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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너 완전 예뻐졌다! 살아있는 박물관 ‘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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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년 전 개항한 군산은 폐허의 미학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일제시대 때 지은 건물들이 퇴락과 쇠락을 거듭하며 짙은 시간의 흔적을 드러내며 위험하고 너덜너덜했던 것도 사실이다. 2011년 근대역사박물관 개관을 시작으로 조금씩 모습을 바꿔나가더니 이제는 그 어느 도시의 근대문화거리보다 매력적인 공간으로 변신 완료했다.

▶박물관 밀집 지역 해망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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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근대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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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항 일대는 백년 항구도시 군산을 대표하는 현존하는 거리다. 1899년 5월1일에 개항했으니 합법적인 교역이 시작된지 110년 하고도 16년이 더 흘렀다. 백년 전 이곳은 일본식 건축물, 인력거, 주점, 주택 등 온통 일본 문화가 뒤덮고 있었다. 1910년 8월29일 ‘경술국치’를 시점으로 일본의 식민 지배가 시작되자 총독부와 군경의 뒤를 따라 들어온 세력은 일본의 기업들이었다. 일본에 살던 직장인들이 단독 전근을 오고, 얼마후 가족들이 합류했으며, 사업을 하겠다며 찾아온 일본인들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한때 군산시 인구 중 조선인과 일본인의 비율이 50:50 수준이었던 적도 있었다.

군산의 구도심이 예쁜 거리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이 개관한 2011년부터다. 비슷한 시기에 복원 작업이 완료된 박물관 주변 건축물들이 문을 열고 거리가 정비되면서 폐허의 군산 구도심은 매력적인 공간으로 정돈되었다. 일제의 조선 곡물 수탈을 상징하는 ‘장미동 곡물창고’는 ‘장미갤러리, 장미공연장으로’, 일본인 무역회사였던 ‘미즈상사’는 ‘미즈커피’로, ‘18은행 군산지점’은 ‘근대미술관’으로, ‘조선은행 군산지점’은 ‘근대건축관’으로 재탄생했다.

군산 근대문화박물관은 전시물의 촛점을 제국주의 일본 비판, 친일파 비판, 독립항일운동, 정신문화 등에 두고 있다. 적지 않은 곳에서 발견되는 ‘이 금고가 채워지기까지 우리 민족은 헐벗고 굶주려야만 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등의 구호는 관람객들에게 잔잔한 울림을 전하는 카피글이다. 또한 일제가 수탈해간 조선의 재산이 어느 정도였는지 근거를 제시, 박물관 본래의 학예 기능도 놓치지 않고 있다. 건축 재건 과정에서 초기 건축 당시의 흔적을 보전하는 박물관 특유의 관람객에 대한 배려도 눈에 띈다.

근대 문화여행은 해망로에 몰려 있는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 (구)군산세관 – 장미갤러리, 장미공연장 – 근대미술관 - 18은행 군산지점 금고 전시장 – 안중근 의사 여순감옥전시장 – 근대건축관 등 복원된 박물관을 보고 신흥동 일본식 가옥 등 일제시대 때 지은 민간 건축물 등을 둘러보는 동선으로 이뤄진다. 이 모든 코스는 걸어도 되는 짧고 편한 루트다. 또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배경이었던 ‘초원사진관’, 앙금빵으로 너무나 유명한 ‘이성당’ 등은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곳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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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근대역사박물관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은 건 물 한 동의 개념으로 보기 보다는 주변에 있는 군산 세관, 장미갤러리, 장미공연장, 근대미술관, 근대건축관 모두를 아우르는 것으로 보는 게 옳다. 지역 일대를 박물관으로 보자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물론 근대역사박물관이 있다. 박물관 1층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등대가 우뚝 서 있다. ‘어청도 등대’ 모형이다. 이곳에 어청도 등대 모형을 세운 이유는 그 등대가 1912년 3월1일에 점등한 이후 오늘까지 고군산열도 최서단 앞바다를 지나는 선박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런 점을 근거로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박물관은 해양물류역사관, 근대생활관, 기획전시실, 기증자전시실, 어린이체험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관람객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은 역시 해양물류역사관과 근대생활관이다. 해양물류역사관은 군산시의 역사를 해양 문화에 맞춰 살필 수 있는 공간이다. 한국과 중국과 일본을 잇는 해역이었던 만큼 심심치 않게 발견된 해저 유물 이야기도 흥미롭다.

