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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퇴출대상 공무원 잡초제거 시켰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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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관료들의 생각과 얘기를 통해 어려운 정부 정책을 쉽게 알아보는 코너입니다. 정책 기사에 직접 담지 못한 관료들의 고민도 전합니다. '관료들의 마음'(官心)을 통해 관료사회와 더불어 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보여드립니다.

[[정진우의 '관심(官心)']저성과자 공무원 퇴출, 긴장하는 공직사회]

머니투데이

# 서울 한강시민공원 반포지구.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잡초를 제거합니다. 공원을 청소하는 직원들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죄 지은 사람처럼 얼굴을 푹 숙이고 있습니다. 쉬지도 않고 일만 합니다. 알고보니 이들은 저성과자로 분류된 공무원들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업무능력이 부족하거나 근무태도가 불량한 공무원’으로 찍힌 사람들입니다. 믿기 힘들겠지만 정말 그랬습니다. 제가 몰래 숨어서 직접 캠코더로 찍었습니다. 지난 2007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 시절 얘깁니다.머니투데이 2007년 4월17일 보도참조- [동영상]"'퇴출공무원'이라 하지 마세요"

오 전 시장은 당시 서울시 전체 직원 9937명 중 1%에 가까운 102명을 현장시정추진단으로 발령냈습니다. 일 못하는 공무원들로 분류된, 사실상 '퇴출 후보군'이었죠. 추진단에 들어온 공무원들은 현장업무 실적 등을 바탕으로 6개월 후 재심사를 받았습니다. 심사 결과 부서를 재배치받거나 추진단 근무가 연장됐습니다. 일부는 직위해제 등의 조치를 받았습니다.

대한민국 공무원 사회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정년이 보장되는 직업도 이제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이 팽배했습니다. 평가는 엇갈렸습니다. 공무원들의 근무태도와 능력, 성과를 매달 1회 이상 상시적으로 평가하다보니 “일하는 문화가 정착됐다”는 얘기가 많았습니다. 반면 공무원노조에선 인사권을 남용해 부서별로 강제 할당함으로써 “선량한 피해자를 양산했다”는 비판을 했습니다.

머니투데이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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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꽤 흘렀는데, 현장시정추진단 얘기를 꺼낸 건 정부가 공무원과 공공기관의 저성과자들을 퇴출시키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올해 초에 이어 최근 기재부 국정감사에서도 “공무원 저성과자에 대해선 퇴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겠다"고 밝혔습니다.

공직사회는 긴장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올 게 왔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박봉에 일도 많은데, 유일한 장점인 정년보장을 없애는 건 너무하다는 볼멘소리도 나옵니다. 경제부처 한 공무원은 “요즘 공직사회가 저성과자 퇴출 얘기로 시끄럽다”며 “많은 공무원들이 불안해한다”고 귀띔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이게 과연 현실화될지 의심합니다. 공직사회에 공무원 퇴출제는 이미 10년전에 도입된 제도입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지난 2006년 공무원 퇴출제가 도입된 이후 이 제도를 통해 옷을 벗은 공무원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공무원들이 결국 제 식구 감싸기식으로 제도를 운영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름만 거창할 뿐 제도는 유명무실했습니다.

문제는 객관적인 평가 방식이 없다는 겁니다. 공직사회 업무는 평가 기준이 애매합니다. 공공파트 자체가 수익이나 실적만으로 단순히 계산되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공성이 강한 업무의 특성이죠. 평가에 어려움이 많다보니 주관이 개입됩니다. 상급자 마음에 들지 않으면, 평가 점수가 박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죠. 윗 사람 눈에만 잘 보이면 되기 때문에 심각한 보신주의가 팽배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옵니다.

중앙부처 한 공무원은 “공무원 퇴출이란 게 말이 쉽지 공정한 평가가 어렵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힘든 일이다”며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들을 어떤 기준으로 저성과자로 분류하고 퇴출 시킬 수 있겠냐”고 지적합니다.

정부가 공직사회의 철밥통 이미지를 깨는 등 화끈한 개혁을 추진한다면 좀 더 디테일한 전략이 필요해 보입니다. 확실한 신상필벌 제도를 세워 일하는 공직사회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대우받고, 성과를 내는 사람이 승진하는 시스템이 갖춰져야합니다. ‘철밥통’, ‘신의 직장’ 등과 같이 부정적인 단어가 수식하는 조직이 되지 않도록 환골탈태 노력이 절실합니다.

다시 서울시의 현장시정추진단 얘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이 제도는 도입 4년만인 2010년 말에 전격 폐지됐습니다. 4년 내내 이 제도를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추진단에서 교육을 받던 공무원이 숨지는 일도 있었고, 인권말살이라는 지적도 많았습니다. 내부저항도 심했습니다. 서울시는 당시 이 제도가 일하는 문화를 정착시켰다고 자부했지만, 과연 그랬을까요? 그랬다면 4년만에 제도를 없애진 않았겠죠. 정말 제도가 괜찮았다면 서울시가 좋은 정책으로 정하고 매년 전략적으로 홍보했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이번 저성과 퇴출 계획에 대해 소리만 요란할 뿐 결국 흐지부지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치밀한 계획없이 말만 그럴싸한 개혁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장시정추진단을 운영했던 한 공무원은 “공직사회 개혁은 민간영역보다 100배는 더 어렵기 때문에 더욱 치밀한 계획과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공직사회는 지난 10년간 개혁을 외치면서, 제 식구 감싸기만 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공직사회가 이번엔 ‘잃어버린 10년’을 극복하고, 제대로 된 개혁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세종=정진우 기자 econph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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