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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나는 대한민국 ○○○입니다] (18) 고개 숙인 외벌이 가장 "입 늘었는데 지갑은 더 얄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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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낳고 맞벌이 꿈 접어.. 입 늘었는데 지갑은 더 얄팍"
여성 5명중 1명 '경단녀'.. 임신·육아로 직장 나와
맞벌이 가정 소득 1.4배.. "아내 재취업한다면 찬성"
젊은 남편일수록 더 원해.. 일·가정 양립 방안 절실


파이낸셜뉴스

저는 평범한 대한민국 '외벌이 가장'입니다. '요즘같이 먹고살기 힘든 세상에 혼자 벌어서 가정을 꾸려가기 쉽지 않을텐데 대단하네요'라는 '부러움 같은 위로'를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많이 들은 바로 그 '외·벌·이'입니다. 아버지 세대만 해도 혼자서 거뜬히 한 가정을 이끌어 나가셨던 것 같은데 왜 이제는 위로받아야 할 대상이 됐는지 씁쓸합니다. 물론, 외벌이로 산다는 것이 녹록지 않습니다. 맞벌이도 생각 안해본 것 아닙니다. 하지만 육아를 비롯한 현실의 벽은 만만치 않습니다. 과연 언제쯤 외벌이 가장도 어깨 펴고 환하게 웃을 수 있을까요.

■맞벌이→외벌이, 왜

처음부터 외벌이였냐고요? 아닙니다. 제 와이프도 결혼 전까지는 시쳇말로 '잘나가던' 커리어우먼이었습니다. 하지만 육아라는 큰 벽 앞에서 하릴없이 '경력단절여성'의 대열에 합류할 수밖에 없었죠.

찾아보니 제 와이프와 비슷한 처지의 여성분들이 생각보다 많네요.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15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을 보니 여성의 20.7%(197만7000명)는 임신과 출산 및 육아 등으로 일을 중단한 경력단절여성으로 드러났습니다. 특히 전년도(20.1%)와 비교해 2만2000명(1.1%)이 증가했다고 합니다. 경력단절여성이 일을 그만둔 사유로는 결혼(41.6%), 육아(31.7%), 임신 및 출산(22.1%) 순이었습니다.

같은 처지의 분들이 많아서였을까요. 간과했습니다. 외벌이와 맞벌이의 차이가 이렇게 클 줄은 말이죠.

100m 달리기 시합처럼 금세 결승선을 통과할 것 같던 주택대출금 상환은 42.195㎞의 마라톤 경기처럼 끝이 보이질 않습니다. 편하게 즐기던 외식과 문화생활 등도 좀 과장해 '가뭄에 콩나는 것이 더 빠를 정도'로 빈도가 크게 줄었습니다.

그럼 실제로 외벌이로의 전환으로 가계소득은 얼마나 줄어들었을까요.

현대경제연구원이 통계청의 2014년 연간 가계동향조사를 이용해 산출한 결과, 맞벌이 가구의 소득은 평균 532만6000원으로 외벌이 가구 소득 380만원보다 약 1.4배 높은 걸로 나타났습니다. 대부분 배우자 소득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합니다.

금액만 놓고 보면 생각보다 작은 차이라고 할 수 있지만 외벌이 전환으로 줄어든 가계소득이 자녀들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부모의 경제적 차이가 자녀들의 교육수준 등으로 이어지고 다시금 경제적 차이로 나타나는 악순환이 우려되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그럽니다. 외벌이 가장이면 집에서 대접받고 살 것 같다고요. 가정 수입의 '절대적' 원천이니 와이프와 아이들로부터 '절대적(?)' 지지를 받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여기 재밌는 조사결과가 있습니다.

통계청이 실시한 '2014년 생활시간조사'를 보면 맞벌이 부부의 남편이 가사노동에 쏟는 시간은 하루 평균 41분이었고, 외벌이 남편의 가사노동 시간은 46분으로 나타났습니다. 외벌이 남편이 맞벌이 남편보다 집안일을 5분 더 하는 셈입니다. 맞벌이의 경우 부인도 본인의 일이 있는 만큼 남편이 가사분담에 더 적극적으로 임해야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네요.

하지만 여기서 잠깐. 남편들의 1시간도 되지 않는 가사노동 시간과 달리 부인들은 무려 3시간28분이네요. 더욱 충격적인 것은 외벌이 부인들의 가사 노동 시간도 2시간39분에 달한다는 점입니다. 외벌이든 맞벌이든 부인들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네요.

■육아와 일, 양립할 수 없나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끔 후회도 해봅니다. '육아와 일'을 놓고 고민하던 와이프에게 "내가 버는데 무슨 걱정이야. 회사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해"라고 큰소리쳤던 저의 무모함을 말이죠.

이런 달콤한 상상(?)도 해봅니다. 와이프가 재취업한다면? 와이프가 육아를 위해 회사를 그만두기 전 누렸던 풍요로운 삶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저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진 않네요. 서울시여성능력개발원이 서울시 거주 외벌이 남편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아내가 취업한다면' 찬성한다는 응답이 62.2%에 달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반대한다는 응답은 몇 %나 됐을까요. 충격(?)적이네요. 7.2%에 불과했습니다.

젊은 남편일수록 아내의 재취업을 내심 바라는 눈치입니다.

30~39세의 찬성 응답이 72.7%로 가장 높게 나타난 반면 50세 이상은 48.8%가 찬성한다고 답했네요.

그렇다면 상당수 남편들이 아내의 재취업을 희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역시 '경제적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응답자들 가운데 '집안 경제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가 41.5%로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아내의 사회생활 장려'가 33.4%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육아'라는 벽은 쉽게 넘을 수 없어 보입니다. 경제적 도움도 중요하지만, 이를 위해 자녀를 볼모로 삼을 수는 없기 때문이죠.

통계청이 전국 1만8576 표본가구 내 상주하는 만 13세 이상 가구원 약 3만9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최근 발표한 '2015년 사회조사 결과'에서도 여성 취업의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육아부담(47.5%)이 꼽혔습니다. 이어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 및 관행'(21.5%), '불평등한 근로여건'(10.8%), '가사부담'(5.9%) 순으로 지적됐습니다. '여성이 경제활동을 하는 데 있어 육아와 일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양립할 수 있도록 실제 근로환경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더욱 절절히 와닿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이네요. 고용노동부의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2014년)'에 따르면 육아휴직 관련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사업장은 전체 사업장의 41.2%로 절반 이하 수준에 그쳤습니다. 또 출산.육아기 고용지원금(비정규직 재고용)이나 출산육아기 대체인력지원금 제도의 활용률도 10%가 채 되지 않는다네요. 기업 규모별 맞춤형 지원과 제도 활성화를 위한 방안 마련이 절실합니다.

fnkhy@fnnews.com 김호연 기자

이 기사는 우리나라의 외벌이 가장 현실을 통계청 등 각종 통계를 바탕으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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