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8 (목)

"아버님, 제가 모실게요" 돌아온 자녀들 '리터루족'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편집자주] 우리 경제가 고도 성장을 멈추고 장기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 20~30대 청년층의 경제적 독립은 갈수록 어려워져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가 그들의 또 다른 이름이 됐다. 간신히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을 통과하고 가정을 이루려고 하면 주거불안이 또 다시 이들을 가로막는다. 노후준비를 미루고 자녀 교육에 아낌 없이 투자했던 부모들은 한숨 돌릴 새도 없이 결혼할 자녀의 '집 걱정'에 매달려야 한다. 사상 최악의 주거난에 결혼 보금자리를 마련해야 하는 자녀와 노후를 포기해야 하는 부모 간 '천륜싸움'으로 변질되는 슬픈 현실을 들여다봤다.

[[결혼전쟁②] 주거비로 인한 비자발적 동거 "전세금 고공행진·전세대란 원인…가족 갈등의 씨앗"]

머니투데이

공인중개사무소 외벽에 전월세 관련 가격 정보가 공개된 모습.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사진=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머니투데이

# "아버님, 제가 모실게요."약사 부부인 A씨(30·여) 커플은 결혼생활 7년만에 '처가살이'를 결심했다. 치솟는 서울 내 주거비를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결혼 초기 A씨 부부는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마음에 독립했지만 아이가 생기자 상황이 달라졌다. 육아를 위해선 더 넓은 공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치솟는 전셋값은 넘기 힘든 벽이었다. 지방에 계신 시댁 근처서 약국을 운영하며 살기도 했으나 좀처럼 집을 살만한 목돈이 모이지 않았다.

결국 벌이가 나은 서울로 옮겨와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살기로 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문제가 생겼다. 반주를 즐기는 남편과 달리 A씨 부모님은 집안 내 음주를 허용치 않았다. 사소한 말다툼이 감정 싸움으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A씨는 "남편이 집에서는 밥먹기를 꺼려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 지난해 12월 결혼한 B씨(31) 역시 부모 도움 없이 당당히 '독립'했다. 어렵게 모았던 1억원에 은행 대출을 더해 경기 용인에 2억원 상당의 전셋집을 마련했다.

가정을 이뤘다는 안도감도 잠시, 자고 일어나면 오르는 전세값을 보며 불안해졌다. 매달 전세대출 이자도 부담스러웠지만, 무엇보다 2년 후 폭등할 전세금이 문제였다. 평생 대출이자를 갚고 전세금만 쫓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해졌다. 결국 전세보증금 1억원을 다른 곳에 투자하기로 하고, 부모의 집으로 돌아갔다. B씨는 "전세금은 계속 오를 거고, 그럼 돈을 계속 빌려야 하지 않나"며 "이자만 내다가 내 집 마련은 언제 하나"며 아쉬워했다.

결혼을 위해 독립했던 자녀들이 부모에게 돌아오는 '리터루족'(리턴+캥거루족)이 증가하고 있다. 성실히 모은 월급에 금융권 대출까지 받아가면서 독립을 시도했으나, 주거비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다시 '부모의 집에 얹혀 살겠다'는 젊은 부부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리터루족의 탄생은 천정부지 오르는 전세값으로 인한 '전세대란'이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지난달 31일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 7월 전국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2억120만원으로 2년전인 2013년 7월 1억6160만원보다 24.5% 상승했다. 통상 전세계약기간이 2년임을 고려하면, 재계약 때 보증금을 4000여만원 올려 받는 게 '평균'이라는 것.

반면 임금은 전세금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임금근로시간 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13년 20대와 30~34세 근로자 중위값(상위 50% 해당자)의 연봉은 각각 2416만원과 3170만원으로 조사됐다. 각종 생활비와 대출이자, 대출원금 상환 부담 등을 감안하면 2년만에 4000만원을 모으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단독주택이나 연립주택으로 시선을 돌려도 상황은 녹록치 않다. 지난달 전국 단독주택과 연립주택 평균 전세가격은 각각 1억3822만원과 1억608만원으로 2년전에 비해 1258만원과 1339만원 올랐다.

머니투데이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세대란이 날이 갈수록 심화되는 상황에서 리터루족의 등장은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조명래 도시지역계획학 교수는 "'빚 내서 집사라'는 말처럼, 건설 경기 부양을 위한 공급자 위주의 단기적 정책만 반복되고 있다"며 "한동안 전세금 고공행진이 사그라질 가능성은 적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리터루족의 등장이 새로운 가족간 갈등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처럼 '효'에 근거한 자발적 동거가 아닌 경제적 불안으로 인한 비자발적 동거인 탓이다.

조 교수는 "정부가 사실상 전월세 문제를 방치하는 동안 국민들은 세대별, 계층별, 결혼상태 등으로 개인적·파편적으로 대응하다 한계에 부딪혔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월세 문제가 저출산과 청년빈곤, 빈곤의 세습, 양극화 등 사회적 문제와 더불어 가족 갈등으로 비화되고 있다"며 "신혼부부 등 소득약자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와 함께 어쩔 수 없이 리터루 형태의 가족에 편입됐더라도 다시 독립하기 위한 장기적인 계획을 마련하고, 동거 기간 중에는 생활비를 분담하면서 갈등을 관리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한때 '독립'했던 가족의 재결합은 따로 살던 기간 동안 익숙했던 생활습관의 변화가 불가피한 만큼 단순히 '같이 사는 것' 이상의 가족 구성원간 배려가 필요하다는 평가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리터루 형태의 가족 간 결합은 젊은 부부의 독립을 위한 준비 기간인 만큼 미리 동거 기간을 정하거나, 서로 경제적 부담을 떠넘기지 않는 등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려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원광 기자 demian@mt.co.kr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