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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김동욱의 금융돋보기]성과연봉제 도입되면 정년 채우기 더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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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동욱 기자] 이번 설 연휴 저희 외가 친척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웠던 대화 주제는 이달 말 입대를 앞둔 사촌동생도 올해 저의 결혼 계획 여부도 아닌 바로 요즘 금융당국이 밀고 있는 ‘성과연봉제 도입’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명절 밥상머리 대화 주제치곤 사실 뜬금없긴 하지만 평소 은행 가는 걸 연례행사처럼 여기는 할아버지까지 이 주제를 놓고 목청을 높인 건 지난달 은행에서 희망퇴직한 삼촌 때문이었습니다.

삼촌은 대학을 졸업한 뒤 한 외국계 은행에 입행해 쉰 두 살인 된 올해 은행을 나왔습니다. 올해부터 정년이 만 60세로 연장된 걸 고려하면 정년을 한참 앞두고 은행을 나온 셈이죠. 입행 동기 중 은행에 남은 사람도 한 명도 없다고 합니다. 삼촌은 차라리 본인 사정이 더 낫다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매년 은행권 구조조정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데 앞으로 성과주의가 도입되면 정년 채우는 게 더 힘들어질 뿐만 아니라 은행들이 굳이 두둑한 봉투까지 챙겨주며 희망퇴직에 나설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지금도 지점에 사람이 부족해 야근하는 직원이 적지 않지만 은행은 비용을 줄이려고 상당한 퇴직금까지 내걸며 희망퇴직에 나선다”며 “직원으로선 당연히 성과주의 도입에 막연한 불안감을 느낀다”고 토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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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과연봉제 도입 놓고 노사 갈등 예고

올해 금융권의 화두는 바로 성과연봉제 도입입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올해 금융개혁 1순위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내세우며 정책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지만, 금융노조는 벌써 총력투쟁을 예고하고 있어 노사간 첨예한 갈등이 예상되는 이슈이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에 민간 금융사들도 보조를 맞추기 시작하면서 노사 갈등은 더 심해지는 모습인데요. 최근 은행을 포함해 34개 금융사를 회원사로 두고 있는 금융사용자협의회가 올해 금융노조와의 임금·단체협상 교섭방향을 발표한 게 계기가 됐습니다. 지금의 호봉제 대신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고 금융권의 높은 초임 수준을 현실화하겠다는 게 골자인데 사실상 신입사원 연봉을 깎겠다는 것이어서 금융노조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사실 금융권의 성과연봉제 도입 요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그동안 물밑에서만 호봉제 폐지를 요구했던 금융권사용자협의회는 지난해 처음으로 금융노조와의 교섭 때 성과연봉제 도입을 협상 테이블에 올렸습니다. 그러나 노조의 반발이 심해 제대로 논의조차 못했습니다. 올해 역시 엄두를 못 내고 있었는데 정부가 판을 깔아주자 이례적으로 올해 교섭방향까지 공개하고 나선 겁니다. 원래 이 주제를 놓고 노사간 갈등이 치열했던 터라 올해 금융권 노사 교섭은 그 어느 해보다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피크제 논의 역시 교섭에서 결국 접점을 찾지 못한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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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평가 방식 정교하게 만드는 게 관건

정부가 내세운 성과주의 도입 명분은 이렇습니다. 지금처럼 별다른 성과를 내지 않아도 매년 자동으로 기본급이 오르는 호봉제 방식을 고수했다간 국내 금융산업 경쟁력이 선진국 수준을 따라가는 건 차치하고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조직에 건전한 긴장감을 불어넣고 은행 경쟁력을 키우려면 성과에 따라 연봉이 결정되는 성과연봉제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입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은행 직원 1명당 평균 생산력은 떨어지는 추세인데 반대로 인건비가 늘어나는 악순환이 생기는 건 호봉제 임금체계와 관련이 없다고 볼 수 없습니다.

관건은 정부가 공기업에 적용하는 개인 성과주의 평가 방식을 얼마나 정교하게 잘 만드는지에 달렸습니다. 민간 금융사들도 이를 가이드라인으로 삼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한 시중은행 인사 담당 부행장은 “사실 성과에 따라 연봉을 결정하는 게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개인의 성과를 따지는 기준을 만드는 게 쉽지가 않다”며 “이 기준이 공평해야 노조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과연봉제가 도입되기에 앞서 이름뿐인 ‘임금피크제’도 손질해야 합니다. 임금피크제에 들어가도 정년을 채우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고 10명 중 7명은 할 일이 없어 은행 문을 나서는 게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정년은 늘었지만 이래저래 정년 채우기는 여전히 어려운 겁니다. 금융노조가 성과주의 도입을 놓고 저성과자 퇴출로 이어질 수 있다며 반발하는 이유입니다. 아무튼 성과주의란 화두는 던져졌습니다. 이젠 정부를 포함해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방향을 잘 잡아야 할 시점인 건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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