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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월드리포트] 긴박한 2주의 시작…美 Fed의 '매파 vs 비둘기파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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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인상' 총대 맨 피셔와 조용한 옐런의 속내는?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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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포문을 연 쪽은 연준의 비둘기파였다. 옐런 의장의 '복심'으로 불리는 더들리 뉴욕연방준비은행장은 "9월 금리인상은 지금 시점에선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위험성을 알면서 꼭 올릴 필요는 없다는, 결국 연준 내 매파에 대한 비둘기파, 더 나아가 옐런 의장의 스탠스를 보여준 셈이다. 위축됐던 월가는 기록적인 주가 급등으로 그의 발언에 화답했다. 목마른 사람에게 준 시원한 물 한바가지와 같았다.

공을 넘겨받은 사람은 '스탠리 피셔' 미 연준 부의장이었다. 그는 보란 듯 CNBC에 단독 인터뷰의 특종을 안겼다. "우린 아직 결정 내리지 않았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본다. 결정하기 전에 더 생각할 시간이 남아있고 새로 집계될 데이터를 보고 경제가 실제 어떤 상황인지 봐야한다." 중립적인 어법이었지만, 9월 금리인상은 물 건너 갔다는 월가의 인식에 찬물을 끼얹는 단호한 언급이었다.

17인의 미 연준 멤버들의 산발적 장외설전이 계속되는 와중에 다음날 피셔 부의장은 한발 더 나아갔다. 세계 중앙은행 핵심인사들의 회의인 잭슨홀 미팅 연설에서 "물가상승률이 2%로 돌아갈 때까지 긴축(금리인상)을 기다릴 수 없다. 지금까지 물가 상승을 억제했던 요인들이 해소될 것이라고 전망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말한 것이다. 그는 또 미국의 금리인상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도 일축했다.

"미 연준이 통화정책의 고삐를 조이면 다른 경제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은 잘 알고 있다. 미 연준 활동의 법적 목표는 미국 경제를 위한 경제 용어로 정의돼 있으며, 이런 목표를 지키고 국내에서 안정적이고 강한 거시경제적 여건을 유지하는 일이야말로 국제 경제에도 최선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느끼기엔 미 통화당국 인사의 지난 7년 동안의 통화정책 관련 언급 가운데 가장 선명했다. 이 한마디로 미 연준 내 매파는 오는 9월 회의에 나서는 속내를 분명히 밝힌 셈이다.

● 다시 집결하는 비둘기와 매파…피셔와 옐런의 계산법

재작년 말 신흥국들과 글로벌 시장을 요동치게 했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선언 이후, 미 연준 내에 의견 차이는 부각되지 않았었다. 금리인상 시점은 어차피 올해로 예견됐었고, 그 시점을 중반 이후로 비교적 느슨하게 설정한 상황이라 일종의 선문답 같은 논쟁은 있을지라도 외부에 드러나는 것을 자제해왔다. 하지만 최근 수일 동안의 상황은 급팽창된 긴장감을 보여준다.

스탠리 피셔가 누구인가? 그는 MIT에서 벤 버냉키를 가르쳤던 스승이다. 라가르드 IMF 총재도 그에게서 배웠다.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로 있을 때는 리먼사태 이후 가장 먼저 긴축의 고삐를 죈 인물이다. 막강한 영향력의 그가 미 연준 최초의 여성수장인 옐런 의장을 보좌할 부의장으로 임명됐을 때, 워싱턴 정가에선 오바마 대통령이 연준 내부의 '견제와 균형'을 위해 등용한 것이라는 긍정적 해석도 있었지만, 유대계 커뮤니티의 보이지 않는 압력이 작용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동안 옐런의 보좌역을 겉으론 충실히 수행해왔지만, '물가 억제야 말로 통화당국자의 숙명의 임무'라는 매파적 시각의 잠재적 아이콘이었던 그가 다시 적극 행보에 나선 것이다.

이번 잭슨홀 미팅이 피셔 부의장의 독무대가 되는 동안, 재닛 옐런 의장은 잠행하는 모양새다. 그녀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미 연준내 '비둘기파'의 대표인사, '코처라코타' 미니애폴리스 연방은행장도 지난 금요일 CNBC에 출연했다. "지금의 물가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면 사람들은 '연준에서 2%라는 물가 목표치에 관심이 없다'거나 '연준에서 물가가 2%까지 오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결론을 내릴 것이다."라고 그는 우려했다. 물가 목표치를 여전히 주요 조건으로 고려하는 옐런의 속내를 대변한 것이다.

미국의 9월 금리인상이 현실이 되면, 글로벌 금융시장, 특히 신흥국에는 필요 이상의 후폭풍이 닥칠 수도 있다. 그 책임과 눈총은 옐런 의장을 향할 것이다. 고용 안정을 우선시하는 비둘기파의 상징인 그녀는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경제의 연착륙을 위한 긴축을 지휘하는 입장이 됐다. 옐런은 "연내에 통화정책을 정상화하겠다"는 언급을 매달 강조해왔다. 또 금리 인상을 시작하더라도 매우 점진적이고 소폭이 될 것이라는 점도 역설해왔다. 연준 내 매파 성향 위원들과 시장을 모두 아울러야하는 통화정책 수장의 정치적 선택이었을 것이다.