근대생활관은 백년 전 군산의 모습을 자료와 고증에 근거해 재현한 공간이다. 근대 도시의 꼴을 갖춰가는 군산의 역사, 일제의 수탈 현황, 재현된 잡화점과 인력거 조합, 만월표 고무신발을 팔던 형제고무신방, 야마구찌 소주도매장, 미곡수취인소, 군산항 창고, 내항, 군산좌, 군산역, 토막집, 영명학교, 임피역 등은 가족 여행자들에게 큰 관심을 끌며 포토존이 된 지 오래다.

재현 공간에는 해당 건물이나 시설의 백년 전 이야기가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꼼꼼히 읽다보면 실제로 내가 당시 그 곳에 서 있는 듯 한, ‘순간 시간 이동의 짜릿함’을 맛볼 수도 있다. 미곡수취인소 내부에서는 1920년대 군산미곡취인소(미두장), 1934년 군산지도, 군산항 제3차 축항공사 쌀탑 등의 탁본을 떠볼 수도 있다.

이곳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근대 유물들도 많다. ‘제일은행 군산출장소 출근부’, ‘창씨개명 호적원부’, ‘군산상공회의소 월보’, 당시 군산 최대의 갑부로 군림했던 일본 기업 ‘구마모토농장’ 관련 결산서류, 토지목록, 지적도 원본 등이 그것들이다.

당시 충청도, 전라도 일대에 살던 농민들이 토지를 빼앗기거나 노동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순전히 먹고 살기 위해 군산으로 몰려 든 이야기, 노동자들의 삶, 호사 넘치는 삶을 산 일본인 지주들의 생활상 등도 이곳에서 엿볼 수 있다.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주소 군산시 해망로 240

입장료 통합입장권(3000원 = 역사박물관 + 근대미술관 + 근대건축관 + 진포해양공원 위봉함), 단일입장권 2000원

문의 063-454-7870 / www.museum.gunsa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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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군산세관

한국에 있는 근대 건축물 대부분을 일본이 지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실제로는 대한제국에서 주도했거나 국내에 진출한 일본 외 다른 기업에서 건축한 것들도 꽤 많이 있다. 지금은 군산세관 ‘호남관세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구)군산세관’도 그런 건물이다. 순종 2년, 1908년 6월에 개관한 이곳은 유럽의 건축가가 설계했고 벨기에의 벽돌과 자재를 수입해 지었는데 유럽의 건축 양식에 일본 근세 건축의 특징이 조합된 디자인을 하고 있다. 건축물 자체에도 의미가 있지만 ‘밀수품 전시’, ‘군산 옛모습 사진전’ 등 내용물도 실속 있어 많이 관람객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한국은행 본점’(지금의 화폐박물관), ‘서울역사’(지금의 문화역서울284)와 더불어 ‘국내 현존 서양 고전주의 3대 건축물’로 꼽힌다.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바로 옆에 있다.

<(구)군산세관>

주소 군산시 해망로 244-7

입장료 무료 입장

문의 063-730-8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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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갤러리, 장미공연장

