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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Why] "설 음식 힘들면 사다 드세요… 제사는 가족애 위한 것인데 스트레스 받아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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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요리연구가 심영순

맛난 음식 사는 것도 정성, 식구들이 맛있게 먹으면 조상이 얼굴 찌푸리겠나

질리지 않는 건 한식뿐… 한때 양식이 너무 좋아 양식만 먹겠다 생각도

설 차례 음식 장만을 앞둔 며느리들은 요즘 온라인 익명 게시판에 앞다투어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도대체 차례 음식을 얼마나 많이 하려는지 시어머니가 전날 새벽부터 오라네요.' '시댁에 가도 남편은 손 하나 까딱 안 해요.' '일주일 남았는데 벌써 가슴이 답답합니다.' 한식 요리연구가 심영순(76) 원장은 말한다. "누가 만들든 무슨 상관인가요. 사다 먹더라도 성의 있으면 되죠."

지난 3일 서울 성동구 옥수동 그의 요리연구원에 들어서자 빽빽이 올린 흰 머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뛰어난 요리 솜씨로 재벌가 며느리와 정계 인사 부인들이 줄지어 요리를 배우러 찾아왔다는 심 원장이었다. 싱크대 앞에 서서 맨손으로 설거지하고 있었다. 50년 넘도록 설 상을 차렸다는 그에게 어릴 적 설 음식은 어땠는지 물었다. 작고 까만 눈으로 추억을 되짚는 듯하더니 "설엔 집도 음식도 모두 시끌벅적해야죠. 요즘은 분위기가 안 나지만요"라고 했다.

조선일보

심영순 원장은 한복 털조끼를 손에 들고 한참을 망설이더니 “이 조끼 입으면 너무 할머니 같겠죠?”라고 물었다.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 입었다는 저고리 위에 조끼를 덧입은 그가 연구실 책상과 조리실을 가르는 창호지 문을 활짝 열었다.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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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며느리들 가르친 '옥수동 선생님'

한식 대가로 TV에 출연하기 전 심 원장은 '옥수동 선생님'으로 불렸다. 정·재계 부인과 며느리들의 요리 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현대가 며느리들, 배우 고현정씨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그에게서 요리를 배운 것으로 유명하다. 23세에 남편 장영순(82)씨에게 시집왔을 땐 그냥 손맛 좋은 주부였다. 결혼 후 집에 온 손님들에게 한 상 크게 차려내고 나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이웃집에 사는 주부가 요리를 배워 갔고 근처 학교 어머니 교실마다 와서 요리를 가르쳐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내로라하는 집안에 요리 수업을 다닌 건 30세쯤부터였다. 그를 모시기 위해 검정 도요타와 캐딜락 승용차들이 그의 이촌동 집 앞에서 기다리는 풍경이 흔했다. "수업하기 전날 전화해서 "내일은 갈비찜을 할 거니까 소갈비 몇 g, 전복 몇 개, 대파를 준비하라"고 전화로 알려주면 재료가 전부 손질돼 부엌에 놓여 있었다"고 했다. 그는 가르친 재벌가 부인과 며느리들이 대개 차분하고 의외로 검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겨울엔 고추 하나에 200원이라고 해도 나는 아무렇지 않게 샀는데 그분들은 너무 비싸다고 혀를 내둘렀다"고 했다. 요즘도 몇몇 재벌가에서 그의 솜씨를 배우기 위해 옥수동 연구원을 조용히 찾는다고 했다.

서울 신당동에서 세 자매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어머니가 설날에 마른 나물을 불려 볶았던 것부터 떠올렸다. "예전에는 햇나물이 없고 묵은 것밖에 없었어요. 냉장고는 없었지만 그보다 더 좋은 장독이 있었죠." 나물 다음은 생선이었다. 어머니는 생선을 소금에 미리 절여서 말렸다. 말린 대구의 포를 떠 전을 부쳤고 광어·조기·병어를 구웠다. 강정도 직접 만들었다. 깨나 콩을 조청에 버무려 굳힌 뒤 줄 맞춰 잘랐다. 전, 적, 한과 등은 딸과 며느리들이 하나씩 맡았다. 빙 둘러앉아 만두 빚는 얘기도 빠지지 않았다. "두부와 김치를 넣어서 만든 소를 가운데 놓고 여자들끼리 수다를 떨면서 주름을 잡았어요. 날씨가 추우니까 맨 처음 빚어놓은 만두는 꽁꽁 얼기도 했죠." 심 원장은 "그때는 그릇 빼고 다 만들었다"고 했다.

