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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불안한 당신, 한 사람만 있어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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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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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 7년을 만났다. 두세 달에 한 번, 많을 때는 일주일에 한 번이었다. 만남의 '밀도'는 높았다. 친구, 애인, 가족에게도 못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그 세월이 한 권의 책에 담겼다. 환자와 주치의에서 공동저자가 된 김동영 작가(사진 오른쪽)와 김병수 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부교수(사진 왼쪽)를 만났다. 진료실에서 그랬듯이 대화의 문을 열어젖힌 건 김 작가였다.

"아프다고 하면 처음엔 걱정해주죠.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함부로 하는 말들이 늘어납니다. 공황장애나 우울증처럼 멀쩡해 보이는 병은 더 그렇죠. 이 책은 '아파서 어떡하니'와 '넌 어떻게 된 애가 만날 아프니' 사이의 기록입니다. '불안장애 극복기'나 '간병기'는 아니에요. 저는 '먼 여행을 떠나는 남자'였는데, 이번엔 극심한 고통 속에서 내면으로 여행을 떠난 거죠. 그 여행에 함께해주신 게 교수님이고요."

김 작가를 세심하게 관찰하며 주의 깊게 이야기를 듣던 김 교수가 말을 받았다.

"진료실에서 환자가 바라는 것과 의사가 해줄 수 있는 건 다르거든요. 아무리 마음 깊이 공감한다고 해도 얼마나 아픈지는 모릅니다. 책을 쓰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많이 망설였어요. 의사와 환자 간의 심리적 거리를 무너뜨릴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동영 씨 치료에 도움이 된다면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결과물을 봤을 때 저에게도 의미 있는 시도였던 것 같습니다. '정신과 의사로서 확장된 느낌'이 들어요. 고마운 경험이죠."

김 작가는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나만 위로할 것' 등의 베스트셀러를 썼다. 음반 공연기획·밴드 매니저·아마도이자람밴드의 드러머 등 청년들이 선망하는 일들을 해왔고, 델리스파이스의 유명한 곡 '항상 엔진을 켜둘게' 등의 작사가이자 라디오 프로그램의 음악작가이기도 했다. 이렇게 재주 많고 인기 많고 에너지 넘치던 그에게 불안과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최근 방송을 중단한 정형돈 씨 등 잘나가는 연예인들이 극심한 고통을 호소한 그 병이다.

"개인적 불행과 여러 요인들이 겹쳐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어요. 2년간은 원인도 모른 채 여러 병원을 전전했습니다. 그러다 김병수 교수님을 만나게 됐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활을 체크하고 내게 맞는 약을 찾는 과정을 함께했습니다. 많이 좋아졌지만 지금도 치료 중이에요.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선생님이 계셔서 극복할 힘을 얻습니다. 무엇보다 저만 아픈 게 아니더라고요. 요즘 저만 보면 사람들이 자기가 어디가 아픈지 고백하곤 하거든요. 이 책에서 누군가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다면 저에게도 큰 위안이 될 것 같습니다."

김 교수는 '버텨낼 권리' '사모님 우울증'을 썼고 KBS 아침마당, 비타민과 SBS 라디오,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에 상담패널로 출연하는 등 대중에게도 친숙한 정신건강 전문의다. 그는 불안장애도 당뇨나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유전적 소인은 잠재해 있었는데 경쟁이 치열하고 아픔을 용인해주지 않는 사회가 되면서 발병 요인들이 늘어난 것"이라며 "약이나 규칙적인 생활습관 등으로 꾸준히 관리해야 하지만, 분명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치유는 포기해야 하는 걸까?

"동영 씨에게 '끝이 없는 고통은 없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누군가 주의력을 놓지 않고 세심하게 목격해주는 게 치유죠. 한 사람만 있으면 돼요. 손을 내밀고 이야기를 주고받고, 바라봐주는 것 말입니다. 동영 씨를 닮은 누군가에게도 말해주고 싶어요. 행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것이라고요. 죽을 것 같은 고통도 지나가고 죽을 만큼 불행해도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럭저럭 잘살아가게 마련이에요."

김 교수 말을 들으니 조금 안심이 됐다. 비상약 한 알을 얻은 느낌이라고 할까. 김 작가가 지었다는 두 남자의 책 제목은 '당신이라는 안정제'(달출판사)다.

[신찬옥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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