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평(三視世評)] 아이돌만 쥐어짠 '함량 미달' 설 예능

지상파 3社 설 특집 예능프로 보니

설 명절 대한민국 아이돌은 전 부치는 며느리보다 바빴다. 이번 설엔 달리기도 하고 씨름도 하고 사돈에 팔촌까지 불러 노래자랑도 하고 해먹에 매달려 요가도 했다. 여기저기서 아이돌 비명이 들려오는 가운데, 설 연휴 기간 지상파 3사가 마련한 특집 프로중 콘셉트가 돋보이는 예능을 한 편씩 챙겨봤다.

◇SBS '사장님이 보고 있다'

6일 저녁 8시 45분에 방송된 이 프로는 튀는 제목으로 관심을 끌었다. 19개팀 아이돌 125명이 나와 경연하는 방식은 MBC '아육대'(아이돌 육상 선수권대회)를 본떴다. 여기에 아이돌 그룹 소속사 대표들을 합류시킨 것이 핵심이다.

사장님들은 체력·개인기·운·두뇌·팀워크를 아이돌로 성공하기 위한 5가지 '덕목'으로 정하고, 씨름이나 닭싸움 같은 걸 시켜보면서 각각의 '덕목'을 테스트했다. 최수현 기자는 "10대 아이돌들이 팔짱 끼고 앉아 있는 사장님 눈치 봐가며 악착같이 달려드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새해 벽두부터 서글펐다"고 했다. 김윤덕 기자는 "아이돌들이 사장님에게 '1등 하면 소고기 사주세요' 하고 조르는 모습에 가슴이 착잡했다"며 혀를 찼다.

제4덕목인 '두뇌 테스트'는 통편집됐다. 퀴즈 대결이었던 모양인데 내레이션 몇 줄로 처리했다. 권승준 기자는 "그 와중에 한 여자 아이돌이 PPL로 추정되는 화장품을 찍어바르는 장면을 보여주니 황당했다"고 했다. 김윤덕 기자는 "아이돌 이름도 헷갈리는데 사장님 얼굴까지 익혀야 하니 머리가 아팠다"며 "그래도 아이돌 이름 적어 붙인 야쿠르트 수백개를 날마다 방송사 PD들 자리에 갖다놓았다는 어느 사장님의 고백은 뭉클했다"고 말했다.

◇MBC '톡하는 대로'

7일 밤 11시 15분에 방송된 이 프로그램은 여행 예능의 '미다스의 손' 나영석 PD(tvN)를 따라 가보려 한 흔적이 역력했다. 배우 윤계상과 권율, 개그맨 유세윤과 걸그룹 피에스타의 중국인 멤버 차오루, 고3 동갑내기 3인방을 각각 묶어 여행을 보냈다. 네티즌들이 SNS 실시간 댓글을 통해 지시하는 그대로 '대리 여행'을 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여행을 떠나서도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출연자들을 지켜봐야만 했다. 멋진 풍광도, 일상에서 벗어난 해방감도 없이 괜히 겨울 바다 입수 같은 걸로 생고생만 했다. 가뜩이나 늦은 시간인데 전개가 늘어지니 졸음만 쏟아질 뿐. 권승준 기자는 "엉뚱한 한국말로 폭소를 터뜨린 차오루의 솔직발랄한 매력이 그나마 프로그램을 구했다"고 평했다.

◇KBS '머슬퀸 프로젝트'

이 프로그램은 무척 영리하게 시청자를 파고들었다. 기름진 음식 실컷 먹고서 '이제 운동 좀 해야 되는데' 생각할 쯤인 명절 다음 날(9일 오후 5시 10분)을 골랐다. 단순히 체중 줄이는 다이어트가 아니라 탄력 넘치는 몸매를 만든다는 취지로 빼빼 마른 여자 아이돌을 동원했다. 멋진 몸매를 원하는 여성 시청자에겐 정보를 주고, 남성들에겐 눈요깃거리를 제공하면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다는 설정이다. 무대는 화려했다. 하지만 아무리 '건강'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한들 반라(半裸)의 몸으로 봉춤 추는 장면을 온 가족이 모여앉아 보기는 무리였다. 최수현 기자는 "대단한 '애플 힙'을 가졌다며 출연자 엉덩이를 계속해서 클로즈업하는 게 건강과 대체 무슨 상관이냐"고 물었다. 김윤덕 기자는 "그래도 맨날 걷기 운동만 하다가 이토록 희한한 운동법이 많다는 걸 알게 돼 끝까지 봤다"고 했다.

지상파 3사가 야심차게 준비한 세 프로그램은 결국 시청률 4~5%대로 고전했다. 뜻밖에도 이경규가 몰래카메라로 다시 돌아온 '몰카 배틀'(MBC·9일 저녁 8시 30분)이 시청률 11%로 설 특집 1위를 차지했다. 구관이 명관이었던 셈이다.





[정리=최수현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