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토끼간빵·용푸치노·용궁순대 … 먹거리도 용의 전설을 품다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골목시장 탐방 ③ 예천 용궁시장

중앙일보

용궁시장은 작은 상가가 옹기종기 모인 골목시장이다. 순댓집 11곳을 비롯해 특색있는 맛집이 많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북 예천군 용궁면은 사진작가들이 오랜 시간 사랑해온 여행지다. 육지 속의 섬 회룡포, 100년 역사를 훌쩍 넘긴 삼강주막 등 담아갈 곳이 수두룩하다. 근래에는 미식여행지로도 손꼽힌다. 용궁시장에 가면 막창순대, 용궁막걸리, 토끼간 빵 등 맛난 음식이 여행자를 기다린다. 모두 오직 용궁시장에서만 맛볼 수 있어 더 각별하다. 침체된 5일장에서 차별화한 골목형 시장으로 거듭난 용궁시장을 찾았다. 다이어트는 잠시 포기해야 했다.

용의 전설이 깃든 시장

중앙일보

토끼간 빵과 자라 카페가 있는 용궁역.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용궁시장은 경북 예천의 자그마한 골목시장이다. 5일장이어서 장날이 아니면 시장 분위기를 느끼기가 쉽지 않다. 장날이면 마을 어르신들이 시장 어귀에 자리를 깔고 소박하게 농산물 좌판을 연다.

자그마한 시골 시장이 버틸 수 있었던 건 빼어난 관광지를 곁에 둔 덕이다. 낙동강에서 갈려 나온 내성천이 굽이 돌아 나가는 회룡포가 바로 용궁면에 있다. 회룡포는 안동의 하회마을, 영주의 무섬마을 등과 함께 대표적인 물돌이동으로 꼽힌다. 인근에는 낙동강 700리 마지막 주막이라 알려진 삼강주막도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용궁면에는 용과 관련된 전설과 장소가 수두룩하다. 회룡포는 물줄기가 용의 형상과 닮아 붙은 이름이다. 회룡포를 감싸고 있는 비룡산(264m)에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했다는, 낙동강 합류 지점의 늪인 용담소(龍潭沼)와 용두소(龍頭沼)에는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중앙일보

용궁역 토끼간 빵. 예천에서 난 헛개나무 열매와 호두 등이 들어간 용궁시장 특산물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용궁시장은 이제 농산물 외에 마을이 품은 이야기와 문화를 특산물로 판다. 시장 옆 용궁역은 경북선 기차역인 동시에 빵집이다. 무인역으로 변하면서 방치됐던 매표소에 용궁 토끼간 빵(054-652-7737)이란 빵가게가 있다. 지역명에 고전설화 『별주부전』의 이야기를 얹혀 예천군에서 개발한 빵이다.

“헛개나무 열매와 호두가 들어가 간에 좋은 빵이지요. 팥부터 통밀까지 모두 예천에서 난 재료로만 만들어요.” 주인장 한상준(46)씨의 말이다.

토끼간 빵은 택배 서비스 없이도 연매출 5억원을 올릴 만큼 관광객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용궁시장 안에도 비슷한 컨셉트의 별주부전빵집이 있을 정도다.

중앙일보

카페 용궁의 인기 메뉴 용왕킹빙수와 용푸치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태 전에 문을 연 카페 용궁(054-655-3080)도 별나다. 이곳에는 ‘용왕킹빙수’라는 팥빙수가 있다. 얼음과 팥 위에 오디·블루베리·수박 등 예천산 과일을 올려 낸다. 초콜릿 시럽으로 ‘용(龍)’자를 그려 내는 일명 용푸치노와 용궁라떼도 인기다.

최재규 용궁시장 상인회장은 “관광객에게 기념할 물건, 추억거리를 만들어주는 것도 매상을 올리는 것만큼 중요하다”고 말했다.

