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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썰매 겨우 3년 타고… '빙판의 볼트' 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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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첫 스켈레톤 金 윤성빈]

10년간 정상 두쿠르스 제쳐… 스펀지 같은 습득력이 장점

단시간에 성장한 윤성빈 보고, 두쿠르스 "놀랍고도 두려워"

조선일보

‘빙판의 볼트’ 두쿠르스


"제가 두쿠르스를요? 그런 괴물을 제가 어떻게 이겨요…."

2014년 말 윤성빈(22·한국체대)은 조인호(38) 스켈레톤 국가대표팀 감독을 향해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앞으로 마르틴스 두쿠르스(32·라트비아)를 넘어야 한다"는 말에 대한 반응이었다. 세계선수권 3회 우승, 6년 연속 월드컵 랭킹 1위를 기록하며 최근 10여 년 남자 스켈레톤 정상으로 군림하던 두쿠르스는 윤성빈에게 거대한 벽이나 마찬가지였다. 윤성빈이 썰매를 시작한 건 2012년 6월이었다. 고교 선생님의 권유로 낯선 썰매 종목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간 것이 계기가 됐다.

선발전부터 따져서 고작 3년 7개월. 윤성빈은 지난 5일(한국 시각) 자신 앞에 선 거대한 벽을 넘어 스켈레톤의 역사를 썼다. 그는 이날 IBSF(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월드컵 7차 대회(스위스 생모리츠)에서 1·2차 레이스 합계 2분18초26으로 2위 두쿠르스를 0.07초 차이로 제치고 시상대 꼭대기에 섰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 최초였다. 평소 무뚝뚝한 성격의 그이지만 우승이 확정된 순간 리처드 브롬니(영국) 장비·주행 코치와 얼싸안으며 아이처럼 기뻐했다. AP통신은 "윤성빈의 사상 첫 월드컵 우승으로 두쿠르스의 완벽한 시즌이 끝났다"고 보도했다. IBSF는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많은 말이 필요 없다. 그저 대단할 뿐'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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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판의 왕자 윤성빈의 환호 - ‘스켈레톤의 최강자’라는 마르틴스 두쿠르스(라트비아)는 더 이상 넘을 수 없는 산이 아니었다. 윤성빈이 IBSF 월드컵 7차 대회(스위스 생모리츠)에서 두쿠르스를 꺾고 새로운 최강자가 됐다. 윤성빈은 우승이 확정된 순간 코치를 얼싸안고 큰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환호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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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경기 후 "솔직히 금메달을 딸 줄 몰랐다"고 소감을 전했다.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본 조 감독은 이날 윤성빈의 승리가 '멘털의 승리'라고 말했다. 1차 시기 3위를 차지한 윤성빈은 2차 시기에서 1분8초대의 좋은 기록을 올렸다. 반면 윤성빈의 선전을 지켜본 후 2차 시기에 나선 두쿠르스는 상당한 부담을 안았다. 그는 썰매를 벽에 수차례 부딪히는 실수를 했다. 두쿠르스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윤성빈은 모든 기술적인 부분에서 뛰어나다. 짧은 시간에 이 정도로 성장했다는 게 놀랍고 또 두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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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모리츠 코스에서 썰매에 올라 질주하는 윤성빈의 모습.


조 감독은 "오르지 못할 나무라 생각했던 두쿠르스를 꺾은 건 이제 막 꽃을 피운 윤성빈에게 커다란 자산이 될 것"이라고 했다.

조 감독이 말하는 윤성빈의 가장 큰 장점은 스펀지 같은 습득력이다. 이번 대회에서도 생모리츠 트랙 전문가인 브롬니 코치가 전달한 조종법을 충실히 이행하며 실수를 최소한으로 줄였다. 조 감독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잘못된 부분을 끊임없이 고쳐가는 긍정적인 성격도 윤성빈이 단기간에 성장한 비결"이라고 했다.

윤성빈이 앞으로 2년간 다양한 국제 경험을 쌓으면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아직 이르지만 2년 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의 전망도 밝다. 개최국인 한국 선수들이 평창에서 수백 번 반복 훈련을 할 수 있는 데 반해, 두쿠르스를 포함한 외국 선수들은 규정과 각종 여건상 평창 트랙을 40여 번밖에 못 탄다.

☞스켈레톤이란

스켈레톤은 1명의 선수가 머리가 앞쪽으로 가도록 썰매에 배를 대고 누워 1000~ 1500m의 트랙을 내려오는 경기다. 최고 속도는 시속 130㎞에 달한다. 앙상한 썰매 모양이 인체의 뼈대처럼 생겼다고 해서 스켈레톤(skeleton)이란 이름이 붙었다. 발을 아래로 하고 등을 대고 내려오는 루지, 썰매 내부에 선수가 탑승하는 봅슬레이와 함께 대표적인 슬라이딩 스포츠로 꼽힌다.

[이순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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