520엔. 고쇼가와라역에서 출발하는 스토브 열차는 하루 2회(오전 11시40분, 오후 2시10분. 토·일요일에는 오전 9시 20분 열차 추가 운행) 3월까지만 운행한다. 가나기역까지 950엔.

조선일보

핫코다산 로프웨이(www.hakkoda-ropeway.jp) 왕복 1850엔. 10분이면 산정(山頂)에 닿는다. 스카유 온천 입욕권 1000엔. 비누를 사용할 수 없다. 유황 온천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료칸 시설을 갖춰 숙박 가능. 아침·저녁 식사 포함 1인 1만7000엔 정도. 일본 숙박 예약 사이트 '자란'(www.jalan.net) 등에서 예약할 수 있다.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열차에서 점심은 에키벤(역에서 파는 도시락·사진)으로 한다. 1000엔 내외 여러 가지 에키벤이 있다. 역에서 미리 사는 게 좋다. 열차 안에서도 팔지만 금세 매진된다. 도리메시(鷄めし·880엔)를 먹었는데 지역 인기 1위 에키벤이라고 한다. 간을 한 밥 위에 닭고기를 올리고 어묵 등을 곁들였다. 제조사는 메이지 32년(1899년) 창업했다고 한다.





[아오모리·아키타=이한수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