중국 변수가 아니었다면 9월 회의에서 금리를 소폭(0.25%) 올리고 이후 상황에 따라 점진적으로 상향조정하기로 마음을 굳혀왔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 변수가 돌출한 지금 시점에선 '일단 9월은 그냥 넘겨야 안전하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결국 통제할 수 없는 외적인 변수로 작용할 중국발 악재의 지속성과 재발 강도를 둘러싸고, 비둘기와 매파 양측의 의견과 이해관계는 다시 벌어졌고, 9월 회의에서 격돌하게 되는 양상이다.

● 가진 자를 위한 긴축?…스티글리츠 교수의 견해

미국의 긴축정책 확대는 보수와 진보진영 사이의, 또 소득계층간의 또 다른 긴장도 조성하고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불평등의 대가'의 저자, 조셉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교수가 지난 목요일(27일) 다시 공개적으로 견해를 밝히자 논쟁이 격화하는 양상이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미 연준이 물가 통제를 위해 필요한 시점보다 더 빨리 금리를 올리는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기 직전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아직도 미국내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고 임금 상승도 부진하다. 아직도 '다수의 미국인'을 위한 경기회복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라고 말했다. "나는 우리가 왜 통화긴축에 대해 얘기하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금융위기 당시엔 통화확장과 금리인하로 구사일생한 자본가들은, 이젠 막대한 이자 수익을 위해 긴축을 외치고 있다'고 미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비판하고 있다. 금리가 오르면 수익을 부풀릴 수 있고, 심지어 거품이 터지더라도 값이 폭락한 자산을 수거하듯 사들이면 된다는 자산가들의 탐욕이 긴축을 앞당기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준이 설정한 물가 상승률 기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최근 지표를 보면 지난 12개월 동안 미국의 물가는 단 0.3% 상승했다. 연준이 물가 전망의 척도로 선호하는 식품과 기름값을 제외한 근원 물가면에서도 같은 기간 1.2%가 올랐다. 연준의 목표점인 연 상승률 2%대는 수년 동안 나타나지 않고 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미국 통화당국이 연 물가 상승을 4%이내에서 통제하면 충분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는 "심지어 2% 목표치에 접근한다고 해도 실질적인 인플레이션은 극히 미약하다"고 단언한다. 통화정책 방향이 과도하게 긴축적이라는 것이다.

지나친 경기과열로 수차례 큰 시련을 겪은 미국이고 보면, 통화당국이 인플레이션에 큰 부담을 느끼는 것은 당연해보인다. 하지만 미국의 소득격차가 유례없이 벌어진 상황에서 금리인상 논의는 계층간 대결논리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9월 금리인상 결정 문제가 연준의 울타리를 넘어 백악관과 워싱턴 정가로 확산했다는 의미이다.

● 장외로 불붙은 논쟁…Fed의 선택은?

중국발 악재가 월 스트리트를 한차례 크게 가격한 뒤에 나온 미국의 2분기 GDP 성장률은 '서프라이즈'였다. 3.7% 성장률은 미 경제가 견조한 회복세에 들어서 있음을 확인하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연준내 매파가 과감하게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배경이다.

미국이 올해 안에 금리를 올릴 가능성은 매우 높다. 9월이냐, 12월이냐, 아니면 일부 인사가 제시한 10월이냐가 관건이다. 미국내 지표만 놓고 본다면 9월 인상엔 문제가 없다. 외부의 변수, 즉 중국이 9월 인상여부를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넓게 본다면, 피셔 부의장을 정점으로 한 매파의 압박은 '꼭 9월엔 금리를 올려야한다'가 아니라 '긴축을 해야할 시점엔 해야한다'는 것을 조직 내부와 시장에 각인시키기 위한 것이다. 중국발 악재와 금융시장의 파장이 재발했는데도 금리를 올려 정치적, 국제적 비난을 받는 것은 비둘기파와 매파나 모두 피하고 싶은 일이다.

남은 보름 동안 중국 경제와 증시가 안정되는 모습을 보이고, 미국의 8월 고용지표와 물가지표가 예측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아마도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 금리를 인상할 것이다. 두 가지 조건 중에 한가지가 어긋난다면 결정은 미뤄질 것이다. 10월이 절충안이 될 수 있지만, 근 7년 만의 통화정책 정상화를 위한 역사적 기자회견이 정치적으로도 시장 안정을 위해서도 상당히 필요할 것이란 점에서 9월이 아니라면 12월이 될 것이다.

매년 8월마다 미국의 연방차원 통화정책의 미래 향방을 가늠하는 이번 잭슨홀 미팅 토론의 핵심은 '물가 역학관계와 통화정책'이란 공식 주제보단 사실상 '경기가 살아나도 왜 물가는 과거처럼 오르지 않는가?'로 표현해야 이해가 쉽다. 결국 미국은 금리 인상의 조건에서 차지하는 물가 목표치의 비중을 낮추려는 의도가 뚜렷하다. 더 큰 (중국발)위기가 닥치고, 오랜 천문학적 양적완화의 후폭풍이 뒤늦게 고개를 들기 전에 기준금리 인하로 경제를 안정시킬 수 있는 통화정책 카드를 빨리 확보해놓아야 한다는 범 연준적인 목표가 엿보인다.

여기서 제기할 수 있는 대담한 음모론의 하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옐런 의장이 사실은 비둘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약 피셔 부의장이 옐런의 복심이라면? 비둘기라는 별명은 월스트릿의 증권쟁이들과 언론이 만든 가면일 뿐이었다고 언젠가 그녀가 자신의 회고록에서 쓸 지도 모를 일이다.

[박진호 기자 jhpark@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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