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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취재X파일] ‘공천 사수’ 홍찬미, 드라마 속 이야기일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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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어셈블리’ 홍찬미 “10개월 남은 비례는 눈에 보이는 것 없다”

- 현실정치 ‘비례대표’도 너도나도 ‘지역구 출격’ 분주

- 권역별비례대표제 도입 논란으로 비례대표 입지 더 불안해져



[헤럴드경제=박수진 기자] 최근 드라마 ‘어셈블리’가 국회 출입 기자들 사이에서 화제입니다. 국회의 모습과 여야, 계파 간 치열한 정치싸움을 그려낸 드라마다보니 현실정치와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고 할까요. 최근 방송 중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장면은 극중 여당인 국민당 대변인 홍찬미(김서형 분) 의원과 보좌진의 대화입니다. 그는 보좌관에게 지역사무실에 내려가라고 지시하며 “임기가 10개월 남은 비례대표가 눈에 보이는 게 있겠나. 첫째도 공천, 둘째도 공천, 셋째도 공천이다”라며 지역구 출마 의지를 강하게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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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어셈블리’ 캡처


극 중 홍찬미의 발언이 조금 과장됐을 수 있지만 그 상황 만큼은 시쳇말로 ‘리얼’에 가깝습니다. 20대 총선(내년 4월)이 8개월여 밖에 남지 않았고 휴가철이 지나고 나면 여야의 본격적인 공천 논의가 시작됩니다. 선거구 재획정의 밑그림이 그려지는 10월이면 ‘공천 전쟁’은 더욱 치열해질 예정입니다.

현실 정치 속 54명의 ‘홍찬미’도 지역구 출마에 속속 도전장을 내고 있습니다. 선거구 재획정으로 분구가 예상되는 일부 지역들은 벌써부터 경쟁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미 자신이 점찍은 지역구에 지역사무소를 차린 비례대표들이 적지 않고 요즘처럼 국회가 사실상 휴가 기간인 때는 아예 지역에 머물며 민심 공략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최근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둘러싼 공방을 계기로 비례대표제에 대한 효용성 논란이 불거진 것도 비례의원들을 조급하게 만든 이유 중 하나입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과 함께 불거진 의원 수 증원 논란이 일자 일각에서 ‘의원 수를 늘리지 못한다면 지역구를 줄이고 비례대표를 늘리자’는 주장이 나왔고 이에 반발한 일부 의원들이 ‘아예 비례대표를 줄이거나 없애자’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하고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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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본회의장 모습.


비례의원들의 공천을 향한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역위원장을 꿰찬 비례대표들은 상대적으로 일찍 기반을 구축한 편에 속합니다. 여야 통틀어 12명의 의원이 현재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렇지 못한 나머지 비례대표들은 자기 당 현역 의원들의 지역구를 피하면서도 분구가 예상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적지에 깃발을 꼿으려는 과감한 시도도 있는 반면 은퇴하거나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현역 의원으로부터 지역구를 물려받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출발을 하려는 경우도 있습니다.

비례대표제를 비판적으로 보는 이들은 ‘결국 지역구 도전을 위한 발판이었던 것 아닌가’라는 지적도 합니다. 직능, 성별, 계층 등 전문성과 다양성을 대변하기 위한 비례대표가 결국 재선을 목표로 하는 정치꾼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입니다.

하지만 이런 지적을 옳다고만 볼 수는 없는 이유가 비례대표들이 처한 현실입니다. 다양성과 전문성을 내세우려고 해도 ‘초짜’ 국회의원이 4년 동안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비례대표도 일반 초선 의원과 다름 없이 자신의 존재감을 키우기 위해서는 노선도 정하고 세력도 키워야 하는데 그런 과정에서 전문성이 빛을 발할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최근 기자가 경제통으로 평가 받는 한 비례대표와 만나 나눈 대화에서도 이같은 현실은 그대로 드러납니다.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화된 경제 구조가 계속되는데 경제통 출신 의원들이 이렇다 할 대안을 좀 내놓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이 의원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국회에 들어오면 꼭 하고 싶던 정책들이 있었는데 참 기회가 마땅치 않더라고요. 당을 위해 해야할 일도 많고요. 경제 전문가 출신으로서 개인의 소신이 있지만 당의 큰 그림을 위해서는 고집할 수 없는 부분도 있고. 전문가 출신이라고 해서 그 분야에만 국한해서 일할 수 있는 구조도 아니잖아요.”

홍찬미의 “첫째도 공천, 둘째도 공천, 셋째도 공천”이라는 발언을 욕심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어쩌면 ‘공천 사수’, ‘오직 재선’이라는 목표를 갖게 한 배경이 비례대표의 취지를 살리지 못한 지금의 제도와 초선 ‘초짜’의원으로만 여기는 국회의 관행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권역별비례대표제든,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든 그 시작은 이러한 현실인식에서부터가 아닐까요.

sjp10@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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