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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가계부채 1200조 시대]빚으로 연명하는 한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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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한석희ㆍ황혜진 기자] 매달 월급날이면 “월급통장이 내건가~은행꺼지”라고 농담반 진담반 웃고, 집값이 오르거나 내려도 “내 집은 화장실 한 켠. 안방은 은행 소유”하며 쓴 소주잔을 들이킨다. 월 초 신용카드 결제일이 다가와도 “걱정할 것 뭐 있어~카드사가 있잖아”하면서 툭툭 털고 일어나 카드 리볼빙을 신청한다. 2015년을 살고 있는 한국인들 대부분은 이런 농으로 하루를 시작해서 하루를 끝낸다.

그렇다고 ‘국가’라고 다를까. 경기 불씨가 꺼질라 싶으면 으례 나오는 ‘추가경정예산’ 편성은 현대경제학에서 기본 문법으로 통한다. 추경 역시 쉽게 말해 빚을 내는 것이니 일반 가정이나 국가나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세계경제의 문법으로 통하고 있는 ‘양적완화’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추경은 국가의 세입세출서상 빚이지만, 양적완화는 보이지 않는 중앙은행의 빚이다. 빚이 만병통치약이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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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은 현대병의 만병통치약?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부채는 올 3월 말 현재 1099조원에 달한다. 이는 전년 동기대비 7.3% 늘어난 것으로 지난해 3분기부터 증가폭이 크다. 금액 기준으로는 지난해 4분기에만 30조원 가까이 늘었으며, 올 1분기에도 11조6000억원이 늘어나 예년 수준(과거 5년 1분기 평균 4조5000억원)을 크게 웃돌았다.

가계부채가 이처럼 최근 들어 큰 폭으로 늘어난 데에는 ▷한국은행의 잇따른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사상최저 수준의 저금리 ▷하루가 멀다하고 폭등하는데도 물건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게 하는 전세난 ▷경기부진에 따라 개선 기미를 보이지 못하는 가계소득 여건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이다.

돈은 없는데 돈은 필요하고, 게다가 남의 돈을 내 돈처럼 쉽게 쓸 수 있는 환경이라는 애기다. 전화 한 통이면 은행 돈을 내 돈 처럼 쓸 수 있으니 빚을 만병통치약을 생각하는 이들도 많아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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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LTV 60% 초과~70% 이하 구간에서 은행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이 증가한 반면, 50% 초과~60% 이하 구간은 감소한 것과도 맥을 같이한다. 최근 전세가격이 급등하면서 주택을 30~40대가 주택을 구입하면서 규제 한도(70%)에 가깝게 주담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생계자금 등 다른 목적의 주담대가 늘고 있는 것도 이의 연장선상에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30일 국회에 제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올 4월까지 9개 주요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신규 취급액 기준) 가운데 대출금 상환 용도 비중이 31.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부동산대출 관련 규제가 완화되고 기준금리가 인하되기 직전인 지난해 1∼7월(17.1%)의 약 2배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반면에 주택구입 목적으로 받은 주택담보대출 비중은 지난해 1∼7월 50.4%로 절반을 넘었으나 지난해 8월부터 올 4월 사이엔 39.8%로 떨어졌다. 집을 사려고 받은 대출보다 다른 빚을 갚으려고 받은 대출이 크게 늘었다는 애기다. 살고 있는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야 생활이 가능한 만큼 원리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생활비 때문에 고금리 대출을 받은 가구 비중은 2013년과 2014년 모두 전체 고금리 대출 가구에서 45.8%를 차지했으며, 빚을 갚으려고 고금리 대출을 받은 비중도 2013년 7.6%에서 2014년에는 10.1%로 늘었다. 또 지난해 저소득층 가구의 88.4%는 원리금 상환 때문에 생계를 꾸리는 데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분석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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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은 냈는데 “쓸 돈이 없다” =하지만 소비는 여전히 시계제로에 갇혀 있다. 위험수위에 다다른 가계부채가 이미 소비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30일 국회에 제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가계의 처분가능소득 대비 부채상환지출 비율은 지난해 4분기 37.7%로 전년동기에 비해 1.1%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금리 하락에 따른 이자비용 감소에도 불구하고 분할상환 비중 확대 등으로 대출 원금 상환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소득분위별로 보면 소득 4분위 계층의 처분가능소득 대비 부채상환지출 비율이 2014년 4분기 중 큰 폭으로 상승해 여타 소득계층보다 상대적으로 채무 상환 부담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의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지난해 말 164.2%에 달하고 있다. 이는 OECD 회원국 평균 132.5%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소득 대부분을 빚 갚는데 쓰다보니 소비도 크게 위축되고 있다. 가계소득 대비 가계지출 비율은 2014년 4분기 76.6%, 2015년 1분기 77.5%로 전년동기대비 각각 1.3%포인트, 1.8%포인트 하락했다.

무엇보다 가계부채 증가속도가 소득증가율보다 높은 것이 우려수러운 대목으로 꼽힌다. 한은은 이와 관련 “가계소득 증가율이 2010년 일시적으로 반등했지만 다시 떨어져 2012년 이후 4% 내외의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며 “이는 이자수입 등 재산소득 증가율이 정체된 가운데 자영업자 등의 사업소득 증가율도 부진하고 근로소득 증가율 상승폭도 제한적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소비의 중심축인 40대가 빚에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것도 소비를 시계제로 상황에 가둬놓고 있다.‘2014 가계ㆍ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전체 가계부채 중 40대의 비중은 30.1%로 50대(33.2%) 다음으로 많다. 40대가 안고 있는 금융부채는 5036만원으로 50대(5222만원) 다음으로 많다.

게다가 교육비 등 소비지출은 2910만원으로 다른 연령에 비해 가장 많다. 그만큼 돈 들어갈 곳이 많다는 애기다. 비소비지출 역시 1075만원으로 50대(1086만원)와 흡사한데다 이들의 이자비용은 236만원으로 가장 많다. 최근엔 ‘안심전환대출’로 원리금 상환 부담이 늘면서 그나마 가처분소득 마저 줄고 있다.

그러다 보니 40대의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112.3%로 50대(109.8%), 60대(102.9%), 30대(102.7%) 보다도 높다. 1년 2개월 동안 번 가처분소득을 모두 빚 갚는데 써야 부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애기다.

hhj6386@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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