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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내일이라도 날 선임하면 검찰 사건진행 중지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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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지식인’ 만나보니 ‘법조 브로커’

그가 소개한 “검사 23년” 변호사

“법률지식인 ‘○사무장’입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저희 홈페이지를 방문해주세요.”

언제부턴가 포털사이트의 질문게시판에는 ‘법률지식인’을 자칭하는 이들이 등장했다. 사실 이들 대부분은 변호사 사무실에서 행정보조 역할을 맡은 ‘사무장’들이다. 최근 경기가 나빠지다보니 변호사가 아닌데도 법률 상담을 하고, 알선까지 도맡고 있다. 이들은 특히 판검사 출신의 ‘전관(前官)’ 변호사들과 연계해 법조 비리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경향신문

경향신문은 법조브로커들의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 4일 인터넷에 글을 올린 한 사무장에게 연락해봤다. 취재를 숨기기 위해 술 마시고 강제추행 사건에 연루된 피의자를 가장했다. 전화를 받은 사무장은 사건을 어느 경찰서에서 수임했는지를 물은 뒤 솔깃한 말을 꺼냈다. “우리 강남 쪽 사건 많이 합니다. 이번에 나오신 경찰 간부급 실장님이 사무실에 오셨거든요.”

사건이 검찰에 넘어간 상태라고 하자 사무장은 법률 상담을 해주며 겁을 주기 시작했다. 그는 “강제추행은 웬만하면 기소의견”이라며 “술 마시고 여자 어깨에 손 한번 올려도 검사들은 바로 기소한다”고 말했다. 또 “검찰이 지금이라도 당장 처분을 내릴 수 있으니, 검사를 빨리 움직여야 한다”고도 했다. 현행법상 이처럼 변호사가 아닌 자의 법률 상담은 금지돼 있다. 이어 사무장이 소개한 것은 그가 모시는 전관 변호사였다. 그는 “검찰에서 높은 자리까지 했고, 동기들은 거의 최상위 간부급”이라며 “검사랑 직접 대면해 어떤 답을 듣고 오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알아보니 해당 변호사는 지방검찰청 부장검사와 지청장까지 지낸 변호사 ㄱ씨였다. 그의 사무실을 직접 찾아가보았다.

ㄱ씨는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 앞에 사무실을 두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검사 생활 23년 한 형사사건 전문 변호사”라고 소개했다. ㄱ씨는 자신이 대검과 서울지검에서 오래 생활했음을 강조하며 “같은 검사 출신이라도 능력은 차이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변호사가 검찰과의 사적 관계를 강조하며 사건을 맡는 것은 법에 저촉될 수 있다. 하지만 ㄱ씨는 “검사를 직접 찾아갈 수 있는 변호사는 몇 사람 안된다”며 검찰과의 관계를 특별히 강조했다. 탁자 위에는 검찰 내부 조직도와 연락처를 표기한 파일이 비치돼 있었다. 최근 있었던 검찰 인사 내용이 담긴 공문도 보였다. 그는 “내일이라도 날 선임하면 바로 검찰청에 뛰어들어가 사건 진행을 중지시키겠다”며 “다른 사건에서도 내가 검찰에 ‘벌금형 구형해달라’고 말했더니 그렇게 했다. 나를 선임하면 그런 걸 미리 부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45분가량의 상담은 돈 얘기로 마무리됐다. ㄱ씨는 “법원까지 무조건 가야 되는 사건”이라며 착수금으로 1100만원을 제시했다. 사무장도 ‘상담료’ 10만원을 내라고 요구했다. “유료인지 몰랐다”고 하자 그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기가 무슨 뜨내기 사무실인 줄 아느냐”며 퉁명스러운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5분여간 입씨름을 벌인 뒤에야 사무실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전관 변호사의 얘기를 듣고 실제 수임까지 맡기는 것은 서민들에겐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대한변호사협회 한상훈 대변인은 “전관 변호사를 낀 법조브로커들을 찾으면 비용도 상당하고, 소송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갖게 될 수 있다”며 “이 때문에 변협에서는 이들의 행태를 신고하게 하는 등 개선 노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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