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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남북합의 사흘 후 北군부 경질인사… 統戰部에 힘 실리는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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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5 南北합의 이후] 김정은, 軍핵심 교체 의미

-지뢰도발 '정리'

대화하자고 굽힌 셈 됐으니 누군가에 책임 물려야 매듭

-對南사업 주도권 이동

김정일 사망 이후 득세했던 군부 강경파 입지 좁아지고 통일전선부가 전면 나설 듯

남북 간 '8·25 합의' 이후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당중앙군사위 확대회의를 소집해 일부 위원을 해임함에 따라 이번 군 인사의 대상과 범위에 관심이 쏠린다. 이번 인사의 폭과 수준이 북한 내부의 권력 판도뿐 아니라 향후 남북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왜 문책성 인사?

28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은 이번 회의에서 최근 조성된 정세와 북측의 대응에 대해 '분석·총화·평가'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북 고위층 출신 탈북자 A씨는 "지뢰 도발로 조성된 이번 위기 국면을 되돌아보며 누가 잘하고 누가 잘못했는지 따졌다는 뜻"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黨 중앙군사위 열어 南北합의 설명하는 김정은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왼쪽 사진)가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오른쪽 사진)에서 이번 고위급 접촉 결과에 대해“파국에 처한 남북 관계를 화해와 신뢰의 길로 돌려세운 중대한 전환적 계기”라고 평가했다고 노동신문이 28일 보도했다. /노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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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소식통은 "북한은 지뢰 도발과 선제 포격 도발을 계획하는 과정에서 우리 측의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 같다"며 "결과적으로 '최고 존엄'이 모욕당하고, 대화를 '구걸'한 것처럼 비쳤으니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동국대 김용현 교수도 "과잉 충성으로 이번 사태를 악화시킨 군부 인사들에 대한 책임을 물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수석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통일안보실장은 "계획대로 대남 군사 압박이 진행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의 표시이자 책임이 김정은에게 돌아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

이번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우리 측이 지뢰 도발과 관련해 북측에 책임자 처벌을 강하게 요구하지 않은 것도 북 스스로 문책성 인사를 할 가능성을 염두에 뒀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리영길·김영철 경질됐나

조선일보

이번 문책성 인사의 대상과 범위에 대해선 전문가마다 의견이 엇갈린다. 일단 '도발 선봉대' 역할을 한 일선 부대의 지휘 라인부터 '숙청 회오리'가 불 것이란 데엔 큰 이견이 없다. 군 당국에 따르면 이번 목함지뢰 도발(4일)과 선제 포격 도발(20일)은 모두 인민군 제2군단 지역에서 발생했다. 따라서 2군단에 대한 지휘 책임이 있는 총참모부 총참모장(리영길), 작전국장(김춘삼) 등이 징계를 당했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

대남 공작 총책인 김영철 정찰총국장의 경질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다만 "김정은의 신임이 워낙 두터워 징계를 당했더라도 계급 강등 수준일 것"이라고 유동열 자유민주원장은 말했다. 안보 당국은 리영길과 김영철의 신상 변동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면밀히 북한 상황을 관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군부 인사의 폭이 넓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국책연구소 고위 관계자는 "지금 당장 경질·숙청을 하면 이번 도발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는 꼴"이라며 "경질을 하더라도 조금 더 있다가 할 수 있다"고 했다.

통전부 기지개 켜나

안보 당국은 김정은의 문책성 군 인사 이후 대남 사업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해온 군부와 당 통일전선부의 위상에도 변화가 생길지 주목하고 있다. 원래 통전부는 남북 간 대화·교류·협력 외에 대남 공작, 대남 선전·선동 등 심리전, 한국 내 종북 세력 지원 등 대남 사업 전반을 관장하는 부서였다. 하지만 2008년 8월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부터 크게 힘이 빠졌다. 군부 강경파가 득세하면서 대남 사업 주도권을 틀어쥔 것이다.

김정일은 2009년 2월 당과 군에 흩어져 있던 대남 공작 부서들을 통·폐합해 정찰총국을 만들고 지휘 책임을 김영철에게 맡겼다. 이로 인해 통전부는 대남 사업에서 더 소외됐다. 이후 통전부는 수차례 입지 확장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군부의 견제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태를 통해 군부 강경파의 입지가 줄어들면서 향후 대남 관계에서 통전부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란 관측이 많다. 김승 전 통일부장관 정책보좌관은 "군부와 통전부 모두 적화통일이 목표인 건 똑같지만, 통전부가 대남 사업을 주도하면 남북 관계를 유화적으로 가져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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