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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취재파일] 이상화에 3연승 거둔 장훙, 청각 장애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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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스피드스케이팅의 간판스타인 장훙이 청각 장애를 딛고 ‘빙속 여제’ 이상화에 3연승을 거둔 것으로 드러나 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장훙이 어제(25일) 중국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확인됐습니다. 중국 언론은 “장훙이 돌발성 난청 등 온갖 난관을 뚫고 1주일 안에 이상화를 세 번이나 내리 꺾었다. 이상화가 동계올림픽 500m에서 2회 연속 금메달을 따낸 세계적 선수임을 고려하면 이는 기적 같은 일”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1,000m에서 깜짝 금메달을 획득하며 일약 중국 빙속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던 장훙은 지난 15일 월드컵 1차대회 2차 레이스, 21일 월드컵 2차대회 1차 레이스, 22일 2차 레이스에서 이상화와 맞대결을 펼쳐 세 번 모두 승리를 거뒀습니다. 특히 21일 여자 500m에서는 36초56을 기록해 이상화가 2년 전에 세운 세계최고기록(36초36)에 0.2초차로 바짝 접근했습니다.

장훙의 주종목은 1,000m입니다. 지난해만 해도 주종목이 아닌 500m에서는 이상화에 1초나 뒤지며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년 만에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다음은 장훙이 자신의 트위터, 그리고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입니다.

“500m 세계 최강인 이상화를 세 차례나 연거푸 꺾어 말할 나위 없이 기쁘고 만족스럽다. 이전에는 내가 이길 수 있을 까라는 걱정이 있었는데 이제 엄청난 자신감을 갖게 됐다. 사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이후 지금까지 거의 2년 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다.

스피드스케이팅은 다른 선수와 직접 몸을 부딪치며 대결하는 종목이 아니다. 나 자신과 시간과의 싸움이다. 몸 상태가 늘 최상일 수는 없다. 그래서 중요 대회를 앞두고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지난 시즌에는 몸이 좋지 않아 대회 출전 수를 줄이고 휴식을 많이 취했다.

올해 4월부터 본격적으로 체계적인 회복훈련을 시작했다. 전체적인 훈련 강도는 소치 올림픽 이전과 비슷했다. 새로 도전하는 자세로 심기일전해 준비를 했는데 마침 영광스럽게도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유치 홍보대사가 됐다. 하지만 홍보대사라는 직책과 나의 훈련은 서로 모순 관계였다.

전문 운동선수는 매일 훈련해야 효과가 있는데 홍보대사로서 각종 회의나 행사에 열심히 참석하다보니 자연히 훈련 시간을 따로 내기가 쉽지 않았다. 선수는 하루, 이틀 훈련만 하지 않아도 절대로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다. 그렇다고 올림픽 홍보 활동을 대충하기도 어려웠다. 지난 7월이 가장 괴로운 시기였다. 다가오는 시즌에서 뛰어난 성적을 내려면 7월에 집중 훈련을 해야 했다.

그런데 올림픽 개최지를 결정하는 투표가 7월말에 열렸다. 다른 나라 선수들은 캐나다에서 강훈련을 펼치고 있는데 나는 어쩔 수 없이 IOC 총회 개최 장소인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까지 갔다가 다시 와야 했다. 1주일 동안 훈련을 하지 못했고 시차까지 겹쳐 많은 손해를 봐야 했다.

정작 큰 일은 그 직후에 발생했다. 갑자기 귀가 들리지 않게 된 것이다. 의사 진단 결과 ‘돌발성 난청’으로 판명됐다. 시즌을 앞두고 나는 중국 신장에서 전지훈련을 펼쳤다. 난청 치료를 받으면서 동시에 훈련까지 소화해야 했다. 너무 힘들어 링거액에다 근육주사까지 맞았다. 치료약도 수없이 먹었다. 의사는 내가 휴식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평생 후유증이 생길 것이라 말했다. 맑은 하늘에 날벼락 같은 말이었다. 죽을 때까지 청각 장애를 안게 될까봐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한 눈물을 흘려야 했다. 하지만 훈련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것은 패배를 의미했고 올 시즌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지는 것이 죽기보다 싫은 사람이다. 그래서 훈련을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 쏟았다. 나는 금메달을 따고 싶지만 그것보다는 내 자신에게 이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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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훙의 청각은 이전보다는 많이 호전됐지만 집중 치료 이후에도 귀에서는 지금도 ‘웅웅’거리는 소리가 난다고 합니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유치 홍보대사를 하느라 훈련 시간을 많이 빼앗겼고 생각지도 못했던 ‘돌발성 난청’이란 악재를 만났지만 장훙은 집념과 투혼으로 이를 극복했다는 것입니다.

장훙은 월드컵 2차대회 여자 1,000m에서는 미국의 브리트니 보위에 이어 은메달을 따냈습니다. 1,000m에서 상위 4명 가운데 아시아인은 장훙 한 명 뿐입니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장훙의 코치는 최근 장훙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상화를 비롯한 500m 강자들과 맞대결을 펼칠 때 조금도 떨 필요가 없다. 집에서 편안히 밥을 먹는다고 생각해라. 더 이상 너의 라이벌이라고 의식하지 말라. 이미 네가 최강자이기 때문이다.”

중국 언론은 미국 못지않게 자국 선수의 ‘영웅 만들기’를 잘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름( 張虹)도 '무지개 꿈을 펼친다'는 뜻이 내포돼 있습니다. 장훙이 이상화를 꺾은 것만 해도 대단한데 이런 스토리까지 갖췄으니 그들이 대서특필하는 것도 큰 무리는 아닙니다.

하지만 장훙과 이상화의 차이는 근소하고 아직 남은 대회는 많습니다. 올 시즌은 이제 시작한 지 얼마 안됐고 한중 라이벌의 마지막 대결이 될 2018 평창 동계올림픽까지는 2년 넘게 남았습니다. ‘빙속 여제’ 이상화가 조만간 장훙의 돌풍을 잠재울 경우 중국 언론이 어떻게 보도할 지 궁금합니다.

[권종오 기자 kj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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