심 원장이 어려서 먹었던 떡국 떡은 동그란 공 모양이었다고 했다. "공 모양 떡을 젓가락으로도 먹기 위해 언젠가부터 가래떡을 어슷썰기 해서 넣기 시작했죠." 김치를 조금 넣은 소로 만두를 빚어 떡국에 넣는 것도 전통이라고 했다. 아무리 담백하게 고깃국을 끓여도 고기 기름 때문에 김치 만두로 입을 개운하게 씻는 맛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6·25전쟁 때 심 원장은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피란 생활을 했다. 전쟁 직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터라 어머니와 언니 둘, 큰 형부와 함께 경북 안동·영천·경주 등을 오갔다. 난리통에도 그의 어머니는 명절을 중하게 여겼다. "어느 날 어머니가 손에 끼고 있던 다섯 돈짜리 쌍가락지를 뽑아주면서 싱싱한 생선과 야채를 사오라고 했어요. 깜짝 놀라서 '이걸 왜 파느냐' 물었죠. 어머니가 "이까짓 반지는 아무 소용 없다, 오늘 잘 먹어야 내일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하셨던 걸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양식요? 정말 맛있죠"

심 원장도 양식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남편과 결혼한 직후 서울 강남과 강북, 인천 등 새로 생기는 호텔마다 찾아가 외국인 주방장에게서 양식을 배웠다. 영어를 잘하는 한국인 부주방장이 처음 보는 재료나 향신료가 뭔지 알려주기도 했다. "양식을 처음 먹었는데 정말 맛있더라고요. 비프스테이크, 햄버거 스테이크, 심지어 돈가스까지 너무나 맛있었어요. 무조건 케첩만 들어가면 맛이 기가 막히더라고요. 그래서 여기저기 쫓아다니며 배웠죠." 한식이 지겨웠다. 매일 먹던 나물, 김치, 국에 밥을 먹느니 양식만 먹고 살겠다고 생각도 했다. 조리법도 쉬웠다. 갈비탕이나 곰탕처럼 서양식도 육수가 기본이었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뭉근하게 끓인 육수에 재료를 몇 가지 넣으면 수프부터 소스까지 금세 만들어졌다.

쉽고 맛있는 양식을 그만두고 한식에 집중하기 시작한 건 한식에 대한 애착 때문이었다. 먹어도 질리지 않을뿐더러 제일 맛있게 만들 수 있는 건 한식뿐이었다. "우리나라는 돼지와 소의 85%를 먹어요. 외국은 많아야 30% 정도밖에 안 씁니다. 발, 꼬리, 머리까지 식재료로 사용하니 한식이 더 다양한 맛을 낼 수밖에 없죠. 요즘 요리사들은 질기면 질기다고, 냄새 나면 냄새 난다고 피하는데 질기면 연하게, 누린내가 나면 누린내를 잡는 게 요리사가 하는 일입니다."

심 원장은 2005년부터 자신의 요리법으로 향신장과 향신양념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처음 향신장을 만든 건 외국에서 유학 중인 딸을 위해서였다. 집에서 먹던 음식이 그리운 딸에게서 "솜씨가 부족해 맛이 안 난다"는 전화를 받은 뒤 엄마 손맛을 멀리서라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판매하는 제품이지만 모든 조리법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가장 유명한 향신장은 냄비에 진간장 2컵과 설탕 4분의 1컵, 후춧가루, 말린 고추, 깻잎 5장, 쇠고기 100g, 물엿 2큰술, 생강 2쪽, 백포도주 2분의 1컵을 넣고 은근한 불에 끓이다가 꿀 2분의 1컵 등을 넣고 졸이면 된다. 영어로도 돼 있다. 한글을 잘 모르는 유학생이나 외국인도 언제든지 한식의 맛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음식 장만 힘들면 사다 드세요"

심 원장은 요즘도 명절 음식을 직접 만들고 있다. 그는 "갈비찜과 식혜, 수정과는 내 몫"이라고 했다. 9명의 손자·손녀가 할머니 음식을 좋아한다고 했다. 작년엔 자식들 손에 들려 보낼 반찬들만 여섯 광주리 만들었다. 일흔이 넘도록 명절 음식을 하는 게 힘들지 않으냐고 하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힘들면 사다 먹으면 되죠." 잘못 들은 것 같아 되물었다. "사다 먹는다고 해서 정성이 담기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어요. 음식을 직접 하기 어렵다면 맛있게 파는 곳에서 사다가 차례상을 차리면 돼요. 그것도 일종의 정성입니다. 가족들 입맛에 맞게 간장을 더 넣거나 해서 다시 조리할 수도 있고요."

예로부터 우리 민족이 차례와 제사를 재산과 함께 큰아들에게 물려줘 온 건 배곯는 형제나 자식을 챙기라는 의미라고 했다. 찢어지게 가난해도 그날만큼은 배불리 먹이라는 부모의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 뜻은 우애로 교제하며 지내라는 것이며 스트레스 받으면서까지 음식을 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식구들이 와서 맛있게 먹는다면 조상이 그 정성을 알아줄 겁니다. 자손들이 행복하다는데 얼굴 찌푸릴 부모가 어디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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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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