신주소 체계에서 ‘내항로 1길’로 확정된 이 일대의 동 이름은 ‘장미동’이다. 그런데 한자 이름이 독특하다. 곶간 또는 감출 장藏에 쌀 미米를 쓴다. ‘쌀창고 마을’이라는 뜻이다.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에 따르면 이 이름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 행정당국에서 명명했다. 군산항은 개항 전 작은 항구였다. 그러다 총독부 주도 하에 확장되었고, 대형화 된 군산항은 우리의 농산물 등 민족 자산이 일본으로 빠져나가는 통로가 되었다. 그래서 항구 앞에 커다란 창고를 짓고 그곳에 호남과 충청에서 가져온 곡물을 모아 배에 실으며 아예 동네 이름도 장미동으로 한 것이다. 장미갤러리가 당시 곡물 창고와 직접 관련이 있다는 근거는 없다. 일제강점기 때 건축되었다 폐허가 된 것을 2013년에 정비해 갤러리로 활용하고 있으며 동명이 장미동이라는 점에서 이름도 ‘장미갤러리’로 했다. 갤러리 1층은 체험학습장으로, 2층은 전시장으로 문을 열었다. 장미공연장은 1930년대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에서 쌀을 보관했던 창고였다. 2012년에 개보수, 다목적 공연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발음은 예쁘지만 뜻은 혈압 올리는 ‘장미동’은 현재 법정 동명에서는 사라졌으나 군산 사람들에게는 익숙하고 흔히 불리는 이름이다.

<장미갤러리, 장미공연장>

주소 군산시 내항1길 입장료 무료 입장

문의 갤러리 : 063-445-9813 / 공연장 : 063-454-7870(근대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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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커피(구 미즈상사)

근대역사박물관 마당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저절로 발길이 움직이는 곳이 있다. 장미갤러리와 미즈커피 그리고 그 뒤로 근대미술관 서쪽 벽과 일본식 정원수 등이 눈길을 사로잡는 곳이다. 장미갤러리 앞에 있는 일본식 건물은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 건축한 일본 ‘미즈상사’의 군산 사옥이다. 당시 미즈상사는 일본 등에서 식료품과 잡화를 수입해 판매하던 회사였다고 전해진다. 한때 은행으로 활용되기도 했고 해방 후 검역소가 이곳에 있었다. 원래는 현재 근대역사박물관 앞에 있었는데 조성 과정에서 지금의 위치로 (부분) ‘이건’되어 ‘커피숍’으로 문을 열었다. 1층은 커피숍, 2층은 다다미 북카페로 운영 중이다. 2층으로 갈 사람은 1층에서 기다렸다 차를 들고 올라가야 한다.

<미즈커피>

주소 군산시 해망로 232

영업시간 10:00~18:00 *월요일, 1월1일 휴관

문의 063-446-2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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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근대미술관

지금은 없어진 ‘일본18은행 군산지점’ 건물이었던 것을 미술관으로 개축했다. 18은행은 일본 나가사키에 본점을 두고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대부업’ 중심의 영업을 하며 인천과 군산 등에 지점을 차렸었다. 지점 설립 목적이 ‘대부업’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근대 일본 은행 건축 기법을 알 수 있는 이 건물은 단정한 벽과 지붕, 독특한 창틀 등이 매력이다. 미술관은 미술관동과 금고동 건물로 나뉜다. 정면 미술관동에서는 일제수탈사진전, 18은행 건물역사 전시실, 18은행 보수과정 전시실 등 상설전과 기증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미술관 관람이 끝나면 들어왔던 문으로 되돌아 나가지 않고 뒷문을 이용, 금고동으로 이동한다.

<군산근대미술관>

주소 군산시 해망로 230 입장료 통합 3000원(근대역사박물관에서 구입)

문의 군산시청 063-454-7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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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미술관 안중근 의사 여순감옥 재현전시관

금고동 뒷쪽 1, 2층에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고 구속되어 있던 중국 여순감옥 안 의사 감방을 재현, 전시하고 있다. 보기에는 소박하지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등 안 의사의 주요 어록과, 유언 등 그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사료들이 밀도있게 정리되어 있다. 또한 사형 집행 후 운구되는 옛날 자료 사진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사형 선고를 받은 아들에게 쓴 편지는 읽은 이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고도 남음이 있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을 것을 불효라고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했을 때의 나이는 31세였고 32세이던 1910년 3월26일 그는 교수형 당했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여순감옥 묘지에 임시 안장되었다. 안중근은 ‘조국이 해방되면 유골을 수습해 고국에 묻어달라’ 유언했지만 그 유언은 지금까지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는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1927년에 사망했다.

