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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남편 살해범 단서 찾아 17년…중국판 '테이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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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테이큰’ 속 갱단에 납치된 딸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는 아버지 브라이언 밀스(리암 니슨 분). 예리한 청각과 뛰어난 기억력 등으로 납치범들을 무찌르는 그의 모습을 보노라면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여기 리암 니슨을 능가하는 엄마가 나타났다. 17년 전, 이웃에 살해당한 남편의 복수를 위해 직접 단서를 찾아 나서 가해자들을 잡아들인 50대 중국인 여성 이야기다.

세계일보

중국 허난(河南) 성 쉬창(许昌) 시 샹청(襄城) 현에 사는 리 구이양(59)은 지난 1998년 1월 어느날, 남편을 이웃에 잃었다. 말다툼으로 시작된 싸움이 살인극으로 이어진 것이다. 당시 교사였던 리씨의 남편은 말싸움에 격분, 칼을 휘두르는 이웃에 맞서 아내를 지키려다 목숨을 잃었다. 리씨도 칼에 찔려 심한 부상을 당했다.

살인극에 가담한 이는 총 다섯 명. 이들은 리씨의 남편을 죽인 뒤, 곧바로 마을을 떠났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도망친 터라 공안이 가해자들을 잡을 수도 없었다. 공안은 리씨에게 “실마리가 부족해 수사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공안이 잡을 수 없다면 내가 단서를 찾는다.’

세 아들과 두 딸을 둔 엄마이자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리씨의 추격전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리씨는 그때부터 13년 동안 성(省) 10여 곳을 돌아다녔다. 어디로 도망쳤을지 모를 살인범 흔적을 찾기 위해서다. 눈에 불을 켜고 쏘다니는 리씨를 본 사람들은 “미쳤다” “정신병자가 아니냐” 등의 말만 할 뿐이었다.

리씨는 자신이 탔던 기차표를 모두 보관했다. 추적 경로를 일일이 적어둘 수 없는 탓에 자신이 어디에서 어디로 향했는지 기억하기 위해서다.

리씨는 엄마로서의 삶도 포기했다. 그는 다섯 자녀가 자라는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리씨가 남편 복수를 위해 칼 가는 동안 그의 다섯 아이들은 학교도 잘 다니고, 대학에도 들어갔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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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리씨를 도왔다. 지난 2011년, 우연히 베이징에서 살인범 다섯 명 중 한 명의 전화번호를 알아낸 것이다.

같은 방법으로 살인범 3명의 신원을 확보하고, 단서를 찾은 끝에 이들을 감옥에 보낼 수 있었지만, 한 사람만은 리씨가 잡지 못했다. 그가 찾지 못한 가해자는 다른 살해혐의로 이미 교도소에 수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17년에 걸친 리씨의 추격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후련할 것 같지만 그는 여전히 마음이 쓰라리다. 남편의 복수를 완벽히 갚지 못했을뿐더러 10여개 성을 돌아다니느라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다.

네티즌들은 쓸쓸히 고개 숙인 리씨를 응원했다. 많은 이들은 “하늘에서 남편이 웃으며 내려다볼 것”이라며 “17년에 걸친 당신의 용기 있는 행동은 참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줬다”고 입을 모았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사진=영국 데일리메일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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