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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전기차냐 디젤차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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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효율성과 이산화탄소 발생 비교 검증 부족해 확실한 결론 힘들어



폭스바겐이 디젤자동차의 배기가스 저감장치 작동을 실제 주행 때 일부러 멈추도록 조작한 ‘디젤게이트’로 전 세계 소비자들이 혼돈에 빠졌다. ‘디젤차 운전자는 몰상식한 반환경 소비자인가’라는 자기검열도 나온다. ‘이제 전기차로 갈아탈 때인가’라는 질문도 꼬리를 문다. 자동차산업의 기존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상황에서 전기차와 석유차의 앞날을 에너지 효율과 환경성을 잣대로 예측해봤다.

기존 가솔린차나 미래형 수소연료전지차 등도 있지만 논란의 디젤차와 전기차만 놓고 봐도 선뜻 어느 쪽 손을 들어줘야 할지 여전히 헷갈린다. 폭스바겐 디젤게이트만 놓고 보면 적어도 디젤차 시대는 끝난 듯 보인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냉정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 친환경 에너지 수급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이상 전기차 시대로의 급선회라고 결론 내리기는 이르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전기차와 내연기관차(가솔린차·디젤차) 사이에 성능을 비교한 실증자료가 별로 없다. 그런데도 전기차를 내세우는 환경론자와 전통의 엔진차를 미는 쪽이 각자에게 유리한 주장을 하기 바쁘다. 따라서 지금 절실한 것은 ‘디젤차 마녀사냥’이 아니라 전기차와 석유차의 장단점을 냉정히 비교 평가해 서로 고개를 끄덕일 모범답안을 내놓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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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한 충전소에서 르노삼성의 전기차 SM3 Z.E.에 충전하는 모습. / 제주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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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는 무공해인가’에 대한 의문들

디젤차의 단점은 폭스바겐 사태로 더 명확해졌다. 발암물질로 분류된 질소산화물(NOx)과 일반 미세먼지 배출이 문제다. 장점은 휘발유나 LPG보다 열효율이 높은 경유를 쓰는 데 있다. 같은 거리를 가더라도 적은 연료가 들고, 온실가스 주범인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더 적다. 한마디로 디젤차의 미래는 건강과 환경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배기가스를 잡아주는 장치로 건강 걱정은 줄이되, 온실가스도 덜 배출한다면 디젤차도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한 것이 바로 폭스바겐·아우디와 BMW, 벤츠 등 유럽 브랜드들이 키워온 이른바 ‘클린디젤’ 자동차다.

‘클린디젤’ 자동차는 여느 사회보다 도덕적일 것이라는 유럽에 대한 믿음에 기초해 세계 시장에 파고들었다. 올해 상반기에 신규 등록된 국내 자동차의 51.9%가 디젤차로, 처음으로 우위를 보였다. 현대·기아차 등도 저공해 디젤기술 대열에 동참했고, 미국도 차츰 늘리고 있다. 그러나 폭스바겐의 사기가 들통나자 모든 디젤차들에 도매금으로 족쇄가 채워진 꼴이 됐다.

전기차는 무엇보다 운행단계에서 이산화탄소가 전혀 나오지 않아 ‘무공해차’라는 수식어까지 얻었다. 하지만 냉정히 보자면 전기차가 무공해차는 아니다. 전기 생산방식에 따라 차이가 크다. 석탄 및 원자력 의존도가 높은 한국과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는 미국에서 전기차의 의미는 다르다.

또 다른 근본 문제는 에너지 효율이다. 즉 화석연료 등으로 만든 전기를 송전·충전한 뒤 차로 운행했을 때와 원유를 정제한 뒤 휘발유나 경유로 만들어 운송·주유한 뒤 운행한 경우 에너지 효율을 비교·분석해 봐야 한다. 이른바 ‘WTW(well to wheel·유정에서 바퀴까지) 분석’이다.

환경 영향도 마찬가지다. 전기 생산과 배터리 생산(폐기) 과정을 종합 고려해 이산화탄소나 미세먼지가 과연 얼마나 배출되는지 업계, 정부, 학자가 참여해 합의할 필요가 있다. 석유엔진 차의 경우도 원유 정제부터 수송, 주유, 운행까지 과정에 환경성을 분석·비교해야 마땅하지만 정부나 학계나 기업 모두 답을 못 내고 있다.

