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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토요 FOCUS] 몰카의 진화, 단추·넥타이·안경까지 기술이 만든 `대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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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 지난 25일 오후 을지로4가역 인근 세운대림상가 1층. 건물 입구에 들어가 좌우를 살피니 13㎡(약 4평) 남짓한 작은 매장 하나가 눈에 띈다. '몰카·도청기기 전문'이라는 푯말을 내건 이 매장 내부에는 각양각색의 몰래카메라들이 즐비하다. 주변을 기웃하는 기자에게 매장 주인 A씨가 슬며시 말을 건넨다. "어이, 몰카 용품 사러 왔지? 학생 같아 보이는데 싸게 해줄게." A씨는 손수 얇은 카드 모양의 몰카 기기를 꺼내며 말을 잇는다. "그 수영장 찍은 거 알지? 아이폰4 전용인데 구형이야. 이게 최신형이지. 살 거야?" 최근 논란이 된 워터파크 도촬은 이곳 몰카 세계에서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다. 소형화·고화질 기술이 결합해 기상천외한 각종 몰카가 불티나게 거래되는 등 '몰카 유통시장(Market)'은 급격한 성장을 하고 있었다. 매일경제가 몰카 별천지로 불리는 '세운대림상가' 1층 한 매장에서 28만원에 구입한 몰카 기기는 신용카드 2~3장 정도의 두께였다. 휴대폰 케이스 내 카드 주머니에 꽂으면 감쪽같이 보이지 않았다. 몰카가 담긴 휴대폰을 손에 쥐고 서울 일대를 2시간가량 누볐다. 인파가 들끓는 지하철과 대로변을 거닐며 수차례 휴대폰을 만지작거려도 몰카 사용을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촬영한 영상을 노트북으로 확인하니 10m 앞 입간판 글씨도 선명히 드러날 정도였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든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게 영상을 확보할 수 있는 '디지털 흉기'였다.

◆ 소형화·고화질 기술 결합한 몰카 진화 거듭

"관음증 사회에서 기술과 돈이 결합돼 '대재앙'을 만들고 있다."

더 이상 안전지대는 없었다. 최근 여성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워터파크 몰카' 사건은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 여성 누구든지 '몰카 범죄'의 타깃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해준 사례였다.

특히 소형화와 고화질 기술 발전 탓에 일반인조차 한층 정교해진 몰카 제품으로 은밀한 범죄를 꿈꿀 수 있게 됐다. 이런 추세에 맞춰 유통시장 규모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본지가 확인한 결과 이 같은 몰카 제품은 이미 전문가도 식별하기 힘든 수준으로 교묘한 진화를 거듭하고있었다.

단추·넥타이·벨트·안경에서 모자·볼펜·라이터·자동차 열쇠 등 일상용품을 망라했다. 육안으로는 식별이 거의 불가능한 이들 제품 가격은 대개 10만원에서 40만원 선. 중국 제품은 10만원 이하로 저렴하게 살 수 있었다.

용산역 전자상가 19~20동 카메라 판매 구역에 자리 잡은 20여 곳 상점은 CCTV나 고가 카메라 등을 주로 취급하지만 대개 몰카도 겸해서 판매하고 있다. 한 매장 직원은 "손목시계 기종은 청와대 몰카 시계 사건 이후 많이 알려져 요즘은 잘 안 팔리는 추세"라며 자동차 열쇠 모양의 모델을 추천했다.

◆ 관계당국 수수방관, 파이 키우는 몰카 시장

매일경제

몰카 제품은 거래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국내로 반입되는 저가형 중국제 몰카의 경우 전파인증을 거치지 않은 불법 제품이 많지만 단속은 적극 이뤄지지 않는다. 또한 전파인증을 받은 제품이라면 사전에 제재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전파인증은 국외에서 구입한 무선기기를 국내에서 사용할 때 등록해야 하는 절차로 위반하면 처벌을 받게 된다.

몰카 제품 전파인증 주체는 방송통신위원회 산하 국립전파연구원. 그러나 전파연구원 측은 "인력 문제가 있기 때문에 시장 불시 점검 등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인터넷 국민신문고 등에 접수된 건에 한해서 사후적인 단속만 벌인다는 설명이다. 관세청 측도 마찬가지. 관세청 서울본부 관계자는 "작년 5월 전파인증 없는 몰카 제품을 국내에 반입하려던 업자 40여 명을 적발했지만, 이후에는 적발 사례가 없다"고 했다. 결국 관계당국은 무(無)감독으로 일관하며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것이다.

◆ '몰카 팬옵티콘 사회' 여성의 자유 침해 우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의 도촬이 한 개인을 훔쳐보는 것에 그쳤다면 지금은 전혀 다른 상황"이라며 "온라인 공간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그 영상이 전파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노 교수는 "감시 사회의 가장 큰 위험은 자신이 직접적인 감시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 그 자체'에 지배받는 것"이라며 " '몰카 팬옵티콘 사회'가 현대 여성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민의식의 성숙 없는 과학기술 발달이 몰카 시장 확대와 관련 범죄 확산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우리 사회가 타인의 사생활을 배려하는 도덕적 책무감에서 유리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시균 기자 / 오찬종 기자 / 황순민 기자 / 이윤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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