용궁시장에서 ‘용궁’은 지역명 이상이었다. 간판과 벽화 등 시장 곳곳에 남아있는 용의 흔적에서는 허무맹랑한 미신이 아니라, 지역민들의 애환과 소망이 읽혔다.

용궁시장 별미, 막창순대

중앙일보

박달식당의 막창순대와 돼지수육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토끼간 빵이나 용왕킹빙수만 인기 있는 것이 아니라 용궁순대도 용궁시장의 별미다. 순대는 용궁시장의 가장 오래된 먹거리다. 인근에 돼지 도축장이 수두룩하던 시절, 순대는 시장의 가장 싸고 대중적인 음식이었다. 그 많던 장사꾼과 상인들은 사라졌어도 그들의 배를 채우던 순대만큼은 여전히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지금도 11곳의 순대 전문 식당이 몰려있다. 40년 가까이 시장에서 순대를 팔아온 두꺼비식당(054-653-4229)의 이수남(62) 사장은 “24세에 시집와서 처음 순댓국밥을 만들었다. 1000원씩 받고 팔 때부터 다녀간 손님들이 요즘도 가끔 찾아온다”고 자랑했다.

용궁시장 순댓집에서는 단골에게도 순대를 서비스로 내는 경우가 거의 없다. 시장 인심이 메말라서가 아니라 값비싼 막창으로 순대를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가 익히 먹어온 순대는 돼지의 소창이나 대창으로 순대 피를 만들지만, 용궁시장 순댓집은 죄다 막창을 껍질로 쓴다. 하여 보통의 순대보다 피가 두툼하다. 먹어보니 질길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겉은 보드랍고 육질이 연했다.

중앙일보

단골식당의 오징어불고기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용궁시장의 순댓집 11곳의 차림판은 순댓국밥·막창순대·오징어불고기 등으로 대동소이했다. 가격도 순댓국밥은 5000원, 막창순대와 오징어불고기도 8000원으로 같았다.

맛은 달랐다. 3대째, 50년 역사의 단골식당(054-653-6126)은 순대 말고도 연탄불에 구운 오징어불고기로 유명하다. 박경원(30)사장이 일러준 대로 오징어불고기를 막창순대에 얹어 입에 넣었다. 매콤한 오징어불고기와 담백한 순대가 어우러진 맛도, 쫄깃한 식감도 훌륭했다.

시장에서 유일하게 국내산 막창만 고집하는 박달식당(054-652-0522)의 막창순대는 씹을 때마다 육즙이 나와 술술 잘 넘어갔다. 흥부네순대(054-653-6220)는 여성들이 좋아할 만했다. 누린내 때문에 순대를 잘 먹지 못하던 안주인이 음식을 내는데, 한방재를 넣어 잡내가 거의 없었다.

술도 빠질 수 없었다. 100년 역사의 용궁양조장(054-653-6037)에 들렀다. 서울에서 온 여행객이라고 하니 안주인 조정희(56)씨가 방금 거른 막걸리를 대접에 퍼줬다. 용궁양조장은 관광객을 위해 공짜 막걸리를 여분으로 늘 남겨둔다고 했다. 막걸리는 달짝지근하면서 시원했다. 다시 입맛이 돌았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여행정보=용궁시장은 서울시청에서 자동차로 3시간 걸린다. 경북선 용궁역, 시외버스터미널과 붙어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편하다. 끝자리가 4·9일 날만 열리는 5일장이지만 순댓집이나 양조장·카페 등은 장날과 상관없이 문을 연다. 순댓집은 주말에 가면 점심·저녁시간 할 것 없이 줄을 설 각오를 해야 한다. 용궁면사무소 054-653-6301.

글=백종현 기자 jam1979@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백종현.임현동 기자

▶SNS에서 만나는 중앙일보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당신이 꼭 알아야 할 7개의 뉴스 [타임7 뉴스레터]

ⓒ 중앙일보: DramaHouse & J Content Hub Co.,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