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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정리뉴스][‘폭력시위 프레임’을 넘어서](2) 집회는 국가가 ‘허가’할 수 없는 것···그날의 충돌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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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시민 13만명(주최 측 추산)이 참가한 ‘민중총궐기 투쟁대회’가 끝난 뒤 정부·여당 의도 대로 ‘폭력시위 프레임’만 남았습니다. 2008년 ‘미국산 광우병 우려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이후 7년 만에 1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왜 거리로 나섰는지, 시민들과 경찰 사이에 충돌은 왜 벌어졌는지는 정작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두번째로 ‘그날의 충돌 이유’를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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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민중총궐기 투쟁대회’ 참가자들이 경찰이 발사한 물대포를 맞으며 차벽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김정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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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회는 국가가 ‘허가’할 수 없는 것

집회에서 충돌이 벌어지는 이유는 매번 비슷합니다. ‘주최 측의 집회 신고→경찰의 불허→주최 측의 집회 강행→경찰의 저지’ 패턴을 반복하죠.

이번 투쟁대회를 주최한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집회에 앞서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서울 세종로공원과 KT본사 앞 인도에서 집회를 하겠다고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또 오후 4시부터 인도를 이용해 서울광장에서 광화문사거리, 정부서울청사, 경복궁역을 거쳐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까지 행진을 하겠다는 내용도 신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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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총궐기 투쟁본부’가 지난 14일 인도를 이용해 행진하겠다며 경찰에 신고한 경로. 서울광장에서 광화문사거리, 정부서울청사, 경복궁역을 거쳐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에 도착하는 코스다. 하지만 경찰은 교통 문제를 들어 이를 불허했다. |네이버 지도 갈무리


하지만 경찰은 ‘집회와시위에관한법률’ 12조1항을 근거로 집회를 금지하고 ‘경찰 차벽’으로 광화문 일대 통행을 막았습니다. 집시법 해당 조항은 “관할경찰관서장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주요 도시의 주요 도로에서의 집회 또는 시위에 대하여 교통 소통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이를 금지하거나 교통질서 유지를 위한 조건을 붙여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지난 12일 강신명 경찰청장은 “플라자호텔과 대한문 앞, 대한문에서 숭례문 가는 도로도 내어줄 계획”이라며 주최 측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습니다. 또 “광화문광장까지 가겠다는 본질은 결국 청와대에 진출하겠다는 것”이라며 “도로를 점거하고 광화문광장 진출 시도가 있다면 차벽을 설치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주최 측은 “경찰이 인도행진을 막지 않는다면 평화적으로 행진할 것”이라며 “그러나 평화행진을 무력으로 막고 충돌을 야기한다면 그 책임은 경찰에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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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 경찰이 ‘민중총궐기 투쟁본부’에 보낸 ‘옥외집회 금지통고서’. ‘집회와시위에관한법률’ 12조1항을 근거로 들었다. |민중총궐기 투쟁본부 제공


‘국가의 통치조직과 통치작용의 기본원리 및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근본 규범’인 헌법 21조2항에는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국가가 시민들의 자발적인 집회를 금지할 수 없다는 것이죠. 만약 집회를 일부 제한하더라도 그 요건은 최소화해야 할 것입니다.

또 2011년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인 2009년 6월 경찰이 서울광장을 차벽으로 둘러싸 시민 통행을 막은 것을 두고 “극단적인 조치로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한 것이다. 불법집회 가능성이 있다 해도 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는 최소한의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헌재 결정 이후에도 경찰은 정권을 비판하는 집회에 차벽을 세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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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서울 광화문 사거리 인근에서 민주노총 등 노동·농민·시민사회단체로 이뤄진 ‘민중총궐기 투쟁본부’가 개최한 ‘민중총궐기 투쟁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행진 도중 차벽을 무너뜨리려 하자 경찰이 캡사이신과 물대포를 발사하고 있다. 경찰 차벽 뒤편으로 광화문광장이 보인다. /김정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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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최 측은 “우리가 신고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경찰이 부당하게 집회를 금지한 것”이라며 “집회 주최자가 의도하는 집회의 효과를 달성할 수 없는 곳에 집회 장소를 내주는 것은 명백한 ‘집회 길들이기 시도’”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경찰 당국의 집회 금지, 집회 길들이기 시도, 차벽 설치는 헌법을 명백히 위반하는 불법 행위”라고 했습니다.

결국 일부 참가자들이 쇠파이프와 각목, 밧줄 등을 이용해 차벽을 무너뜨리고 행진을 강행하려 했고, 경찰은 물대포와 캡사이신 등으로 이를 막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희를 앞둔 농민 백남기씨가 경찰 물대포에 맞아 여전히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찰이 이날 하루 동안 시위 진압에 사용한 물과 캡사이신은 각각 18만2000ℓ와 651ℓ로 지난해 1년 사용량의 45.5배와 3.4배에 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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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6시30분 서울 광화문광장은 ‘경찰 차벽’에 둘러싸여 근무 중인 경찰관들을 제외하고 차량이나 시민들은 보이지 않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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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김용남 의원은 지난 16일 JTBC에 출연해 “광화문이 뚫리면 청와대가 지척”이라며 “그런데 청와대 경호수칙상 시위대가 쇠파이프로 무장하고 경내로 진입하는 순간에 실탄 발포가 원칙이다. 그래서 더 불행한 상황을 막기 위해서 살수차의 동원이 불가피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고 했습니다. 같은 당 이완영 의원도 이날 “최근 미국에서 경찰들이 총을 쏴서 시민들이 죽는데 10건에서 80~90%는 정당하다고 나온다. 이런 것들이 선진국의 공권력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예를 들면 폴리스라인을 벗어나면 미국 경찰은 그냥 막 (집회 참가자들을) 패버린다. 그게 오히려 정당한 공권력으로 인정받는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한국과 미국의 결정적 차이를 간과했습니다. 청와대에서 도보로 30분가량 걸리는 광화문광장에서부터 집회를 금지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백악관 바로 앞에서의 집회도 열 수가 있습니다. 또 미국 경찰의 총기사용은 자주 과잉진압 논란을 일으킵니다. 가디언에 따르면 올해 미국에서 경찰과 보안관 등 사법 집행관의 손에 목숨을 잃은 민간인은 19일 현재까지 1012명에 이릅니다. 이들 중 20%는 경찰에 의해 숨질 당시 비무장 상태였습니다. 이같은 문제 때문에 미국에서는 경찰의 과도한 총기사용 관행을 바꾸려는 시민운동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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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투쟁대회’에서 경찰이 살수차를 이용해 집회 참가자들에게 캡사이신을 섞은 물대포를 쏘고 있다. |공무원U신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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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5일 ‘2차 민중총궐기 투쟁대회’가 열립니다. 정부는 벌써부터 강경대응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경찰이 집회를 주최 측 신고 대로 할 수 있게 최대한 보장하고, 이를 어기는 경우에는 엄하게 처벌하면 어떨까요. 시민들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받고 있다고 느낀다면, 공권력 행사를 지금보다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다시는 백씨와 같은 피해자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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