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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종합]금속활자 출토 개성만월대 남북공동발굴, 이렇게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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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서울=뉴시스】신진아 기자 = 남북이 고려의 정궁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개성 역사 유적 지구’에 속하는 개성 만월대에 대한 제7차 남북공동발굴조사를 지난달 30일 마쳤다.

이번 남북 공동발굴조사는 우리나라의 국립문화재연구소와 북측의 조선중앙역사박물관 발굴단이 공동으로 수행했다. 고려 궁성의 서부건축군(약 3만3000㎡) 중 왕실의 침전인 만령전 추정지로 7000㎡ 상당의 구역을 조사했다.

개성 만월대는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6차에 걸쳐 남북이 공동으로 발굴 조사했다. 하지만 매회 2개월 이하의 제한된 조사기간에 부딪혀 발굴이 중단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올해는 발굴조사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6월1일부터 11월30일까지 6개월 간의 조사에 합의했다.

그 결과 19동의 건물지와 명문기와, 청자, 용두 등 3500여점의 의미 있는 유물들이 출토됐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11월14일 발굴조사 중 만월대 서부건축군 최남단 지역 신봉문터 서쪽 255m 지점에서 금속활자가 출토된 점이다.

금속활자는 이미 1956년에 발견된 바 있고, 추가적인 금속활자 출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됐으나2007~2014년 남북 공동발굴조사에서는 짧은 조사 기간 등 한계로 금속활자 발굴사업을 적극 추진하기가 어려웠다.

이번에는 조사기간이 6개월로 장기화되면서 조사인력이 늘었고 금속활자 전담조사팀도 따로 꾸렸다. 역할도 나눠 북측은 흙 채질과 유물 선별, 남측은 굴착기 굴착, 출토유물 선별 자문 등 지원 역할을 맡았다.

발굴조사 대상지역은 기존에 금속활자 1점 등이 발굴된 지점 등에 근거해 선정했다. 평양 조선중앙역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금속활자 1점 (方角頁, 이마 전)은 북측이 6.25 전쟁 중 파괴된 개성 만월대 유적을 보수 정비하는 과정에서 신봉문 서쪽 300m 지점에서 찾아낸 것이다.

이후 90년대 말 북측 관계자가 만월대 지역 관리활동 중 역시 만월대 서쪽 지역에서 작은 금속편을 발견했으나 당시에는 금속활자와의 연관성에 주목하지 못하고 만월대를 끼고 흐르는 광명천에 버려 이후 북측 고고학계에서는 추가조사 필요성을 제기해왔다. 조사팀은 이 같은 근거를 종합해 지난 6월초부터 해당지역 표토아래 20~30㎝ 지점에서 파낸 흙들을 채로 쳐서 유물들을 거르고 선별하는 작업을 했다.

11월 중순까지 바둑돌, 철갑옷 편, 금제 유물 편 등 작은 유물들을 다수 찾아냈으나 금속활자는 찾지 못하다가, 조사 기간이 거의 끝나가던 11월14일 오전 금속활자 1점을 발굴해 남북조사단이 함께 초기적인 보존처리와 실측 작업 등을 했다.

이번에 출토된 활자는 전문가 검토 결과, 여러 특징상 고려활자로 보인다. 국가가 주도해 만든 최고 수준의 활자로 추정되며 북측에서는 고려대장경 서체와 유사하다고 보고 있다. 시기의 하한은 만월대가 소실된 1361년 이전으로 설정하고 향후 남북공동연구를 심화시키기로 했다.

사진 상으로는 嫥(전일할 전)의 형태와 유사하게 보이나 우방 아래쪽의 자획이 方(모 방)자로도 보여, 향후 검토가 필요하다. 활자는 잘 쓴 글자이고, 서체는 1956년 만월대에서 출토된 활자와도 다르고 증도가자와도 다르다.

