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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취재파일] '사설 경비업체 차량', 길 터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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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초 취재 차량을 타고 서울 강변북로에 진입한 적이 있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안 그래도 막히는 도로가 점점 더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어디선가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제법 먼 거리였던 것 같은데 그 소리가 이내 취재 차량 뒤까지 다가온 걸 느꼈습니다. 너도나도 재빨리 길을 터준 겁니다. 저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얼른 한쪽으로 비켜줘야지.”

뉴스를 통해 이른바 ‘모세의 기적’을 많이 접하셨을 겁니다. 최근에 있었던 ‘모세의 기적’은 6월 21일 울산 북구에 있는 무룡터널 안이었습니다. 당시 터널 안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로 터널 진입 전부터 도로는 꽉 막혔습니다. 터널 안에는 부상자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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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출동하던 119구급차가 답답해하던 순간 200여 대의 차량이 도로 양쪽으로 길을 터줬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구급차는 속력을 낼 수 있었고 부상자 6명도 모두 경상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항상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건 아닙니다. 지난 7월 31일 경기도 포천에서는 사설 구급차가 봉변을 당했습니다. 다른 차들이 터준 길로 달리던 이 구급차 앞을 승용차 한 대가 막아선 겁니다. “허가를 받고 운행하는 것이냐”, “진짜로 환자를 실은 게 맞느냐”며 3분 정도 행패를 부렸습니다. 구급차 안에는 감전 사고로 내상을 입은 환자가 타고 있었는데 하마터면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위험천만한 행동이었습니다.

이처럼 ‘모세의 기적’이나 ‘파라오의 방해(출애굽기 中 모세가 홍해를 건널 때 추격을 명한 이집트 왕의 행동)’가 언론에 회자되는 건 국민의 생명과 밀접하게 관련된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안전’ 같은 거대 담론이 아니더라도 나와 내 가족의 생명이 달린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취재 차량에 타고 있던 사람 모두 “얼른 한쪽으로 비켜줘야지.”라며 길 터주기에 동참한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였지요.

그런데 사이렌을 울리며 저희 옆을 지나가는 차량이 좀 이상했습니다. 구급차는 아닌데 그렇다고 일반 승용차도 아니었습니다. 군 헌병대 차량처럼 차체 위에 기다란 경광등을 달고 있는 그 차량은 바로 사설경비업체 차량이었습니다. 구급차와 거의 비슷한 사이렌 소리에 길을 비켜주긴 했는데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급하니까 사이렌을 울렸을 테지만 ‘사설경비 차량에도 길을 비켜줘야 하나?’, ‘사이렌을 울리는 차량마다 다 길을 비켜줘야 한다면 오히려 이를 악용할 소지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경찰에 문의했습니다. 도로교통법 시행령 제2조에 긴급자동차의 종류가 나와 있다고 합니다. 시행령을 살펴보니 경찰 차량 중에 범죄 수사 차량, 군 차량 중에 부대 질서 유지 차량, 환자를 싣고 가는 차량 등이 긴급자동차로 분류됩니다.

혹시 몰라 사설경비차량이 정말 긴급자동차에 속하진 않는지 재차 문의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다시 말해 사설경비차량의 경우 길을 터주지 않아도 벌금이나 과태료를 물 필요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소방기본법 21조를 보면 소방자동차(출동 소방차와 119구급차)를 방해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소방자동차가 아닌 긴급 자동차를 막는 행위는 도로교통법 29조로 제재가 가능합니다. 이 경우 2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는데요, 승합차는 6만 원, 승용차는 5만 원, 오토바이는 4만 원입니다. 앞서 사설 구급차의 경우 소방자동차에 들어가지 않는데다가 소방기본법을 적용한 법원의 판례가 없기 때문에 도로교통법의 적용을 받는 실정이고요.

장광설을 늘어놨지만 벌금과 과태료를 기준 삼아 길을 터줄지 안 터줄지 고민하시는 분은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사이렌’이 울리면 그만큼 긴급한 상황일 거라는 공감대가 ‘모세의 기적’을 일으키는 원동력이라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우선시 돼야할 전제는 바로 소방자동차든 긴급자동차든 ‘사이렌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길 막히니까 괜히 사이렌 울리고 지나가는 것 아닌가’라는 의심의 똬리야 말로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소방관과 경찰 등에게 가장 두려운 적이 될 테니까 말이죠. 강변북로에서 다른 차량들의 양보를 받으며 먼저 지나간 사설경비 차량도 당시 누군가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긴급 출동했을 거라 믿고 싶습니다.

[조기호 기자 cjkh@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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