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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종합]백낙청 "신경숙 표절 논란 대응, 기본 지켜낸 것 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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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창비의 역사 백낙청 편집인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백낙청(77) 서울대 명예교수가 표절 의혹을 받은 작가 신경숙(52)을 비호한 뒤 받은 비판에 대해 "우리가 어떤 '기본'을 어렵사리 지켜낸 것만은 자부할 수 있다"고 말했다.

25일 저녁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창비 통합 시상식에서 폐회 인사를 한 그는 미리 작성해온 인사말을 통해 이 같이 밝혔다.

백 교수는 이날 50년간 맡아온 출판사 창작과비평사(창비) 편집인 자리를 내려놓겠다고 선언했다. 그동안 매해 통합 시상식을 시작하면서 인사말을 해 온 그는 민감한 이야기가 섞여 있어 원고를 정리해왔다며 이날 행사 마지막에 연단에 섰다.

담담한 표정의 그는 신경숙 표절 의혹이 불거진 뒤 창비의 대응에 대해 "자성하고 자탄할 점이 많다"고 인정하기는 했다. 특히 "독자와의 소통능력이나 평소 문학동료들과의 유대 형성, 사내 시스템의 작동 등에 큰 문제가 있었음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굳이 이 말을 하는 것은 "바로 '기본'을 고수하는 그 자세가 많은 비판자들의 맞춤한 표적이었고 창비를 염려하는 분들이 특히 답답하고 안타깝게 여기신 대목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한 작가의 과오에 대한 지나치고 일방적인 단죄에 합류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부패한 공범자로 비난받는 분위기에서, 그 어떤 정무적 판단보다 진실과 사실관계를 존중코자 한 것이 창비의 입장이요 고집이었다"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더 큰 뭇매를 자초했지만 "한 소설가의 인격과 문학적 성과에 대한 옹호를 넘어 한국문학의 품위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자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을 말씀드릴 수 있다"고 했다.

백 교수는 이것이 창비의 다음 50년을 이어갈 후진에게 넘겨줄 "자랑스러운 유산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물론 "'기본'을 지키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며 "표절문제뿐 아니라 이번에 제기된 여러 과제를 두고 이제부터 한층 다양한 관점에서, 그러나 상호존중과 실사구시의 정신을 공유하면서, 본격적인 토의가 벌어져야겠다"고 덧붙였다.

창비 편집인을 그만둔다 해서 이곳을 아주 떠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계간 '창작과 비평'에 한해서는 깨끗이 손을 뗀다. "오늘은 제가 창비 편집인으로 여러분께 인사드리는 마지막 통합시상식"이라며 "여러 이름을 거명하며 감사드릴 기회가 언제 따로 있으리라 믿고, 오늘은 저와 함께 물러나는 두 분에게 고마움을 전한다"고 인사했다. 미술평론가인 김윤수(69) 발행인, 연세대 사학과 교수인 백영서(62) 편집주간이다. 이들은 이번에 백 교수와 함께 물러나기로 했다.

계간은 문학 출판사의 얼굴 격이다. 이곳을 통해 문학상을 공모하고, 신진도 등단시킨다. 백 교수가 창비를 완전히 떠나지 않더라도 의미가 있는 결단이자 상징적인 용단인 셈이다.

백 교수는 내년 50년을 맞는 창비의 지난날도 돌아봤다. "시련도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특히 저의 퇴임을 준비하던 최근 반년 남짓은 정치적 탄압이나 경제적 위기와도 또 다른 시련의 기간이었다"고 여겼다.

백 편집인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안에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꾸준히 밝혀왔다. 신경숙의 표절 논란이 일기 전인 올해 5월 창비의 팟캐스트 '창비 책다방'에서 퇴임도 예고했다. 그러나 신씨를 비호하다가 구설에 오른 뒤 퇴임을 요구받기에 이르렀다.

물론 "상당부분 자업자득이며 새로운 각오로 제2의 50년을 출발하라는 채찍질로 받아들이기에 원망보다 감사가 앞선다"면서도 "그렇다 해도 오늘 수상하신 여러분의 명예를 위해 특히 창비를 통해 문단에 첫발을 들여놓는 세 분 신인을 위해, 창비는 어쨌든 부끄러움보다 긍지를 느낄 일이 더 많은 동네임을 상기하고자 한다"고 했다.

아울러 "온갖 역경을 딛고, 지금도 결코 순탄치 않은 환경에서, 이만큼의 연륜을 쌓고 이만큼의 명성을 얻으며 이만큼의 물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인 것"이라고 자평했다. "그런 실력에 따르는 책무를 여축없이 완수하지는 못했을지라도 책임의 엄숙함을 아예 외면한 일은 결코 없었다"고 부연했다.

미국 브라운대와 하버드대에서 공부한 백 교수는 1966년 계간 '창작과비평'을 창간했다. 민족문학론을 전개하고 분단체제의 체계적 인식과 실천적 극복에 매진해온 한국 근현대의 대표적인 지성이다. 특히 리얼리즘과 현실 참여 문학의 선봉에 서며 1980년대 문학의 전성기를 이끈 창비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로 통한다. 창비 편집인 겸 문학평론가로 50년간 활동해왔다. 하지만 신경숙 표절 의혹 사태 이후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와 함께 '문학권력' 중심에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창비의 편집위원으로 일했던 문학평론가 염무웅씨는 "백 교수가 무려 50년이라는 온 시간을 잡지에 쏟아냈다"며 "아쉬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겠지. 하여간 백 교수가 지난 50년 동안 한국 문단, 한국 문학사에 기여한 바와 성취는 누가 뭐하고 해도 영구히 금자탑처럼 빛날 거다. 그가 그만둔다고 하니 오래 전에 그만 둔 나도 그만두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창비는 50주년을 맞는 내년 초 백 교수의 후임 편집인, 발행인, 주간, 부주간을 발표할 예정이다. 새 체제를 준비하는 특별작업반(TF)이 구성됐다.

한편, 이날 올해 백석문학상의 백무산, 신동엽문학상의 시인 박소란과 소설가 김금희, 창비신인문학상의 김지윤·김수의·김요섭에 대한 시상식이 진행됐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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