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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춘제 연휴, 도쿄 긴자와 한판 붙은 서울 명동의 `판정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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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제 연휴 기간인 지난 9일. 일본 도쿄 최대쇼핑가 긴자 쥬오도오리(중앙로)는 마치 상하이나 베이징 도심 한 복판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중국인 관광객들이 넘쳐났다. 관광객들을 위해 차 진입을 막은 4차선 대로 한복판에 위치한 유니클로 매장에서 만난 장예량 씨(39)는 양손에 유니클로 쇼핑백 3개를 들고 “중국 매장보다 훨씬 제품이 다양하고 진짜 유니클로 제품을 사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약 20벌 정도의 옷을 구입했다”고 했다. 전자상가로 유명한 일본 도쿄 아키하바라에 위치한 라옥스 면세점도 입구부터 중국인 관광객들도 북적였다. 광저우(廣州)에서 왔다는 한 남성은 “중국의 공기 오염이 심해 ‘메이드 인 재팬’ 공기청정기를 사려고 둘러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의 장바구니에는 일본 니콘 DSLR 카메라, 면도기 등이 빼곡히 담겨 있었다.

# 지난 10일 서울 명동 거리는 설 명절을 맞아 고향으로 떠난 한국인들 대신 중국 관광객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명동 상인들이 애타게 기다렸던 ‘춘제 특수’는 예전같지 않은 분위기다. 수년째 명동 화장품 매장에서 중국인 고객을 상대하고 있는 천롄화(가명, 28)씨는 “중국 경기가 좋지 않아서 그런지 과거에 비해 중국인 관광객들의 씀씀이가 줄어든 것 같다.”고 했다. 중국 관광객들의 필수코스인 면세점도 크게 분위기는 다르지 않았다. 소공동 롯데면세점 설화수 매장에는 수십여명의 유커들이 화장품을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대박’과는 거리감이 있었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일본·대만 등의 쇼핑환경이 좋아져서 유커들이 분산된 경향도 있고 새로 문을 연 신규 면세점의 영향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이 유커 유치를 위한 총성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과거 압도적으로 많은 유커를 유치했던 한국이지만 지난해 기준으로 양국의 중국 관광객 숫자 차이는 100만명 이내(2015년 기준 한국 598만명, 일본은 499만명)로 줄어 이번 춘제는 올해 전투의 승패를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매일경제가 지난 9, 10일 양일간 한·일 양국 현장을 취재해 본 결과, 한국은 곳곳에서 유커모시기에 적신호가 감지되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자칫하면 한국이 일본에게 역전당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본의 맹추격’과 ‘정체된 한국’으로 요약되는 이번 춘절기간 유커모시기 경쟁에서 질적으로는 이미 한국이 판정패를 당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이번 춘절기간 (5일~9일) 롯데백화점 본점 기준 유커 매출은 은련카드 기준 전년 동기대비 5.1% 신장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춘절 연휴 기간 (2월 13일~21일)신장률이 74.9% 급증했던 것과 비교해 성장세가 큰 폭으로 하락한 것이다. 같은기간 현대·신세계 백화점이 각각 53.4%, 80.8%신장 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현대·신세계 백화점 역시 몇년 전까지 수년간 평균 100%이상의 신장률을 보였던 것에 비하면 다소 주춤한 것이지만, 특히 롯데백화점의 신장률이 급감한 데는 단체관광객 감소가 한 몫 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한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특히 롯데백화점의 경우는 타 백화점에 비해 단체 관광객들이 방문 비중이 높은 편”이라며 “아무래도 일본 등 주변 국으로 관광객들이 이동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 도쿄를 찾은 한 중국인 관광객은 일본에서 어떤 품목을 구입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화장품, 명품백은 물론 약제품, 비데, 카메라 등 다양한 제품을 언급했다. 그는 “일본으로 여행을 간다고 했더니 주변에서 감기약, 파스에서부터 비데, 공기청정기까지 다양한 쇼핑목록을 추천해줬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은 일본과 달리 일부 품목에 크게 의존하는 상태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한국 시내면세점(Duty Free)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을만큼 화려한 시설을 갖췄지만 여전히 화장품과 일부 패션 상품에만 의존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실제로 춘제 기간 롯데면세점 본점의 화장품 코너는 꾸준히 중국 관광객들이 몰렸지만 토산품 매장 등 다른 곳에는 한산한 기운이 느껴졌다.

양국을 찾은 유커들의 씀씀이도 차이가 나고 있다. 중국 상해 지역 5대 관광사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에서 평균 200만원(쇼핑객단가)을 쓰는 유커들은 한국에서는 그보다 적은 130만원을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한국의 객단가는 감소 추세에 있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지난해 롯데 소공동 본점을 찾은 유커 1인당 객단가(구매액)는 약 56만원으로 2014년(65만원)보다 14%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90만원)과 비교하면 38%나 줄었다.

한국만의 장점이었던 시내면세점 효과도 희석되고 있다. 일본이 한국을 벤치마킹해 시내면세점 사업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쇼핑 이외의 부분으로 눈을 돌리면 양국의 격차는 더 커진다. 쇼핑만이 사실상 유일한 먹거리인 한국과 달리 일본은 쇼핑 이외에도 온천 등 유커들의 관심을 끌만한 다양한 매력 포인트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바쿠가이’(폭탄 쇼핑)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던 중국인 관광객들은 올해 들어서는 방일 관광 패턴이 물건만 사는 단순 쇼핑에서 서비스와 문화를 체험하는 소비로 바뀌고 있다.

절반 이상의 방일객이 첫 방문에 매료돼 두 번 이상 방문한 일명 ‘리피타’(재방문객)이다 보니 쇼핑을 넘어 체험형 소비를 점점 선호하는 현상이 이번 춘절에도 뚜렷히 나타나고 있다. 작년 4분기 방일객 중 60%가 두 번 이상 방문이었고, 첫 방문은 40%에 불과했다. 10번 이상 방문한 관광객도 무려 14%에 달했다. 단체여행객도 23%에 불과하고, 개인여행이 주를 이루고 있다. 깃발을 따라 정해진 곳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지나치며 정해진 쇼핑몰을 다니는 것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첫 방문에 일본 특유의 모모테나시(손님맞이)에 감동받아 계속 일본 관광에 나서면서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 뿐 아니라 가나자와 홋카이도 나가사키 등 지방에도 관광객들이 몰려 중국인 소비 효과가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중국 관광객을 놓칠 경우 한국 관광산업은 직격탄을 맞을 수 밖에 없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컨텐츠를 개발하고 전략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이지는 이유다.

[도쿄 = 황형규 특파원 / 서울 = 손일선 기자 / 이새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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