<군산근대미술관 안중근 의사 여순감옥재현전시관>

주소 군산시 해망로 230

입장료 통합 3000원(근대역사박물관에서 구입, 미술관 입장권으로 이용)

문의 군산 시청 063-454-7870

▶군산 근대건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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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에 건립된 (구)조선은행 군산지점 건물로 사용되던 것을 개축, 복원해 문을 연 건축박물관이다. 18은행이 조선인 대출을 통해 토지 수탈에 앞장 선 은행이라면 조선은행은 조선에 진출한 일본인들에게 매우 유리한 조건의 대부 사업을 전개, 그들의 조선 경제 장악을 도운 은행이다. 당시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였던 ‘나카무라 요시헤이’가 건축했는데 천장이 웅장하고 자연광을 극대화하도록 설계, 뛰어난 건축미를 뽐낸다. 건축관 실내에 설치된 강용면 작가의 ‘민족의 함성’은 우리나라 오천년 역사에 도움을 준 국내외 인물들, 특히 독립운동가의 얼굴을 레진과 우레탄 도료로 표현한 걸작이다. 1층에는 근대건축물 미니어쳐, 조선은행 금고, 지점장실, 근대 군산 영상 사진관 등이 있다. 2층 테라스에 가면 금강하구와 군산항이 한 눈에 잡힌다.

<군산근대건축관>

주소 군산시 해망로 3315

입장료 통합 3000원

문의 063-454-3316

▶월명동 골목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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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근대역사박물관에서 길을 건너 월명동으로 들어가면 고즈넉한 동네가 들어온다. 뒷 블록에는 음식점 몇 곳이 있고 더 안으로 들어서면 한석규, 심은하 주연의 ‘8월의 크리스마스’ 주요 배경이었던 ‘초원사진관’이 포토존으로 문을 열고 있다. 큰 길로 나서면 앙금빵으로 유명한 ‘이성당’이 있고 더 안쪽으로 들어서면 ‘신흥동 일본인 가옥’도 만날 수 있다. 일본인 가옥은 몇 해 전까지 실내 관람도 가능했으나 지금은 정원 둘러보기까지만 가능하다. 월명동은 은근히 매력적인 동네다. 곳곳에 해방 전후에 건축한 집들이 눈에 띄고 수공예 인형 등을 파는 스튜디오와 커피숍도 여행자의 발길을 유혹한다.

군산 교통편

승용차 서해안고속도로 군산 IC – 진포해상공원 주차장

버스 군산시외버스터미널 정류장에서1, 2, 3, 4, 5, 6, 7, 8, 11, 12, 13, 14, 15, 16, 17번 버스 – 진포해양테마공원정류장 하차

▶ 근대미술관 금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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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고동은 18은행에서 금고 관리를 위해 세운 2층 건물인데, 실물 금고가 전시되어 있다. 금고 위에는 ‘이 금고가 채워지기까지 우리 민족은 헐벗고 굶주려야만 했다’는 구호가 있어서 보는 이의 마음을 착잡하게 만든다. 실제로 일제는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설립, 우리나라 재산 현황을 손아귀에 쥐게 되었고 18은행 등 일본 은행을 통해 농민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의 큰 돈을 빌려준’ 뒤 끝내 토지를 빼앗는 방법으로 한반도의 일본 경제 속지화 작업을 집요하게 진행했다. 결국 농민은 물론 적지 않은 국민이 일본 은행의 노예가 되어 옴짝달싹 못하게 만든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삶의 질이 좋아졌다면 또 모를까, 민족 경제, 국민 경제는 나락을 떨어지고 말았다.

<군산근대미술관 금고동>

주소 군산시 해망로 230

입장료 통합 3000원(근대역사박물관에서 구입, 미술관 입장권으로 이용)

문의 군산시청 063-454-7870

[글과 사진 이영근(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498호 (15.10.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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