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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다 못 뽑아줘 미안하다, 얘들아"…취업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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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생각 다른느낌]청년실업, 돈이 흘러야 해결 가능하다]

머니투데이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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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비좁은 회사 사무실에 분주한 발걸음 소리가 울렸습니다. 입사시험의 마지막 관문인 최종면접을 앞두고 젊은 남녀 지원자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입니다.

우연히 1층 로비에서 면접진행을 주관한 C부장을 만났습니다. 올해 경쟁률은 서류전형 기준으로 대략 150대1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C부장은 “오늘 면접은 누구를 합격시키느냐는 문제가 아니라 누구를 떨어뜨려야 하는 상황이라 고민스럽다”고 합니다. 나무랄 데 없는 좋은 스펙을 가진 지원자들이 많은데 채용인원은 한정돼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어마어마한 경쟁률은 40대 중반 이상 장년층은 경험해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1997년 IMF 금융위기 전에는 회사를 들어가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버블경제의 수혜(?)이기도 합니다.

청년실업 문제로 10여년 전에도 ‘200만 청년실업 해소’라는 캐치프레이즈가 걸렸었는데, 세월이 지난 올해도 여전히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여러 정책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고용디딤돌 프로그램, 산학일체형 도제학교 확대, 중견기업 인턴제 등 직접적인 지원책과 더불어 임금피크제를 청년고용 정책으로 홍보까지 하는 마당입니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은 기부금 형식의 청년희망펀드를 제안했으며,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성남시장은 청년수당과 청년배당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그 실효성이 단기적이거나 한계적이라는 우려가 있으며 일부에서는 이런 대책들을 ‘포퓰리즘’ 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뒷짐 지고 남의 눈에 티끌을 찾아 흠집만 내지 말고 무엇인가 해보려는 노력은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정책들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만큼 청년실업 문제가 중요하나 해결할 방법이 마땅히 없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사실 실업문제는 국내외 경제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정부나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역량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누가 정권을 잡든 저성장과 실업 문제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을 것입니다.

고용의 수요측면을 늘리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이 뒷받침되고 기업의 투자가 확대돼야 합니다. 그러나 2010년 6.3%의 반짝 경기회복을 제외하고는 2008년부터 2~3%대의 경제성장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1~2014년까지 경제성장률은 평균 3.04% 이며, 내년도 경제성장률은 한국은행은 3.2%, LG경제연구원은 2.7%의 낮은 수치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도 7% 이상 경제성장률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일세를 풍미할 천재이거나 사기꾼일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경제규모면에서 이미 선진국 수준에 진입했으나 세계 경기 민감도를 따질 때는 아직도 신흥국 기준입니다. 그런 이유는 부존자원의 부족과 상대적으로 적은 인구수로 인해 내수보다는 해외경기 의존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재 해외의 경제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 미국, 유럽, 인도를 제외한 신흥국과 대부분의 국가들이 저성장의 침체를 걷고 있습니다. 중국은 올해 7%미만의 성장률이 예측되고 있으며, 일본의 아베노믹스도 예전의 화려했던 ‘소니’처럼 그 수명을 다한 듯 합니다. 브라질, 러시아 등 자원국은 원재재 가격 폭락으로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내수라도 살아나야 하는데, 부유층과 가난한 사람들과의 소득격차는 날로 벌어지고 있으며 가처분소득은 줄고 가계부채는 늘어나서 빚을 갚기도 버거운 실정입니다.

국내 건설경기는 저금리에 기초한 주택건설과 분양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나, 저유가로 인해 해외수주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플랜트 수주량은 줄었고 과당경쟁에 따른 해외 저가 수주가 부실 위험을 키우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청년실업 이유는 공급측면에 있습니다. 미래예측에 실패한 교육정책이 청년실업의 한 원인입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6월에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대학 및 대학원 졸업자가 매년 40만명에 달하나 이들이 선호하는 양질의 신규 일자리는 16만개에 불과해 조기진로지도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런 미스매칭은 산업별 특성화교육을 하지 않고 단지 대학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이유로 일반 대학교 숫자만 늘려놓은 결과입니다.

오늘날 직업 선택의 기준은 비춰지는 겉모습보다 적성에 맞는 일을 선호하여 다양화되고 있습니다. 만일 스타요리사들이 출연하는 ‘냉장고를 부탁해’나 가수등용문인 ‘K-POP 스타’ 라는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이 일찍 성행했다면 이런 정책적 오류는 줄어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취업이 어려워지자 하나의 대안으로 청년창업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패하게 되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거나 다시 취업을 위해 기업문을 두드리기 어렵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지난 5월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청년들은 창업의 가장 큰 걸림돌로 실패의 두려움(35.7%)을 꼽고 있습니다. 또한 창업희망 분야는 외식업과 소매업 등 일반 서비스업이 48.7%를 차지해 기술형 창업은 회피한다는 문제도 지적되고 있고요.

청년실업 해소는 근본적으로 경제성장과 교육체계의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저물가·저성장에 적응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짜려면 상당 기간 고통을 감내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현재 정부는 신규 고용을 늘리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일자리 나누기에 집중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좀 더 세련되고 멋진 ‘나눔의 미학’이 발휘되려면 돈이 많은 곳에서 없는 곳으로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해야 합니다. 적정한 소비문화를 권장하고, 저소득층을 위한 소득지원이나 재분배로 가처분소득을 늘려야 합니다. 부자들의 돈이 투자와 고용으로 이어지면 경제의 숨통을 트이게 해서 내수를 튼튼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래야 기업도 더 많은 이익이 나고 가계도 안정화될 수 있습니다.

문득 사내 벽에 걸려있는 ‘겸손’ 이라는 문구가 어른거립니다. 한번쯤은 자기 자신을 뒤돌아보게 만드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면접을 온 지원자나 갓 들어온 신입사원은 그다지 가슴에 와닿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미 충분히 주눅 들고 지쳐 있거든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패기’가 아닐런지요?

이야기를 나누던 C부장이 미처 하지 못한 말을 전해달라며 바쁜 면접일정을 진행하기 위해 총총히 사라졌습니다.

“다 못 뽑아줘 미안하다, 얘들아”

김태형 이코노미스트 zestth@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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