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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천만 포커스⑤]'베테랑' 그 후, 상업영화에도 낭만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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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스타) 장아름 기자 = 영화 '베테랑'(감독 류승완)이 지난 29일 오전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개봉 25일째인 이날에도 예매율 1위를 굳건히 지키며 박스오피스 1위 최장 기간 집권 기록도 함께 챙겼다. '베테랑'의 흥행이 작품성과 대중성 모두 확보한 작품이 이뤄낸 기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지만, 여름 극장가에서 두 편의 1000만 영화가 나온 만큼 상업영화 시장의 '1000만 프레임'에 대한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

이제 각 배급사가 투자부터 배급까지, 치밀하게 기획한 1000만 영화의 흥행이라는 성적표를 거머쥐었다면, 이 같은 흥행 기록이 추후 발생시키는 1000만 영화 산업에 대한 부정적 측면도 함께 고려해봐야 할 시점이다. 영화 '실미도'가 첫 1000만 영화 시대를 열었던 이후 투자자들의 '초 대박'의 꿈을 키웠던 만큼, 쌍천만 영화가 탄생한 오늘은 국내 상업 영화의 규모와 부흥기가 궁극의 지점에 오를 시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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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베테랑'이 지난 29일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 News1 스타 / 영화 '베테랑', '암살'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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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화 '암살'과 '베테랑'의 1000만 돌파가 그리 감격스럽지 않은 이유는 해당 작품들이 예상 가능한 흥행 포인트를 총동원했던 영화라는 데 있다. 누가 봐도 흥행이 보장되는 스타들을 대거 기용한 멀티 캐스팅, 스타 연출가, 치밀한 분석에 따른 흥행 요소를 삽입한 시나리오, 국내 최대 배급력을 지닌 배급사들의 스크린 사수, 수십억을 투입한 대대적인 홍보 등 1000만 동원을 위한 철저한 '기획'이 밑바탕됐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는 수요 예측이 어려운 산업이기에 그러한 영화가 100% 흥행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의 국내 영화 산업은 대개 리스크를 축소시킬 수 있는 이 같은 기획에서 시작된다. '실미도' 이후 영화의 흥행 기준은 500만 관객으로 상향됐고 이 같은 조건을 충족시킬 작품들이 우후죽순으로 나오고 있지만 주류 영화라고 나온 결과물은 매우 안일하고 상투적이기 그지 없다. 결국 창의성이 결여된 영화들은 외면을 받고 말았고 더이상 국내 영화들은 발전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업 영화 시장은 감독들의 창작 의욕을 제어한다. '흥행될 영화'들만 투자를 받을 것이고 많은 감독들은 데뷔를 위해 그에 맞는 시나리오를 쓸 것이다. 시장 흐름을 타지 않는 영화를 '핵노잼'이란 값싼 말로 매도하고 있는 현실이다. 오로지 흥행에 성공한 작품만이 가치를 인정받는 세상이 온다면 영화다운 영화, 자신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 색깔 있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누군가의 패기와 가오는 퇴색될 것이 자명하다.

국내 영화가 미학적으로 가치를 인정 받는 때는 이미 오래 전에 끝났다. 현재 유럽 영화계에서 인식하는 오늘날의 한국 영화는 여전히 이창동, 봉준호, 박찬욱, 홍상수, 김기덕으로 통용되고 있다. 그만큼 우리 영화 성장 동력은 오래 전에 멈춘 상태다. 이들 감독에 대한 팬덤이 형성되고 영화 학교에서 그들의 미학적 이론을 가르치던 시절 이후 많은 '대박 영화'가 나왔지만 그 가치에까지 공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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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의 전작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 News1 스타 /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다찌마와리', '피도 눈물도 없이', '아라한 장풍대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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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의 첫 1000만 영화 소식이 전해지면서 전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피도 눈물도 없이', '아라한 장풍대작전' 등이 새삼 조명됐다. '흥행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쥐기까지 그 역시도 많은 시행 착오를 거쳤다. 대중에게 외면받을 수 있을 '리스크'가 있었지만 소신대로 만든 영화가 이룬 성취는 상당했다. 해당 영화들은 후에도 여전히 재평가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그 리스크를 모험하는 걸 기꺼이 허락하는, 또 기꺼이 밀어부치는 낭만 시대는 오래 전에 끝난 것 같다.

1000만 영화 프레임에 대한 경각심을 곤두세우는 담론은 마치 불필요한 것처럼 돼버렸다. "재미있으면 그만", "수요가 많으니 공급이 따라줘야 한다"는 시장 논리에 편승한 투자배급사와 멀티플렉스 극장의 주장은 점차 설득력을 갖춰가고 있고 이에 반하는 담론이 외려 반감을 사고 있다. 어떻게든 시장의 질서를 극단으로 몰고가는 데 따른 반론은 언제든 제기돼야 한다. 의미 없는 말의 되풀이일지라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 공론화는 언제나 중요하다.
aluem_cha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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