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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제가 노벨상 수상자?… 전화한 당신이 입증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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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사무처 전화 '매직콜'

수상자가 사실 믿지 않아 갖가지 해프닝 벌어져

2013년 10월 7일 랜디 셰크먼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새벽 1시 20분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북유럽 억양의 영어를 쓰는 사람이 "축하합니다. 노벨상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결정됐습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셰크먼은 "농담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이어 과학자답게 "내가 노벨상을 받게 됐다는 걸 당신이 입증해보라"고 요구했다.

매년 노벨상 수상자를 발표하기 직전 노벨위원회 사무처는 수상자에게 전화를 걸어 수상 사실을 알려준다. 이 전화를 '마법의 전화'라는 뜻의 '매직콜(magic call)'이라고 한다. 그런데 매직콜을 받는 노벨상 수상자들이 수상 사실을 얼른 믿지 않아 갖가지 해프닝이 벌어진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1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2011년 경제학상을 받은 크리스토퍼 심스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새벽에 매직콜을 받았지만 아내에게 "잘못 걸린 전화"라고 했다. 2009년 화학상 수상자인 벤카트라만 라마크리슈난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도 수상을 알리는 전화를 장난 전화로 여겼다. 수상자들이 의심을 하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수상자 선정 과정이 워낙 베일에 가려져 있어 누가 수상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식 후보자 명단도 없다. 게다가 오래전 업적을 평가해 시상하는 경우가 많아 누가 상을 받을지 미리 가늠하기 쉽지 않다.

장난 전화로 여기는 경우가 많자 노벨위원회 사무처는 매직콜을 걸 때 매뉴얼(대응 요령)도 만들었다. 일단 전화를 걸자마자 "이건 장난 전화가 아닙니다"라고 먼저 말한 다음 수상 사실을 알린다. 아무리 설득해도 믿지 않는 수상자에겐 공식 발표 기자회견을 온라인으로 시청하라고 알려주기도 한다.

노벨위원회 사무처 직원들도 발표에 임박해서야 수상자들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당사자 연락처를 수소문하느라 애를 먹는다. 지난해 화학상을 받은 에릭 베치그(미국)에게 수상 사실을 알려줄 때 노벨위원회는 베치그의 전처(前妻)가 사는 집에 먼저 전화를 거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전처와 사는 자녀가 전화를 받아 베치그의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1991년 화학상을 받은 리하르트 에른스트(스위스)는 비행기에 탑승했다가 기장(機長)이 노벨위원회의 급한 연락을 받고 그에게 수상 사실을 알려주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스웨덴이 아침일 때 미국이 새벽이기 때문에 미국인 수상자들이 새벽에 잠을 자다 전화를 못 받는 경우도 많다"고 보도했다.





[손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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