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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저는 연봉 1440만원 ‘무늬만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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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경북지역 ㄱ예술대학의 ‘비정년트랙 전임교수’입니다.

1년마다 재계약하는 제 연봉은 1440만원입니다. 세금 등을 제외하고 매달 급여명세서에 찍히는 실수령액은 103만원. 그나마 석·박사 시절의 학자금 대출 상환과 교통비, 밥값을 제하고 나면 남는 돈이 없습니다. 다섯 식구 생계는 고스란히 맞벌이하는 아내의 몫입니다. 하루는 초등생 딸이 저와 아내에게 묻더군요. “아빠가 교수님인데, 우리집은 왜 이렇게 가난해?”

경향신문

월급이 적은 만큼 일이 적지 않으냐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당 12시간 강의는 기본이고, 재계약 때마다 교육업무와 연구활동, 학생모집 실적 등 정년트랙 교수와 동일한 잣대로 평가를 받기 때문에 과중한 업무에 시달립니다. 때론 정년교수가 하기 싫어하는 일도 떠맡습니다. 저희 대학 교직원 49명 중 26명이 비정년트랙입니다. 미국 유수 대학에서 석·박사를 한 분도 많습니다. 이들 중에는 ‘먹고살기 위해’ 없는 시간을 쪼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조차 여의치 않습니다.

시간강사를 거친 저는 전임교수만 되면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줄 알았습니다.

임용통보 때만 행복… 이후론 좌절의 연속

4년 전 ‘비정년트랙 강의전담 전임교원’ 임용 통보를 받은 날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며 온 가족이 기뻐했습니다. 비정년트랙이란 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실적이 좋으면 정년트랙으로 전환해주겠다는 대학 측 말을 믿었습니다.

연봉이 1440만원이란 사실을 안 것은 3월 개강 후였습니다. 사인을 하라는 통보를 받은 후 임용계약서에 적힌 금액을 보고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기가 막혔지만 그만둘 순 없었습니다. 아들이 드디어 교수가 됐다며 주변에 자랑하시던 부모님 얼굴이 어른거렸습니다. 지금도 아내를 빼고 가족이나 지인 중에 제가 비정규직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학생들은 압니다. 제가 밥이나 술을 살 때 아이들 사이에 오가는 묘한 시선을 봤습니다. “교수님, 이러셔도 됩니까”라는 농담 속엔 비정년트랙 교수에 대한 동정이 스며 있었습니다.

열심히 하면 정규직이 될 것이라는 희망도 깨졌습니다. 학교는 ‘돈이 없다’는 핑계로 정규직 전환은커녕 단 1원도 임금을 올려주지 않습니다. 이러려고 오랜 세월 공부한 게 아닌데, 평생 소속감도 없이 저임금의 계약직으로 강단에 설 생각을 하니 막막하기만 합니다. 나이 마흔을 훌쩍 넘기고, 할 줄 아는 거라곤 공부와 학생 가르치는 것밖에 없는 제가, 다른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무늬만 전임’인 저 같은 처지의 비정년트랙 교수가 계속 늘고 있답니다. 이런 불평등한 교원임용 시스템은 교수 간에 우열 인식을 심어 갈등을 부추기고 고등교육의 질을 떨어뜨릴 게 뻔합니다. 그 피해가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갈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합니다.

■ 비정년트랙 전임교수 전임이긴 하지만 1년 또는 2년마다 재계약해야 하는 계약직 교수. 정년을 보장받거나(정교수) 승진 심사를 받을 때까지 고용이 보장되는(부교수·조교수) ‘정년트랙(정규직) 교수’와 구분된다. 동일 직급 정규직 교수에 비해 급여 등 근무조건에서 차별을 받는다. 승진 또한 불가능하거나 가능하더라도 직급이 제한적이다.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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