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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한반도 정세 ‘이산상봉 후’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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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경제 제재 해제 요구 예상… 미, 핵 진전 없인 견제 가능성

미·중 설득해 북핵 대화 재개… 정부 고차원적 접근법 필요

정부의 이산가족 상봉 적십자 실무접촉 제의에 북한이 곧바로 호응함으로써 큰 이변이 없는 한 10월 초쯤에는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산가족 상봉은 ‘8·25 합의’의 두 번째 단계다.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과 ‘준전시상태’ 해제를 교환하는 군사적 조치로 충돌 위기를 막은 남북이 관계 개선을 위한 단계로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경향신문

“이번엔 만날 수 있겠지?”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실무접촉을 일주일 앞둔 31일 서울 중구 대한적십자사 이산가족찾기 신청 접수처에 한 할머니가 손에 쪽지를 든 채 직원에게 설명을 들으며 접수된 신청서를 확인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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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상봉은 인도주의적 행사인 데다 긴장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다. 이산가족 상봉까지는 남북과 미·중 등 한반도 관련국 모두가 같이 갈 수 있는 길이다. 하지만 이산가족 상봉 이후에 벌어질 상황은 예측하기 어렵다. 다음 단계에서는 각자 입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이 끝나면 곧바로 금강산 관광 재개와 5·24 대북제재 조치 해제 등을 요구하며 적극적인 대화 공세를 펼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8·25 합의에 대해 “풍성한 결실로 가꿔가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이산가족 상봉 후 남측이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 관계 개선에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압박이다.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이 최근 방북한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에게 남측의 ‘참수 발언’에 대한 유감, 대북전단 살포 중단 등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북이) 합의를 어기는 일은 절대 없을 테니 남측도 신뢰를 쌓을 수 있게 노력해 달라”고 촉구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 이후에 대한 확실한 방침이 아직 없다. 한 외교소식통은 “8·25 합의는 군사적 대치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급조된 대화에서 즉흥적으로 이뤄진 것”이라며 “합의에 정치적 의지가 얼마나 반영됐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8·25 합의에 대한 국내적 지지의 상당 부분은 ‘원칙을 고수해 북한을 굴복시켰다’는 대결적 인식에서 비롯된 것임을 감안하면 향후 남북 협상에서 정부가 북측에 5·24 조치 해제 등을 양보하기는 매우 어렵다.

미국 역시 이산가족 상봉 이후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은 핵 문제에 대한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남북관계가 진전되고 북한에 대한 각종 제재가 해제되는 단계에 진입하게 되면 한국 측에 속도 조절을 요구하며 견제할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구조에서 한반도 정세를 안정시키고 주변국 우려를 불식시키려면 정부의 고차원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다. 북한과 대화를 이어가면서 남북관계와 핵 문제가 선순환할 수 있도록 북핵 협상에 흥미를 잃은 미·중을 설득해 북핵 대화를 재개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 당국자는 “취약한 구조를 가진 8·25 합의를 살려나가려면 치밀한 준비와 함께 인내, 타협, 외교적 노력 등이 병행돼야 한다”면서 “8·25 합의는 한반도의 정세 안정을 위한 험난한 작업의 출발일 뿐”이라고 말했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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