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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아시아로 돌아가" 인종차별 폭행 용서한 호주 한인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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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 집 앞에서 청소년들에 습격당해

처벌 대신 “학교 다시 다녀라” 충고

온라인, 지역사회서 위로 줄이어

한국일보

호주 50대 한인 부부가 운영하던 시드니 외곽의 가게. 9일 오후 가게 문은 닫혀 있고 가게를 팔겠다는 안내문이 서 있다. 시드니=연합뉴스


50대 호주 한인부부가 자신들에게 인종차별적 폭언과 함께 심한 폭행을 가한 호주 10대 청소년들을 따뜻하게 품어 지역 사회와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시드니모닝 헤럴드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시드니 북쪽의 소도시인 테리걸에서 5년간 슈퍼를 운영해온 폴 신씨 부부는 지난달 23일 밤 가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가게와 붙어있는 집을 나섰다가 봉변을 당했다. 한국군 장교 출신인 50대 후반 신씨는 술에 취한 4명의 10대 청소년들로부터 욕설과 함께 “아시안은 집으로 돌아가라”는 인종차별적 폭언을 들었다. 그 중 한 명인 17세 청소년으로부터는 오른쪽 눈가에 멍이 들고 양팔에 타박상을 입는 폭행까지 당했다. 함께 달려 나온 부인도 가해 청소년이 휘두른 주먹에 머리 뒤쪽을 가격당하는 등 폭언과 폭행의 피해를 봤다.

두 사람은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부인은 정신적인 충격으로 아들 집으로 바로 거처를 옮기기까지 했다. 신씨는 지역 언론에 이번 사건이 지난 4개월 동안 가게에서 받은 다섯 번째 공격이었으며, 이전에도 유리창이 깨지고 인종차별적 조롱을 듣는 일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공포를 느낀 적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신씨 부부는 따끔한 처벌보다는 반성할 기회를 주겠다며 용서를 택했다. 신씨는 사건 발생 1주일 만에야 가해 청소년과 그의 엄마로부터 사과를 받았고, 그 청소년이 학교에 가질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는 다시 모자를 만나 학교에 다닐 것과 나중에 군에 입대하기를 희망한다는 뜻도 전했다.

신씨 부부는 가해자 청소년을 용서했으나 결국 가게를 팔고 이 지역을 떠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골손님들은 부부가 “인정 많고 친절한 사람들이었다”며 꽃과 카드를 전달하면서 이번 사건에 안타까움을 표시했고, 가게의 페이스북도 지역 주민 등의 위로가 줄을 이었다.

이번 사건은 일부 지역언론과 경찰이 “인종적 동기가 아닌 단순한 실수”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자 지역의 한 작가가 격분, 블로그 글을 통해 신랄하게 비난하면서 더 큰 주목을 받았다. 작가 니키 맥워터스는 사건 발생 10일째 가게를 찾았을 때 S씨의 눈에 여전히 멍이 남아 있었다며 언론과 경찰, 가해자 부모가 “인종차별 행위를 사소한 일로 치부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 글은 널리 퍼지면서 조회수가 30만회에 이르렀다.

결국 지역 경찰은 “이번 공격에 인종적인 요소가 있었고 이는 매우 충격적”이라고 한발 물러섰고 부부에 대해서도 “믿기 어려운 용서의 자세”를 보였다며 높이 평가했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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