증도가자나 직지는 불경 인쇄를 위해 사찰에서 만든 활자로 볼 수 있는데 발굴된 활자는 국가가 주도해 만든 최고 수준의 활자로 보인다. 북측은 고려대장경 서체와 유사하다고 보고 있다. 크기는 가로 1.36㎝, 세로 1.3㎝, 높이 0.6㎝, 글자면을 제외한 몸체의 두께는 0.16㎝이다.

남북역사협의회는 “지금까지 알려진 고려시대 활자 2점과 비교해 볼 때 이 활자는 글자의 모양이 가장 정교하며, 활자의 모양도 정사각형에 가까울 정도로 반듯하며, 주조 기술 수준이 가장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山+復(복)’자는 1913년 이 왕가에서 일본인 상인으로부터 구입한 것으로 출처는 개성 부근으로 전해진다. 이 활자는 네 변의 길이가 달라 완전한 사각형을 이루지 않으며, 활자의 좌우 높이에도 차이가 있다. 글자면의 최대 길이는 가로 1.07㎝, 세로 1.17㎝, 최대 높이는 0.7㎝이다. 뒷면에는 홈이 파여 있다.

평양의 조선중앙역사박물관에 소장된 ‘方角頁’자 역시 부정형으로 최대길이는 가로 1.05㎝, 세로 0.9㎝, 높이 0.8㎝이다. 이 활자의 글자는 ‘山+復’자에 비해 정교도가 더 떨어지고 활자의 형태는 글자 모양에 따라 굴곡을 이루고 있다. 밑면은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게 주조돼있으나 현재 다른 물질로 메꾸어 뒷면의 형태를 정확히 알 수 없다.

고려 금속활자는 구텐베르크 활자에 한 세기 앞서는 대단히 중요한 민족유산으로서 이번 발굴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사적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그동안 출토된 글자가 2자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연구조사에서 가장 큰 한계였다.

남북역사학자협의회는 “개성 만월대에서 발굴조사하던 중에 금속활자가 출토된 것은 유물의 권위를 뒷받침하는 대단히 중요한 사항”이라며 “관련학계에서 활발한 연구로 활자의 특징, 연대 등에 대한 부분이 규명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남북역사학자협의회는 2003년 2월 구두 합의하고 2004년 2월 ‘남북역사학자협의회 결정에 관한 합의문’에 따라 남측공동위원장 강만길, 북측공동위원장 허종호를 위촉했다. 그해 4월 남북역사학자협의회 남측 창립총회가 열렸다. 회원은 300여명이다. 위원장을 중심으로 고문(5), 부위원장(8), 운영위(11), 기획총괄위(6), 사무국(3), 고구려특위(2), 고려특위(2)로 구성돼 있다.

위원장은 최광식 고려대 교수(문화체육관광부장관·문화재청장)다. 고문은 강만길 전 고려대 교수, 성대경 전 성균관대 교수, 정창렬 전 양대 교수, 김용섭 전 연세대 교수, 조동걸 전 국민대 교수다.

부위원장은 김광운 국사편찬위원회 연구관, 김도형 연세대 교수, 김영미 이화여대 교수, 안병우 한신대 교수, 정태헌 고려대 교수, 이영학 한국외대 교수, 하일식 연세대 교수, 홍순권 동아대 교수다.

운영위원회는 위원장, 부위원장, 기획총괄위원장, 기획총괄위원, 사무국장, 그리고 김성보 연세대 교수, 김성우대구한의대 교수, 김태웅 서울대 교수, 남지대 서원대 교수, 류승렬 강원대 교수, 장동표 부산대 교수, 정용욱 서울대 교수로 구성돼 있다.

기획총괄위원회는 기광서 위원장(조선대 교수), 권내현 고려대 교수, 정병욱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 홍석률 성신여대 교수, 이신철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교수, 정호섭 한성대 교수로 구성돼 있다.

사무국은 신준영 사무국장, 예대열 총무부장, 김경순 기획홍보부장으로 구성돼있다. 고구려특별위원회는 최광식 위원장, 정호섭 간사(한성대 교수), 고려특별위원회는 안병우 부위원장, 박종진 간사(숙명여대 교수)로 구성돼 있다.

jashi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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