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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통장 만들기 까다롭네...비행기 티켓까지 요구하는 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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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돈을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입출금 통장 개설이 까다로워졌다. 예전엔 신분증만 있으면 통장을 만들 수 있었지만, 지난 7월부터는 재직증명서, 공과금 고지서 등 각종 증빙서류가 있어야 통장을 만들 수 있다. 금융감독원과 시중은행이 대포통장을 활용한 금융사기를 예방하기 위해, 통장 사용 목적을 확인한 뒤 통장을 발급한다는 방침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은행마다 요구하는 증빙서류가 다 다르다. 은행과 지점별로 증빙서류 기준이 제각각이라 고객들이 혼란스러워한다. 학생, 무직자, 주부 등은 통장 개설이 불가능한 은행도 많다.

18일 기자가 직접 시청·광화문 근처 시중은행 5곳(신한·농협·우리·국민·하나은행)을 방문해 무직자를 가장하고 입출금 통장을 개설할 수 있는지 문의해봤다.

우선 농협과 국민은행은 상대적으로 문턱이 낮았다. 농협의 경우 신분증만 가져오면 입출금 통장 개설이 가능하다고 했다. 신분에 대해 따로 묻지 않았다. 국민은행은 지점장 전결 처리를 해줬다. 처음 창구 직원에게 통장 발급을 문의했더니 시청 근처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인지를 물었다. 그러면서 신분증 외에 회사원임을 증명하는 명함 등 다른 증빙서류를 요구했다. 무직이라고 하자, 해당 직원은 신규 통장 발급이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거듭 요청하자 직원이 지점장 보고를 다녀 오더니, 통장을 개설해 주겠다고 태도를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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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신한, 우리, 하나은행은 신규 통장 발급을 거절했다. 돈 빌려달라 것도 아니고 내 돈 넣을 통장 만들어 달라는 것을 거절한 것이다.

우선 신한은행은 신분증 외에 재직증명서(급여계좌), 납세증명서(법인계좌), 구성원 명부(모임계좌) 등 관련 증빙자료가 있어야 통장 발급이 가능하다고 했다. 관련 증빙자료를 구하기 어려운 학생이나 주부는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은행 직원은 “은행 방침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회사나 집 근처 지점에서만 통장 개설이 가능하다고 했다. 학생 신분으로 통장 개설이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아르바이트 급여 입금, 공과금 이체 등 명목으로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이를 증명하려면 급여명세서, 근로계약서와 같은 소득 증빙 서류나 고용주의 사업자등록증, 공과금이나 관리비 이체 자료가 필요하다는 게 은행 측 설명이었다.

우리은행은 장학금 수령을 위한 통장 개설을 만들어주지만 이때도 관련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결국 아르바이트, 공과금 이체, 장학금 수령 등의 사정이 없는 학생은 우리은행에서 통장과 체크카드를 만들어 쓸 수 없다는 얘기다. 다만 현재 다니는 대학교 안에 있는 은행 지점에선 관련 규정이 완화돼 있어 대학교 바깥 지점보다는 쉽게 발급받을 수 있다고 했다. 통장 개설 여부는 최종적으로 지점장이 결정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지점장과 담당 직원이 사고 발생시 책임진다는 가정하에 발급을 해주는 것이다.

하나은행 역시 통장 개설을 거절했다. 하나은행이 요구하는 증빙서류 항목을 살펴보면 목적별로 매우 세부적이다. 예를 들어 유학, 여행을 위해 해외에서 쓸 체크카드를 발급받으려면 입학허가서나 비행기표, 비자 등 출국 확인서류가 필요하다. 통장을 만들기 위해 비행기 티켓까지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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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통장 발급이 까다로워지자 은행이 모든 금융소비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대표는 “대포통장을 만드는 경우는 극소수인데 관련 규제는 과도하다”며 “일부 은행은 통장 발급을 미끼로 급여·관리비 이체 등을 유도하거나 심지어 적금 가입을 권유하는 등 마케팅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나날이 진화하는 금융사기 피해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해명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미국, 일본 등 외국은 계좌 개설 시 신원을 철저하게 확인할 뿐 아니라 거주지 증명서류 등을 요구하고 심지어 인터뷰를 하는 곳도 있다”며 “이에 반해 그간 한국은 너무 쉽게 입출금 통장을 만든 후 수백만원을 받고 대포통장으로 판매하는 사례가 많은 상황이라 규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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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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