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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취재파일] 지카 바이러스와 엘니뇨, 그리고 기후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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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카 바이러스(Zika virus)가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하면서 각국의 긴장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신생아의 소두증(小頭症)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지카 바이러스를 옮기는 매개체는 이집트숲모기(Aedes aegypti)다.

어느 지역에서 얼마나 많은 이집트숲모기가 활발하게 활동을 하는 지는 무엇보다도 온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집트숲모기가 알에서 부화하고 유충이 성체로 자랄 수 있는 온도는 14℃~36℃ 사이로 알려져 있다. 이집트숲모기 유충이 성장할 수 있는 최저 한계온도는 9℃~10℃ 정도지만, 보통 14℃아래에서는 유충이 성체로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또 36℃를 넘어서는 폭염 속에서도 정상적인 활동이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이집트숲모기가 성장하는데 최적의 온도는 보통 20℃~30℃ 사이다. 20℃~30℃ 사이에서는 모기 유충의 88~93%가 성체로 자라는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자료:이근화, Micha, Tun-Lin et 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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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온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알에서 부화해서 성체로 자라기까지의 시간이 짧게 걸린다. 온도가 30℃를 넘어설 경우 1주일 정도면 알에서 부화해 성체까지 자라지만, 온도가 15℃인 경우는 알에서 부화해 유충이 되고 유충이 성체로 변하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무려 40일 정도나 된다. 이집트숲모기가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온도 범위에서는 온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번식에 걸리는 시간이 짧아지는 만큼 개체수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브라질을 비롯한 중남미지역에서 지카 바이러스가 빠르게 확산한 것도 지난해 지구 평균기온이 관측사상 가장 높았던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슈퍼 엘니뇨와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지카 바이러스의 확산을 부추겼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기온이 올라가면 이집트숲모기가 서식할 수 있는 지역 또한 넓어진다. 현재 열대와 아열대지역에서 서식하고 있는 숲모기는 지구온난화로 기후변화가 진행될 경우 아열대 지역이 넓어지면서 숲모기 서식지 또한 크게 넓어질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제주도와 남해안 일부 지역이 아열대 기후대에 포함돼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지속될 경우 아열대 지역은 빠르게 북상할 것이 분명하다.

강수량 또한 이집트숲모기의 개체수와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강수량은 특히 모기 개체수를 크게 늘어나게 하는 역할도 하지만, 반대로 크게 감소시키는 역할도 할 수 있는 양날의 칼이다. 비가 적게 내리는 지역에서 비가 적당히 내리면 물이 고이는 웅덩이가 많이 만들어지면서 모기가 알을 낳을 수 있는 장소 또한 늘어나게 된다. 하지만 강수량이 늘어난다고 반드시 모기 개체수가 늘어나고 활동이 활발해 지는 것은 아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 홍수가 발생하거나 비가 너무 자주 내리면 모기 유충이 서식하는 고인 물이 모두 쓸려 내려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비가 자주 내리는 장마철에는 상대적으로 모기가 적은 이유와 같다.

가뭄이 발생할 경우에도 가뭄의 정도에 따라 바이러스 감염자가 늘어날 수도 있고 얼마든지 감소할 수도 있다. 심한 가뭄이 이어질 경우 모기가 알을 낳을 수 있는 고여 있는 물 자체가 줄어들면서 모기 개체수가 급격하게 줄어들 수 있다. 당연히 감염자가 늘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고여 있는 물이 적당히 남아 있을 정도로 심하지 않은 가뭄이 이어질 경우 지카 바이러스가 널리 퍼질 가능성도 있다. 일정 수준의 모기 개체수가 유지되는데다 비가 적을 경우 비가 자주 많이 내릴 때보다 사람들의 야외 활동이 늘어나서 모기에 물릴 가능성 또한 커지기 때문이다.

엘니뇨가 발생하거나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진행될 경우 각 지역의 기온과 강수량 또한 지속적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온도와 강수량에 큰 영향을 받는 모기 활동과 개체수 역시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지카 바이러스가 가장 폭발적으로 퍼진 지역은 브라질 북동부 대서양 연안에 있는 헤시피(Recife)라는 도시다. 주민이 3백 70만 명 정도인 헤시피는 브라질 북동부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항구 도시로 유명하다(자료:Wikipedia). 헤시피는 고온과 가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지카 바이러스가 폭발적으로 퍼졌다. 평년보다 기온이 높고 비가 많이 내린 상황에서 바이러스가 폭발적으로 퍼진 것이 아니다.

