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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인도 중상류 카스트가 스스로 '하층민' 되겠다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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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층민 우대로 역차별…우리도 공직·대학입학 할당해달라"

기득권 이기심 발로 vs 산업화 따라 사회경제적 계층구분 격변

연합뉴스

(아흐마다바드<인도> AP=연합뉴스) '파티다르' 또는 '파테르 공동체' 성원들이 25일(현지시각) 인도 서부 아흐마다바드에서 최하위계층민(OBCs)에 대한 특혜때문에 역차별을 받고 있다며 시정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뉴델리=연합뉴스) 나확진 특파원 = '하층 카스트 우대정책'에 반발한 파티다르 계층 50만명의 시위로 경찰관과 시위대 등 9명이 사망한 인도 서부 구자라트 주.

군대 병력까지 동원한 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구자라트 주는 28일(현지시간) 일단 표면적 평온은 되찾았다.

'파텔'이라는 성을 쓰는 파디다르는 주 내 다이아몬드 가공업, 부동산업 등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현직 주 총리를 배출할 정도로 정치,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중상류층이다.

이들은 이번 시위 때 자신들을 국공립학교나 공무원 정원 할당을 받는 기타하층민(OBC·Other Backward Class)에 포함해 달라는 것을 최우선 요구로 내세웠다.

브라만(성직자), 크샤트리아(군인), 바이샤(평민), 수드라(천민)로 크게 구분된 전통적인 힌두 카스트 기준으로도 바이샤에 해당하는 이들이 자신들을 수드라에 해당하는 OBC로 '강등'시켜달라고 요구한 이번 시위는 급변하는 인도 사회에서 당국이 카스트 정책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고민하게 할 진지한 숙제를 남겼다.

지역과 직업, 성(姓) 등에 따라 수천 개의 세부 카스트 구분이 존재하는 인도는 독립 후 1950년 제정한 헌법에 카스트에 의한 차별을 철폐하고 소외 계층에 특별한 배려를 규정했다.

이에 따라 4대 카스트 분류에 포함되지 않는 최하층 카스트인 달리트(불가촉천민) 등 지정카스트(SC)와 동북지방 소수민족을 포함하는 지정부족(ST)이 가장 먼저 공무원·공립학교 정원 할당 등 우대정책의 수혜층이 됐다. 1980년대 말 이후에는 수드라에 해당하는 차하위 카스트 OBC로 혜택이 확대됐다.

이 같은 우대 정책은 인도 사회의 통합을 유지하는데 크게 이바지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파티다르는 이번 시위에서 공무원과 공립학교 정원의 절반을 이들 하층민이 가져가기에 자신들은 이들보다 더 나은 성적으로도 공립 의대 등을 갈 수 없고 공무원도 되지 못하는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자신들을 OBC에 포함하지 않는다면 카스트에 기반한 적극적 우대정책을 아예 철폐하거나 카스트가 아닌 사회경제적 지위를 기준으로 우대정책을 개정하라고 주장했다.

한편에서는 파디다르 계층의 이 같은 주장이 가진 자가 더 가지려는 집단 이기심의 발로라고 비판하고 있다.

하층 카스트 대부분은 우대 정책을 적용받더라도 경제적으로 취약해 대학에 입학하지 못하며 이들이 차지하는 정부 일자리도 청소 업무 등 최하위직에 머무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델리대 동아시아학과의 김도영 교수는 "정부가 공식 발표를 하지 않고 있지만 50% 할당제를 적용받는 하층카스트가 인구 비율로는 인도 전체의 80% 가까이 되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실태를 소개했다.

김 교수는 "공무원 채용이나 입학정원에서 할당제를 적용받지 않는 나머지 50%는 사실상 인구 비율로는 20%인 상위카스트 간의 경쟁이기에 이들의 주장이 큰 설득력을 갖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하층 카스트 우대 정책이 확대 시행된 1990년대 이후 사회·경제적 상황이 변하면서 이 정책을 재고해야 할 때가 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자와할랄네루대 정치학과 비두 베르마 교수는 "그동안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한 선심성 정책으로 OBC 카테고리에 140여개 세분화된 계층이 들어가면서 특별한 배려 대상이 무분별하게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정부에서 중류 카스트로 인식되는 하리아나 주의 자트 계층이 선거를 앞두고 OBC에 포함됐다가 대법원 판결로 OBC에서 박탈된 일도 있었다.

정부위원회가 OBC를 선정하는 기준도 가계 수입을 위해 여성이 일하는지, 다른 카스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 시대에 맞지 않고 모호한 것이 많다고 인터넷신문 '와이어'는 전했다.

인도가 전통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하면서 같은 카스트 내에서도 경제력에 따른 차이가 현격해졌고 이제는 카스트보다 경제적 격차가 더 큰 차별을 낳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시위에 참가한 파티다르들도 "부자 파티다르는 10%도 안된다"며 "대부분은 다이아몬드 세공업체 등에서 일하는 직원일 뿐이고, 우리도 박봉으로 살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이 때문에 일부 전문가는 결국 문제가 경제성장에 따른 과실의 분배라는 근본적인 원리로 돌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도 사회과학연구위원회 전 위원인 간시암 샤는 28일 인디언익스프레스 기고문에서 "구자라트 주가 제조업을 비롯한 경제성장률이 인도 다른 주보다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청년들은 대부분 비정규직이며 임금도 다른 주만 못하다"고 기술했다.

그러면서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약속한 '더 나은 미래'가 빨리 오지 않는다면 이들의 분노와 상대적 박탈감이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rao@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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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마다바드<인도> AP=연합뉴스) '파티다르' 또는 '파테르 공동체' 성원들이 25일(현지시각) 인도 서부 아흐마다바드에서 최하위계층민(OBCs)에 대한 특혜 때문에 역차별을 받고 있다며 집회를 열고 있다. 이들이 쓰고 있는 마스크는 인도에서 '자유의 투사'로 알려진 초대 내무장관 사르다르 발라바이 파테르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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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인도 구자라트주 최대도시 아메다바드에서 하층민 우대정책에 반발한 파티다르 계층의 시위 도중 불에탄 버스 옆으로 차량이 지나가고 있다.(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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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인도 구자라트 주 아메다바드에서 하층민 우대정책에 반발한 파티다르 계층의 시위로 인한 소요사태를 막고자 파견된 군인들이 이동하고 있다.(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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