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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위안화 세계 화폐로 우뚝, 중국 금융굴기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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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중국 위안화가 30일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 통화 바스켓에 편입됐다. 출처 바이두


중국 위안화(RMBㆍ런민비)가 전 세계 기축 통화가 되기 위한 첫 관문을 통과했다. 개발도상국 화폐가 국제 준비 자산으로 자격을 인정받은 것은 처음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30일 미국 워싱턴에서 집행이사회를 갖고 특별인출권(SDR) 바구니(바스켓)에 위안화를 편입시키기로 결정했다고 AP통신 등이 전했다. SDR란 IMF 회원국이 외화 부족 등이 발생했을 때 IMF로부터 담보 없이 자금을 인출할 수 있는 권리로, ‘종이 황금’으로도 불린다. 지금까진 미국의 달러화, 유럽연합(EU)의 유로화, 영국의 파운드화, 일본의 엔화 등으로 SDR 통화 바구니가 구성돼 있었고, 회원국은 이중 하나를 선택해 SDR를 행사했다. 따라서 SDR 바구니에 위안화가 편입됐다는 것은 위안화도 이제 당당한 ‘국제 준비 자산’이자 ‘세계 화폐’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기적으로는 달러에 맞설 기축 통화로 가는 첫걸음을 뗀 셈이다.

개방도상국 및 신흥경제체의 화폐가 기축 통화의 지위를 인정받은 것은 처음이다. 180여 IMF 회원국이 사용하는 공식 화폐가 됐다는 것은 그 만큼 국제 금융 무대에서 중국의 발언권이 커질 것이라는 점을 예고한다. 중국 금융과 위안화 위상에 획기적 변화도 예상된다. 중국 경제가 지난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후 수출형 경제의 비약적 발전을 이뤄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일어섰듯 이번 SDR 편입은 중국 금융의 국제적 도약을 이끌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위안화가 기축 통화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음에 따라 각국 중앙은행과 글로벌 투자 기관들의 위안화 자산 비중 확대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중앙은행들은 외환보유고를 운영할 때 SDR 통화 바구니를 참조하는 일이 많다. 그 동안은 주로 달러화로 외환보유고를 쌓아 왔었다면 앞으로는 일정 부분 위안화 자산을 채워 넣을 수 밖에 없다. 이처럼 위안화 수요가 커지면 중장기적으로 위안화 가치는 강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선 전 세계 중앙은행들의 외환 보유액 중 위안화 비중이 현재 2% 수준에서 2020년엔 5%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내년 위안화 수요만 850억달러에 달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그러나 위안화 가치가 급등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SDR 자체는 가상 통화여서 위안화의 SDR 편입은 IMF의 위안화 매입이 아니라 SDR의 계산 방식 변경을 뜻한다. 적지 않은 중앙은행과 글로벌 투자 기관들이 이미 위안화 강세를 염두에 두고 비중을 늘려 놓은 만큼 새로운 위안화 수요가 얼마나 될 지도 미지수다. 오히려 단기적으로는 위안화 약세가 나타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 동안 SDR 편입을 위해 인위적으로 위안화 가치의 안정에 힘을 쏟아 온 중국 정부 입장에선 이제 그럴 필요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중국은 그 동안 위안화 국제화를 위해 국가적 노력을 펴 왔다. SDR로 편입되기 위해서는 ‘수출’과 ‘자유로운 사용가능’이란 두 가지 심사 기준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수출 기준은 중국이 이미 전 세계 수출의 11%를 차지하고 있어 무난하게 합격했다. ‘자유로운 사용가능’기준은 국제 거래에서 지급 수단으로 널리 사용되고, 주요 외환시장에서 널리 거래되고 있는 지를 평가하는 항목이다. 중국은 이미 2010년에도 SDR 편입을 신청한 바 있지만 당시에는 ‘자유로운 사용가능’ 자격을 갖추지 못해 고배를 마셨다. 이번엔 수출 기준뿐 아니라 자유로운 사용가능 기준까지 모두 합격했다. 중국 정부는 또 위안화 환율 일일 변동폭 확대, 중앙은행 등에 대한 역내 외환시장 참여 허용, 위안화 기준환율 산정방식 개선 등 그 동안 금융 시장 개방 및 자유화 조치를 꾸준히 취해 왔다.

위안화가 기축 통화가 되기 위한 첫 관문을 통과했지만 과연 달러화를 대신하는 지위까지 오를 수 있을 지에 대해선 회의적 시각이 많다. 지난해 전 세계 외화 자산 중 위안화 자산의 비중은 1.1%, 전체 무역 결제 중 위안화 결제는 1.0%에 불과했다. 2013년 전 세계 외환 시장의 위안화 거래 비중도 1.1%에 그쳤다. 위안화의 사용 범위가 점점 확대되고 있다고 하지만 달러화 대체를 논하기는 성급해 보인다. 중국은 아직 선진화한 금융 시스템이나 자유로운 외환 시장 체제를 갖췄다고 할 수도 없다. 신뢰도 면에선 아직 갈 길이 멀다. 달러화가 기축 통화 지위에서 밀려나는 것을 미국이 허용할 리도 만무하다.

그럼에도 세계 화폐를 향한 위안화의 도전이 시작됐다는 데 이의를 달 이는 없다. 중국은 올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흥행 성공에 이어 숙원이던 위안화의 SDR 편입까지 성사시키면서 금융에서 연타석 홈런을 날렸다. 지난 7월에는 상하이(上海)에서 자본금 1,000억달러의 브릭스(BRICS) 신개발은행 개업식도 가졌다. 57개 창립회원국을 자랑하는 AIIB는 연말 베이징(北京)에서 정식 출범 예정이다. 내년에는 400억 달러 규모의 실크로드기금도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중국 돈의 힘이 점점 강해지며 중국의 금융 굴기도 본격화하고 있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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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화기금(IMF)이 집행이사회를 열어 중국 위안화의 특별인출권(SDR) 통화바스켓 편입 여부를 결정하는 30일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에서 한 직원이 위안화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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