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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최룡해 축출… ‘아버지 시대’ 지우는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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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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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청 빌미 된 발전소 준공식 지난달 3일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 준공식에 참석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최룡해 노동당 비서(오른쪽)가 옆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김양건 노동당 비서(왼쪽)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최룡해는 이로부터 한 달 뒤 실각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 출처 노동신문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이 25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측근이자 북한 간부들 중에 내부 인맥이 가장 넓은 노동당 핵심 원로인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지방농장으로 추방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발표하자 배경이 무엇인지에 궁금증이 일고 있다.

국정원은 최룡해 문책을 밝히면서 ‘김정은 후계자 만들기’에 큰 공로를 세운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대남 비서는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집권 4년 차를 맞은 김정은이 아버지 시대의 연고주의를 벗어나 자신만의 친정체제를 구축했으며 최룡해는 권력 정비 작업의 마지막 희생자가 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 최룡해는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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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은 최룡해가 이달 초 지방의 한 협동농장으로 추방돼 혁명화 교육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낮에는 힘든 육체노동을 하고 밤에는 반성문을 쓰거나 사상교육을 받는데, 현재 북한의 혁명화는 왕조시대 귀양살이보다 힘들면 더 힘들지 결코 가벼운 처벌이 아니다. 혁명화는 1960년대부터 북한의 처벌방식 중 하나가 됐다. 이후 복권된 사례도 있지만, 통치자의 부름을 다시 받지 못하고 노동자나 농민으로 지내다 죽은 사례가 허다하다.

일각에선 최룡해가 함경북도 농촌에 있다는 설이 나온다. 만약 사실이라면 평양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어서 비교적 무거운 처벌을 받은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그러나 함경북도의 한 소식통은 2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아직 주변에서 그런 소식이 들리지는 않는다”고 했다. 한편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5일 북-중 관계 소식통을 인용해 “최룡해가 현재 평양에서 정치학습을 받고 있으며 이는 언젠가 재기할 수 있는 처분”이라고 상반된 보도를 했다.

○ 최룡해가 왜?

올해 탈북한 노동당 고위 간부는 국정원 발표에 앞서 기자에게 “김정은은 최룡해를 내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2013년 12월 처형된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과 가까웠고 많은 간부와 오랜 친분을 맺고 있는 최룡해의 영향력을 싫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 간부는 “지난해 4월에도 김정은은 행사 관중 동원에 차질을 빚었다는 죄목으로 최룡해를 처형하려 했지만, 장성택에 이어 최룡해까지 죽이면 반발이 클 것을 우려해 노동당 상무위원과 총정치국장에서 해임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고 말했다.

이번 발전소 토사 붕괴 사고 책임을 최룡해 숙청 이유로 돌리는 것은 구실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이 자신의 정책을 쉽게 펴기 위해 아버지 시대로 대표되는 마지막 실세를 내쳤다는 관측도 있다. 익명의 한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은 파격적인 경제개혁을 하고 싶어 하는데, 장성택과 최룡해는 보수적 사고를 대변하는 데다 영향력도 큰 인물이라 제거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 파란만장 최룡해

최룡해의 삶은 그 자체가 실각과 복권의 연속이었다.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위원장이던 1998년 ‘남조선 안기부의 돈을 받았고, 부화방탕한 생활을 했다’는 죄명으로 숙청을 당했다가 5년 만에 복권된 전력이 있다. 당시 청년동맹 부위원장 8명 중 7명이 처형됐고 최룡해 역시 신문 방송은 물론이고 모든 과거 기록물에서 얼굴과 이름이 완전히 삭제됐다. 자강도 임산사업소 노동자로 강등된 최룡해는 현지에서 애완견을 키우고 있다는 신고가 중앙에 보고돼 또다시 곤경에 처해졌다.

반성은 하지 않고 강아지나 키우고 있다는 지적을 들은 최룡해는 당시 “장군님(김정일)이 그리울 때마다 장군님이 선물로 주신 애완견을 품에 안고 있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에 김정일은 “내가 준 애완견을 안고 있다는데 뭘 문제 삼느냐”며 비교적 조건이 좋은 황해도로 옮기도록 했고, 이후 최룡해는 국토환경보호연구소 당비서로 재기한 뒤 5년 뒤 2003년 당 총무부 부부장으로 복귀했다.

최룡해의 복권 여부는 내년 5월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이때 열리는 노동당 7차 당대회에서 최룡해가 요직을 차지하지 못하면 다시는 중앙 정치에 복귀하긴 어려워 보인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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