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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진상 승객' 때문에 눈물 훔칠 때 많다는 승무원들의 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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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항공사 승무원 A씨가 지난 주 기내에서 겪었던 일이다. 비행기 멀미 탓인지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좌석에서 갑자기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A씨는 급한대로 맨손으로 일일이 토사물을 치웠다. 아이에게 괜찮은지 물었다. 그런데 옆에 있던 부모의 앙칼지고 짜증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 애 놀라니까 저리 가요!”

A씨는 그날 승무원이 된 걸 후회했지만 그래도 참아야지 하고 넘겼다. 그는 “실제로 이 정도 일은 비일비재하다”며 “여러 나라 승객을 접하지만 승객 매너 면에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뒤처지는 수준”이라고 했다.

항공사 승무원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런 ‘진상 승객’들은 실제로 많다고 한다. 승객이 몰리는 휴가철엔 그 숫자도 늘어난다. 음료수 등을 내어오라며 다짜고짜 반말하는 손님은 예사고, 성추행·성희롱성 발언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승무원들이 속앓이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조선일보

지난 4월 제주항공 신입승무원들이 미소연습 등 기본 인사법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하다.


승무원 B씨는 지난달 유럽 비행 직후 남몰래 눈물까지 훔쳤다. 비행 중 통로 사이를 지나는데, 뭔가 엉덩이를 쿡 찌르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중년 남성 승객 한 명이 손가락으로 그의 엉덩이를 찌른 것이었다. B씨는 “누가 봐도 고의라 너무나 당황스럽고 수치심을 느꼈지만, ‘실수’라는 말에 웃어넘길 수밖에 없었다”면서 “승무원 부를 때 스마트폰 액정 터치하듯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남자 승객도 많은데 어디 하소연 할 데가 없다”고 했다. 승무원에게 연락처를 달라며 추근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조금만 성에 안 차면 소리부터 지르는 사람도 많다. 기내식 메뉴 중 마침 다 떨어진 메뉴를 갖고 오라고 한 다음 안 갖다주면 항공사 측에 항의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식이다. 승무원들은 “아무리 양해를 구해도 막무가내”라고 말한다.

이런 일들이 항공기 안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공항에서도 이른바 ‘갑질 승객’이 있다고 한다. 항공사 직원들은 “공항 라운지를 이용할 때 회원 외 동반 1인만 함께 할 수 있는데도, 4인 가족 모두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고성을 지르는 고객, 발권할 때 ‘친구끼리 옆자리로 안 해주면 컴플레인 걸겠다’고 협박하는 고객도 있다”고 했다.

항공사 운용 방침상 고객 항의는 거의 대부분 직원 인사 고과로 이어져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 승무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대개 침묵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 승무원은 “승객 한 분 한 분이 소중한 고객인 만큼 우리도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지만, 여러 나라 승객을 접하는 승무원들 사이에선 우리나라 승객이 가장 대하기 힘들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했다. 그래서 비행 전 한국 승객이 몇 명이나 되는지 미리 세어보는 승무원도 있다고 한다.

[안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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