정유사업과 차량 배터리 사업을 함께하는 SK이노베이션이 전한 미 에너지부 산하 오크리지연구소(ORL)의 연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연구소는 “오일은 엔진까지 전달되는 열량이 90%이지만 실제 엔진에서 구동축까지는 19% 수준으로 전달된다”고 밝혔다. 연구소가 계산한 내연기관 에너지 효율성은 17%였다. 반면 “배터리는 발전해서 엔진까지 전달되는 열량이 44%였고, 구동축까지는 85% 수준으로 전달됐다”고 연구소는 분석했다. 배터리차(전기차)의 에너지 효율성은 37%라고 계산돼 내연기관보다 크게 높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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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료효율, 배기가스 전기차 유리

환경 측면에서도 가솔린과 디젤이 생산단계 때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는 1㎞당 각각 20g, 19g으로 적지만 내연기관 구동 중에는 각각 151g, 140g으로 높아진다고 연구소는 분석했다. 반면 배터리차는 “생산단계에서는 1㎞당 92g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나 구동 중에는 배출량이 없다”고 밝혔다. 이런 연구가 합리적이라면 전기차 시대를 앞당겨야 할 명분이 커지게 된다. 전기차·에너지 전문가로 알려진 토니 세바도 <에너지 혁명 2030>이란 책에서 “100년 역사의 내연기관 자동차의 에너지 효율은 21%에 그치지만, 전기차는 99.99%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전기차가 휘발유차보다 에너지 효율이 4~5배 높고, 부품이 90% 정도 적다고 덧붙였다.

이들 주장이 맞더라도 현실적인 과제는 따로 있다. 현재 리튬이온 배터리로는 전기차 시대를 열기가 부담스럽다. 배터리 수명이 약 10년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 나온 배터리로는 4~5년 정도만 마음놓고 쓸 수준”이라고 평했다. 수명을 늘리고 충전효율을 높이되 가격은 크게 낮춰야 대중화가 앞당겨질 것이다.

환경 측면에서 엇갈리는 견해도 있다. 독일의 현행 원자력, 석탄, 중유, 천연가스를 고려한 발전 전력을 사용할 경우 전기차가 오히려 디젤차보다 이산화탄소 발생이 33% 증가한다는 보쉬의 2010년 연구 결과도 있다. 그 대신 신재생 에너지와 원전으로 발전한 전력으로 충전한 전기차는 디젤차보다 이산화탄소를 약 40%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에너지기업 BP의 2012년 보고서를 봐도 석탄이나 석유로 얻은 전기차에 쓰인 전력으로 본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일반 차량과 큰 차이가 없다.

디젤차에 대한 성급한 비판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정동수 창원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최근 독일 자동차검사단체 TUEV 노르트와 독일 자동차클럽 ADAC에서 디젤과 가솔린 및 CNG 자동차의 미세먼지 배출량을 비교 시험한 결과, GDI(가솔린 직접분사식) 엔진의 미세먼지 배출량이 디젤 엔진보다 최고 10배까지 많은 수준이었다”고 전했다. 또 “2013년 미국의 포드도 GDI 가솔린 엔진의 미세먼지가 신형 디젤 엔진보다 과다 배출해 문제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발표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또 “환경부 조사에서도 드러났듯 타이어가 닳아서 생긴 먼지가 경유차의 미세먼지보다 20배나 많다”며 “전기차도 어차피 같은 타이어를 써야 하기 때문에 종합 비교하면 디젤차와 전기차의 미세먼지 영향은 21대 20의 차이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가솔린의 미세먼지는 입자가 작아서 더 위험하다고 보기도 한다.

아직 디젤게이트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적어도 전기차나 장차 수소연료전지차 시대로 넘어가기 전까지 현실적 대안으로 디젤차의 운행단계 배기가스 검사를 늘려야 하는 점은 분명하다. 오염물질 배출을 줄인 대가로 떨어진 연비가 휘발유차와 큰 차이가 없게 된다면 디젤차는 밀려날 공산이 크다. 그러나 여전히 연비가 높고, 온실가스 주범인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다면 전기차나 연료전지차에 자리를 내주기 전까지 휘발유차와 경쟁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디젤차의 수명은 전기차 시대를 얼마나 친환경적으로 잘 준비해나가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병역 기자 junb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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