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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동전의 양면?··· '전문가'냐 '관피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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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린 여러 곳 중 하나는 인천국제공항이었다. 지난해 12월 저가항공 여객기 사고가 연이어 벌어진 가운데 새해 들어서자마자 인천공항 이용객들의 수화물이 일부 항공기에 실리지 않는 일대 혼란이 벌어졌다. 지난달 말에는 베트남·중국인들이 연이어 인천공항을 통해 밀입국하기도 했다.

동시에 주목받은 사실은 인천공항공사 사장 자리가 그동안 비었다는 점이었다. 전임 박완수 사장은 오는 4월 총선 출마를 위해 지난해 12월 사장직을 사임했다. 인천공항에서 연이은 사고가 벌어졌는데도 사태를 책임지고 수습할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동시에 항공 관련 경험이 없던 인사가 사장을 맡아 공항공사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위기관리능력에도 문제가 생겼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런 비판에 인천공항공사는 새로운 사장을 공모했고, 정일영 사장이 지난 2일 취임했다. 박완수 전 사장과 달리 정 신임 사장은 국토해양부 항공정책실장을 거친 ‘항공분야 전문가’다. 그러면서도 오랜 공직생활 경력 때문인지 ‘관피아’라는 수식어도 따라붙었다. 공교롭게도 정 사장과 박 전 사장, 그 전임이던 정창수 전 사장은 행정고시 23회 동기들이다. ‘전문가’와 ‘관피아’는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뗄 수 없는 단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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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 출신의 고위직 안착… ‘전문가’인가 ‘관피아’인가

‘관피아’는 ‘벼슬 관(官)’자와 ‘마피아(mafia)’를 합성한 말이다. ‘관료’와 ‘마피아’를 합쳐 부르는 말로도 볼 수 있다. 공직자들이 산하 공공기관이나 관련 단체의 기관장이나 감사 등 고위직 자리에 오르는 경우를 일컫는다. 퇴직 고위 공무원들이 관련 기관과 업무상 접촉하면서 쌓은 인연을 바탕으로 낙하산처럼 자리를 잡는다는 것이다. 기관 차원에서 고위 공직자 출신을 초빙하거나 윗선에서 내려 보내는 경우를 가리지 않고 관피아로 통칭된다.

2014년 세월호 참사와 그와 관련된 사전·사후 대응 논란이 불거지자 관피아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그해 말 ‘관피아 방지법’이라 불린 개정 공직자윤리법이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다. 고위 공직자들이 퇴직 후 취업할 수 없는 관계 기관을 규정하고 취업 제한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린 것이다. 지난해 말에도 인사혁신처는 올해 공직자들의 취업제한 기관 총 1만5687개를 발표했다.

공직 사회에서는 관피아 방지법에 대한 여러 볼멘 소리가 여전하다. 그 중 하나는 오랜 기간 동안 관련 분야에서 일하면서 전문성을 쌓은 인사가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분야의 업무를 오랜 기간 수행하면서 관련 정책의 내용, 변화, 이해 관계를 잘 파악하는 사람이 고위 공직자라는 것이다. 항공, 철도, 해운 등 비교적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일수록 ‘관피아’에 대한 시선에 억울함을 더 많이 토로하는 듯 하다.

관련 분야의 교수·연구원 등이 있긴 하지만 이들에게는 정책을 집행해 본 경험이 전무하다. 사고 때의 대응이나 수습 당시 일선에서 직접 대응을 경험했다는 것도 공직자 출신의 강점이다. 항공의 경우는 저가 항공 열풍이 일기 전까지는 운영사가 소수에 불과했고, 철도 역시 광역 철도는 코레일, 지하철 등 도시 철도는 지역 공사·공단에서만 운영하기 때문에 인재풀(pool)이 적다. 여기에 고위 공직자들이 갈 곳이 없어지니 내부 승진이 늦어지는 등 인사 적체가 발생한다는 것도 공직자들이 제기하는 ‘역차별’의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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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관피아’는 왜 우려를 받는가.

‘전문성’이 강점일 수 있지만 공직자 출신들이 주무부처와 유착을 하리란 우려가 가시지 않는다. 공공기관이나 관련 단체들이 주무부처의 결정에 압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 보통 부처를 떠나 관련 단체에 취업한 공무원들이 현재 주무부처에서 담당하는 공무원들의 ‘선배’인 경우가 많다. 아직 인맥과 위계의 힘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주무부처의 관리·감독이 소홀해질 수 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불거졌던 부분도 ‘해피아’의 산하기관 취업과 이로 인한 주무부처의 관리·감독 부실이었다. 해운·항만 분야도 상대적으로 전문가가 적은 편으로 여전히 관련 기관과 단체 고위직에는 해양수산부 출신 공직자들이 앉아있다.

‘내부 승진’이라는 또다른 전문가 채용의 통로가 있다는 점, 그럼에도 공직 출신 입성이 내부 승진을 막고 있다는 점도 ‘관피아’ 논란에 불을 지핀다. 지난해 8월 CEO스코어가 340개 공기업·공공기관의 기관장 및 감사 689명의 출신과 이력을 조사한 결과, 조직 내부 승진자는 18.1%에 불과했다. 반면 관료 출신은 2배에 육박한 32.1%였다. 내부 승진자 역시 관련 경험이 많고 조직을 쉽게 장악할 수 있는 인물들이다. 관료 출신 비중이 내부 승진자보다 두드러지게 많아야 할 이유는 찾기가 어렵다.

‘전문성 있는 관료’ 출신을 무조건 ‘관피아’로 통칭하는 것은 일견 억울한 일일지도 모른다. 관련 경력이 전무하면서도 과거 공적 때문에 자리를 확보한 정계 출신의 ‘정(政)피아’나 업무 경험이 적은 학계 출신보다는 조직 장악력이 좋을 수 있다. 다만 끊이지 않는 ‘낙하산 논란’과 능력보다는 인맥·관계가 지위를 결정하는 사회 분위기, 세월호 참사 때와 같은 미숙한 사고 대응이 계속된다면 관료 출신은 ‘관피아’라는 낙인을 좀처럼 떼기 어려울 것이다.

<윤승민 기자 me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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