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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죽음의 ‘난민 루트’… ‘필사적 엑소더스’ 시리아 난민들의 이동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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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서 보트 타고 그리스로 헝가리 국경 넘기 고난

트럭 안에서 죽음 맞기도

기찻길 봉쇄는 안돼 철로 따라서 넘을 수 있어

유럽행 난민 이동로가 ‘죽음의 루트’가 되고 있다. 중동·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이동한 난민이 지난달에만 10만여명에 달했고, 유럽에 닿기도 전 지중해에서 숨진 난민은 올 들어 2300명을 훌쩍 넘었다. 이제는 동유럽을 지나는 육로마저 ‘죽음의 길’이 됐다. 시리아 난민 70여명이 오스트리아에서 냉동트럭에 갇힌 채 죽음을 맞은 데 이어, 28일 또다시 국경지대인 브라우나우에서 어린이들을 비롯한 난민 26명을 실은 트럭이 적발됐다.

근래 유럽행 이주 루트를 메우는 사람들은 내전이 한창인 시리아에서 탈출한 피란민들이다. 힘겹게 국경을 넘어 터키와 발칸을 지나 독일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말 그대로 ‘생사를 건 탈주’를 감행해야 한다. 시리아에서 독일로 가는 난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험난한 여정과 유럽의 난민위기를 재구성해봤다.

■고무보트 타고 그리스로

29일 영국 BBC방송은 시리아 최대도시 알레포에서 태어나 자란 17살 하심의 스토리를 전했다. 교사를 꿈꿨던 그의 삶은 5년 전 발발한 내전으로 산산조각났다. “이슬람국가(IS)의 전사로 끌려가기는 죽어도 싫었기에” 그는 탈출을 결심했다. 열 살 위의 형이 있는 독일이 그의 목적지다. 하심 같은 이들, 시리아 정부군과 IS 모두에 폭격을 당하는 북부의 쿠르드족 등 수많은 시리아인들이 터키로 가는 국경을 넘는다. 걸어서 철조망을 넘는 이들도 많다.

돈이 있는 이들은 레바논의 베이루트까지 육로로 이동해 비행기를 타고 터키 이스탄불에 간다. 하심은 걸어서 터키 국경을 넘었다. 의지할 것은 건장한 몸과 스마트폰 1대뿐이었다. 터키에 도착한 난민들은 에게해에 면한 이즈미르로 향한다. 터키의 대표적인 휴양 관광지 중 한 곳이었던 이즈미르는 외신들에 따르면 요새는 “구명조끼의 수도”로 바뀌었다. 원래는 관광객용이던 딩기(고무보트)를 타면 지중해를 건너 그리스에 갈 수 있어 난민들이 이곳에 몰리고 있다. 작은 배가 뒤집힐 위험이 크지만 육로에 비해 단속이 느슨하다는 장점이 있다. 동트기 전 딩기를 타고 출발한 난민들의 기착지는 에게해의 그리스 영토인 레스보스나 코스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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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트럭 타고 발칸 통과

이때부터는 발칸을 지나 중부 유럽으로 북진하는 행군의 시작이다. 첫 관문인 마케도니아 제브젤리아역에서 기차를 타면 세르비아까지 갈 수 있다. 하지만 하루 평균 2000~3000명이 몰리는 탓에 72시간 체류 허가증을 받기 위한 난민 행렬은 끝없이 이어지고, 기차를 놓치기 일쑤이다. 마케도니아는 난민을 수송할 특별기차까지 마련했지만 도저히 몰려드는 이들을 감당하지 못해 최근 비상사태까지 선포했다.

간신히 열차에 탄 이들은 세르비아에 내린다. 베오그라드의 중앙터미널은 최근 난민촌으로 바뀌었다. 이곳에서 난민들을 기다리는 건 인신매매 조직과 연결된 브로커들이다. 브로커에게 돈을 건네든가, 아니면 또다시 걸어서 유럽연합(EU) 회원국인 헝가리로 들어가기 위해 국경을 넘어야 한다. 헝가리는 난민들을 막기 위해 국경에 장벽을 쳤다. 하지만 아직 기찻길은 봉쇄되지 않아 철로를 따라 걸어서 국경을 넘을 수 있다. 헝가리에서 독일까지는 또 기나긴 여정이 남아 있다. ‘죽음의 냉동트럭’이 발견된 것은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를 잇는 고속도로에서였다. 브로커 조직에 넘어간 난민들이 밀폐된 트럭에 실려 오스트리아를 거쳐 독일로 가는 것이다.

■브로커 비용만 연간 10억유로

하심처럼 시리아를 떠난 난민은 400만명에 이른다. 유엔은 28일 시리아 국민의 20%가 내전 뒤 난민이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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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 있는 난민이 180만명으로 가장 많고, 레바논에 110만명이 있다. 요르단, 이집트, 이라크에도 수십만명이 피신해 있다. 하지만 난민들은 일자리가 없고 불안정한 1차 기착지들을 떠나 더 나은 경제적 기회가 보장되는 유럽으로 가길 꿈꾼다. 남유럽의 그리스나 이탈리아보다도 일자리와 복지가 있는 독일이나 영국, 스웨덴을 더 선호한다.

난민 이동길이 긴 만큼 여러 나라가 책임을 나눠 맡는 수밖에 없다. 난민의 첫 도착국에만 짐을 지울 경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지중해를 건너온 난민들로 몸살을 앓는 이탈리아와 그리스는 EU 차원의 공동대응을 주장하며 아우성을 쳤고, 독일이 나서서 “시리아 난민을 모두 받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난민 문제가 인신매매 조직들이 개입한 대규모 범죄 비즈니스가 되면서 갈수록 상황이 복잡해지고 있다. 이주 관련 단체들은 난민들이 인신매매 조직에 내는 돈이 연간 10억유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오스트리아 내무장관 요하나 미클 라이트너는 “트럭 마피아가 이전보다 더 잔인해지고 있다”고 말했다고 29일 현지 언론 크로넨차이퉁은 전했다.

<김유진 기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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