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초점]서울시향 박현정 사태 1년, 연주력과 형사사건 사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뉴시스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박현정(54) 전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의 성추행·막말 의혹 논란이 벌어진 지 1년을 앞두고 있다. 서울시향 사무국 직원 17명은 지난해 12월2일 박 전 대표이사가 폭언과 성추행, 인사전횡 등을 일삼았다며 호소문을 내고 퇴진을 요구했다.

현재는 피해자가 피의자로 몰린 상황이다. 사태 해결 기미는 요원하다. 이로 인해 '서울시향'이라는 이름이 최근 사회뉴스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서울시 예산이 들어가는만큼, 매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도 곳곳에 포진해 있다.

억울해하면서도 박 전 대표는 사과하며 퇴진했다. 매듭 지어질 뻔한 사건이다. 그런데 그녀가 사퇴 기자회견 전 경찰에 낸 진정서 때문에 아직도 지리멸렬하게 이어지고 있다. 자신을 겨냥한 호소문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이 당사자가 맞는지 확인해달라는 내용이다.

경찰이 서울시향을 압수수색한 이유다. 경찰서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서울시향 직원들은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일부 직원은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게다가 최근 경찰은 박 전 대표를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남성 직원 A가 거짓말을 했다며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상황이 반전 또는 역전 됐다며 서울시향 직원들을 공격하는 여론도 형성되고 있다. 물론, 사건의 본질이 가려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이 강조했듯 사태의 핵심은 인권침해다. 앞서 서울시 인권보호관들은 박 전 대표의 성희롱과 언어폭력에 의한 인권침해가 인정된다고 해석했다.

박 전 대표는 정 예술감독이 배후라며 그에 대한 여러 의혹을 제기, 사건의 본질을 흐려 놓은 바 있다. 인권 문제보다는 정 감독, 서울시향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지적의 빈도가 높아졌다.

서울시향 직원들은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클래식계는 서울시향 사무국 직원들이 행정 직원의 성격보다 예술가적 성향이 짙은 점을 짚었다. 법적 다툼 등에서 확실한 증거를 미리 확보할 기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박 전 대표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전문경영인 출신이다.

이 와중에 서울시향이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기회조차 사라지고 있다. 올해 재단법인 10주년을 맞아 기획한 미국 투어도 재원 확보가 원활하지 않아 무산됐다. 아시아 오케스트라 중 정상급으로 인정 받은 서울시향의 연주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해왔다. 특히 120년 역사의 세계적인 클래식 음악 축제인 BBC 프롬스에 지난해 8월 국내 오케스트라 최초로 초청을 받아 연주했고 호평을 받았다. 서울시향이 발매한 음반 '진은숙 3개의 협주곡'(도이치 그라모폰)은 '국제클래식음악상'(ICMA)과 'BBC 뮤직 매거진상'을 받기도 했다.

서울시향은 2011년 아시아 최초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레이블인 독일의 도이치 그라모폰(DG)과 장기 레코딩 발매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지난 9월에는 동북아 최고의 공연장으로 꼽히는 중국 베이징 국가대극원(NCPA)의 초청으로 2017석의 콘서트홀에서 공연, 역시 호평을 들었다.

정 예술감독도 세계적인 거장으로서 인정받고 있다. 지난 6월 15년 간 잡아온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휘봉을 내려놓으면서 이 악단 역사상 처음으로 명예 음악감독으로 추대됐다. 오케스트라에 공적을 남긴 지휘자에게 부여하는 영예로운 직책이다.

지난달에는 '2015 산토리홀 특별무대'의 주인공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클래식 강국인 일본에서도 명망 높은 산토리홀이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음악가 중 한 명을 선정해, 한 주 동안 집중 조명하는 프로그램이다. 피아니스트 미츠코 우치다(2011·2013),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2013), 미도리 고토(2014)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이 무대에 섰다. 정명훈은 서울시향과 이 무대에 올랐다.

서울시향이 국내에서 대외적으로 가장 크게 부딪히는 난제는 서울시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단체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클래식이 일부를 위한 장르라는 인식이 강하다.

진은숙 서울시향 상임작곡가는 지난 3월 "서울시는 세금을 걷어 여러 사업을 한다. 나는 클래식 음악을 안 듣는데 왜 지원을 하느냐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난 왜 평창동의 도로를 걷지 않는데 그 도로를 만드느냐'는 논리에서 (서울시향이)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성숙한 시민사회는 나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더라도 이 사회를 풍요롭게 만드는데 보탬이 되면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우주 탐사 역시 내가 은하계에 가서 살 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냐고 하면 할말이 없지만 거기서 얻어지는 의식, 학문과 진리에 다가가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고 말했다.

서울시 세금이 들어가는만큼 내역을 세세히 살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특수성을 배제한 채 문화적인 것까지 덮으려는 프레임으로 인해 존재 가치마저 부정한다면, 지나치다는 것이 클래식계의 인식이다. 서울시향 1년을 앞둔 클래식계, 나아가 문화계가 풀어야할 과제다.

realpaper7@newsis.com


★ 뉴시스 뉴스, 이젠 네이버 뉴스 스탠드에서도 만나세요
★ 손 안에서 보는 세상, 모바일 뉴시스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