지구온난화에 엘니뇨까지 겹치면서 지구 평균기온이 관측사상 최고를 기록한 지난해 헤시피 지역에는 기록적인 고온 현상이 나타났다. 지난해 9~11월 기온은 평년보다 1.2도나 높아 1998년 이후 가장 더웠다. 평년 헤시피의 9~11월 평균기온이 28~30도인 점을 감안하면 평균기온이 30도를 넘은 날이 많았다는 뜻이다. 기온이 올라갈수록 모기 유충에서 성체로 자라는 데 걸리는 기간이 짧아지는 만큼 모기 개체수가 크게 늘어날 한 가지 조건은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헤시피 지역에 비가 많이 내리지는 않았다. 지난해 헤시피 지역 강수량은 1998년 이후 가장 적었다. 뜨겁고 건조한 날씨가 이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시피 지역에서 지카 바이러스가 폭발적으로 확산한 것은 고온 건조한 상황에서도 모기가 번식할 수 있는 고인 물이 곳곳에 적당히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고온으로 모기 개체수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궂은 날씨가 이어질 때보다 야외 활동을 많이 하면서 모기에 더 많이 물리지 않았을까 학계는 추정하고 있다. 엘니뇨와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바뀐 지역 기후가 모기 개체수에 영향을 미치고, 사람들의 생활 양식에까지 변화를 초래해 지카 바이러스가 폭발적으로 퍼졌다는 것이다.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 떨어지면서 환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엘니뇨나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바이러스 확산에 미치는 영향은 모든 지역에서 비슷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기후변화가 모든 지역과 계절에 동일하게 나타나지는 않는 만큼 기후변화가 모기 활동에 미치는 영향 또한 지역과 계절에 따라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미국 애리조나 대학교는 치명적인 뇌염을 일으키는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West Nile virus)를 옮기는 모기의 활동이 기후변화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 지 연구했다(Morin et al.).

1937년 우간다 웨스트 나일지역에서 처음 발견된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는 1990년대 말 미국에 상륙했고 2012년 한 해 동안 286명이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로 인한 뇌염으로 사망하는 등 최근까지 많게는 한 해에 수백 명이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로 목숨을 잃기도 한다(자료: Wikipedia).

연구 결과 기후변화가 지속될수록 미 서남부 지역의 모기 활동 시기는 점점 늦춰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 서남부 지역은 사막까지 있는 건조지역인데, 기후변화로 봄철과 여름철의 기온이 크게 올라가고 더욱 건조해지면서 오히려 모기가 살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늦여름부터 가을까지는 기온 상승에 강수량까지 늘어나면서 모기 활동 시기가 길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기후변화가 모기 활동 시기에 변화를 초래하는 것이다.

엘니뇨나 기후변화가 모기 활동과 바이러스 확산에 미치는 영향은 지역과 계절별로 기후가 다른 것만큼이나 제각각이다. 결국 모기로 인한 바이러스 확산은 전 세계적인 공동 대응도 물론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각 지역이나 나라마다 나타나는 기후와 그 변화 특성에 맞게 지역적인 대책을 세워야 그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모기 활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역별 기후변화를 미리 예측하고 그에 맞는 대책을 세워야 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이근화, 제주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미생물학교실(계인 교신)
* Micha Bar-Zeev, 1958: The Effect of Temperature on the Growth Rate and Survival of the Immature Stages of Aedes aegypti. Bulletin of Entomological Research, Vol 49, pp 157-163
* W. Tun-Lin, T.R. Burkot and B.H. Kay, 2000: Effects of temperature and Larval diet on development rates and survival of the dengue vector Aedes aegypti in north Queensland, Australia, pp 31-37
* C. W. Morin, A. C. Comrie. 2013: Regional and seasonal response of a West Nile virus vector to climate change.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DOI:10.1073/pnas.1307135110

[안영인 기자 youngi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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