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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지나간 일은 잊어요" 인사고과 불만 방화 40대 공무원 선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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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이보배 기자 = 자신의 근무 평점이 낮게 나온 데 격분해 사무실에 불을 지르고 구속된 전직 공무원이 선처를 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2일 서울 동부지법에 따르면 서울의 한 수도사업소에서 기술직으로 23년간 일해온 강모(49)씨는 올해 진급을 손꼽아 기다려 왔다.

동기들은 대부분 진급해 6급이었는데 자신은 아직 7급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무평가일이 다가오면서 그가 진급에 필요한 평점인 '수'가 아닌 '우'를 받을 것이란 소문이 돌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러다 4월 24일 근무평가가 발표됐고, 강씨는 자신에겐 정말 '우'가 나왔는데 갓 전입해 온 후배는 정작 '수'를 받자 폭발했다.

직원들이 대부분 퇴근한 오후 7시께 술을 마시고 온 강씨는 3층 사무실로 올라가 팩시밀리를 발로 차고 캐비닛 옆에 있던 종이 상자에 불을 붙이고는 달아났다.

당시 건물에는 70여명이 남아 있었지만, 당직자가 이를 발견하고 재빨리 불을 꺼 인명 피해나 큰 재산피해는 없었다.

경찰은 불이 난 곳 주변에 재떨이나 전기 배선 같은 특별한 화재요인이 없던 점에서 방화 사건으로 보고 용의자를 쫓던 중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고 내려오는 강씨를 붙잡았다.

이 법원 제11형사부(하현국 부장판사)는 공용건조물방화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강씨에게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해당 수도사업소 방화는 146만명 시민의 수돗물 공급에 큰 차질을 가져올 수 있어 죄질이 절대 가볍지 않다"면서도 "그동안 성실하게 공직생활을 한 점, 동료 직원들이 선처를 탄원한 점 등을 고려해 양형했다"고 설명했다.

하 부장판사는 선고 전후 오랫동안 강씨에게 조언을 건넨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일은 훌훌 털어버리고 새 출발 하라는 뜻이었다.

"중징계를 받아 다시 공무원으로 생활할 수 없게 되더라도 피고인의 가치가 줄어드는 게 아니에요. 다른 사람보다 평가가 낮게 나와도 그게 피고인의 전부가 아닙니다. 지나간 것으로 더 이상 자신을 탓하지 마세요."

굳은 표정으로 수의를 입은 채 바닥만 바라보던 강씨는 판사의 당부에 "예, 알겠습니다"라고 답하고는 법정을 빠져나갔다고 한다.

bob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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